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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김순규 목포MBC PD

필자가 사는 곳은 하굿둑에 막혀 더 이상 흐르지 못하는 영산강의 끝자락이다. 그 끝자락 너머는 목포 바다다. 매일 아침 눈뜨면 바다를 보고,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명색이 바닷가PD라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바다는 취재하기에 두렵고 어렵다. 최근 섬, 바다, 수산을 소재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자문단을 포함해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말들이 ‘그게 가능할까?’이다. 날씨, 물때, 섭외, 촬영조건, 안전 등 만만한 게 하나도 없는 현실이며, 무엇보다도 바다 생태계에 대한 고민의 폭이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갯벌은 살아있다’와 같이 특집다큐멘터리로 제작된 바다관련 프로그램은 해양 자연환경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통해 해양, 섬, 갯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해파리나 불가사리의 이상번식과 퇴치, 지구온난화와 어종의 변화, 바다목장과 같은 국가 정책사업, 갯벌의 생물, 오징어, 멸치, 해삼과 같은 특정 어패류 등이 주요 소재가 됐다. 하지만 국내 TV다큐의 역사가 그렇듯이 바다에 대한 프로그램 또한 대부분 아이템 위주의 소재주의적 접근을 하다 보니 자연환경의 변화와 그 피해자는 어민이라는 정형화된 등식에서 벗어 날 수 없었고, 피해극복을 위한 생태 전반에 대한 고찰로 나아가지 못했다. 심지어는 기존의 자연환경에 거슬러 인공적 가능성을 지나치게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추자도 부근으로 조기잡이를 나선 목포의 유자망어선에 동승취재를 했는데, 그 배에선 7일간 6번 정도의 그물질에 약 30궤짝 정도의 수확을 얻었다. 조기철에 그 정도면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물에 풍성하게 걸려든 황금조기를 상상하고 촬영했는데, 1미터 간격으로 한 마리씩 걸려 있으니 직업적(?) 표현으로 그림이 안됐다. 예년보다 1달 반 정도 늦게 형성된 조기어장은 겨울로 접어들면서 변덕스런 바다날씨와 겹쳐 만선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어긋나 버렸다. 유자망 선장은 과거의 풍요로웠던 동아시아 최대의 경제어종 조기어장을 추억하며 해수온도의 변화에 따른 물리적 환경변화에 대한 반응을 보였다.           

 바다취재를 하다보면 주민들과 고기 이름부터 어구나 어법 등 여러 인터뷰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어장환경으로 나아가면 유자망 선장과 같이 갈수록 자원이 고갈되어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간척사업, 금어기, 중국배의 싹쓸이조업, 지금은 많이 없어진 불법저인망(일명 고대구리), 양식장의 밀식,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 등 다각도의 원인을 분석하고, 과거 풍요로웠던 어장과 만선에 대한 기억을 ‘잘 나가던 옛날’로 추억한다. 하지만 과거와 현재의 비교를 통해 과거의 풍요가 가능했던 생태계 전반에 대한 인식, 새로운 환경변형에 대한 꿈으로는 나아가지 못한다.

▲ 김순규 목포MBC PD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담당PD들은 환경변화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생태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을 같이 담아내자고 한다. 인간과 바다를 아우르는 해양생태에 대한 전반적인 화두를 던지고 프로그램의 방향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자는 것이다. 현대과학의 힘을 이용하지만 여전히 전통적 어로와 채집이 공존하고, 어촌의 지속과 어장의 관리가 공동으로 이뤄져야하는 바다 환경과 어민들의 생활방식의 특성을 고스란히 프로그램에 담아내는 일. 목포PD는 요즘 이런 고민으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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