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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2010년 방송계 키워드

2010년 방송계는 출범 3년째인 이명박 정부가 그간 차근차근 진행한 방송·언론 장악의 결과물과 씨름하는 데 한 해를 보냈다. 정권의 창업공신이거나 친밀도를 자랑하는 공영방송 사장들은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보도를 ‘알아서’ 걸러냈다. 이 과정에서 제작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들은 너무도 쉽게 무시됐다.

방송·언론 독립의 가치를 정권에 헌납한 수장들의 모습에서 방송·언론인들의 자존심도 다쳤다. 대한민국 방송계의 양대 산맥 격인 KBS와 MBC의 구성원들이 잇달아 파업을 벌인 게 필연인 듯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작금의 저항이 즉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PD저널>은 2010년 방송계를 관통한 열쇠말을 정리한다. 함께 생각해보자. 2011년 무엇을 해야 할까. <편집자> 

▲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근행)은 지난 3월18일 오후 청와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우룡 이사장의 입을 통해 정권의 MBC 장악음모가 드러났다"고 성토했다. ⓒPD저널

#쪼인트: ‘큰집’이 걷어찬 언론 독립

정권의 방송 장악 의혹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부분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월 김우룡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재철 MBC 사장의 계열사·자회사 사장단 및 임원 인사를 놓고 “김 사장이 ‘큰집’(청와대)에 불려가 ‘쪼인트’를 까인” 결과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방송계 안팎이 경악했다. 정권이 친여(親與) 인사들을 앞세워 MBC를 ‘섭정’하고 있음을 ‘섭정’의 당사자가 고백했기 때문이다. 이는 방송·언론 독립의 문제였고, MBC 구성원들은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39일 동안 파업을 진행했다. 야당 또한 국회 차원의 청문회와 국정조사를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김 이사장을 고소하겠다며 펄쩍 뛰었던 김재철 사장은 말을 바꿨고, 노조위원장을 해고하는 등 파업에 참여한 직원 100여명을 징계했다. 그 사이 김 이사장은 슬그머니 자리를 내놨고, 그것으로 정권과 김 사장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굴고 있다. 2010년 세밑, ‘큰집’이 걷어찬 방송·언론의 독립은 어디에 있는 걸까.  

▲ 김미화 씨가 지난 10월 26일 오전 영등포경찰서 4차 출두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어 고소 사건 진행상황과 심경을 밝히고 있다. ⓒPD저널
#블랙리스트: 없지만 있고, 있지만 없는

발단은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7월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었다.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존재해 자신이 출연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사실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파장은 컸다. 김씨의 글이 아니더라도 이명박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방송인들이 석연찮은 이유로 줄줄이 하차한 전례가 있는 까닭이다. KBS도 거들었다. 김씨가 ‘블랙리스트’ 존재 유무의 확인을 부탁했음에도, KBS는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그를 고소한 것. 이에 격분한 문화평론가 진중권씨, 시사평론가 유창선씨, 영화배우 문성근씨 등은 김씨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며 ‘증언’ 격의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계속된 파장에 지난 11월 KBS는 “블랙리스트가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소를 취하했다. 하지만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야당 대표의 성향을 ‘친북’으로 규정하며 예정됐던 라디오 인터뷰를 일방 취소하는 등의 모습을 KBS가 계속해서 보인 탓이다. 블랙리스트 논란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없지만 있고, 있지만 없는 수수께끼다.

#불방: 자발적 충성의 치욕

20년 만에 처음이었다. 지난 8월 김재철 MBC 사장은 4대강 사업 관련 의혹을 다룬 <PD수첩>을 방송 당일 불방시켰다. 이 결정은 정부의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법원이 기각한 직후 이뤄져 더욱 논란이었다. <PD수첩> ‘4대강’ 편은 일주일 후 가까스로 전파를 탔지만, 언론에 침묵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의혹은 남았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17일 KBS는 천안함 침몰 의혹을 다룬 <추적 60분>을 이중편성 논란 끝에 방송했다. 또 지난 8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4대강 관련 의혹을 다루려 하자, KBS 사측은 4대강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불방을 결정했다. 석연찮음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던 중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불방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음을 폭로하며, 정권에 대한 사측의 자발적 충성을 개탄했다.

이에 KBS 사측은 KBS본부 조합원 60명에 대한 징계 절차와 함께, 불방에 항의한 <추적 60분> 제작진 전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또 정권에 대한 KBS의 자발적 충성을 비판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한 김용진 기자(울산 총국)에게 4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통보했다. 하지만 일련의 불방 사태를 지켜본 시청자들이 징계를 내리고 싶은 쪽은 어디일까.

#징계: 언론 양심에 채우는 족쇄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최대치라고 한다. 전국언론노조가 지난 10월 집계한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언론사 징계 현황에 따르면 180명의 방송·언론인이 징계를 받았다.

올해만 해도 MBC에서 2명의 해직자가 발생했다. 2년 전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다 해직된 YTN 기자 6명을 더하면 모두 8명의 방송·언론인이 현 정권 출범 이후 해직된 것으로, 이는 전두환 군사 정권 이래 단일 정권 최대치다.

그런데 징계 언론인의 수는 더 늘어날 듯 보인다. KBS가 <추적 60분> 불방 사태와 관련해 청와대 외압 의혹을 제기한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소속 조합원 60명을 지난 15일 인사위원회에 회부한 탓이다. KBS가 밝힌 사유는 지난 7월 단체협약과 관련해 KBS본부가 벌인 불법파업 참여 등이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언론인도 생활인인 탓에 징계 혹은 징계의 위협은 어쩔 수 없이 위축을 부른다. 위축은 때때로 양심에 족쇄를 채우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언론 자존심의 힘이 더 센 듯 보인다. 사측의 징계 위협에 KBS본부 조합원들은 “나도 징계하라”고 앞 다퉈 외치고 있다.

▲ 김재철는 MBC 사장 사퇴를 촉구하며 37일간의 파업을 이끈 이근행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오른쪽)을 불법파업 주도 혐의로 해고했다.ⓒ언론노조

#전쟁: 화약 냄새 풍기는 뉴스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방송뉴스에서조차 화약 냄새가 나는 듯하다. 전쟁불사와 다름없는 강경한 주장을 계속하는 정부·여당의 목소리만 대다수 언론, 특히 공영방송조차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탓이다. 실례로 KBS는 지난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 연일 적게는 14건, 많게는 35건의 관련 뉴스를 쏟아냈다. 북한의 추가 도발 시 강력한 응징을 천명하는 목소리, 우리군의 화력 증강 촉구 등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 방송·언론인들의 합리적 의문까지도 뭉개지고 있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 침몰의 이유를 북한 어뢰 폭발이 부른 버블제트의 물기둥 때문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에 한국PD연합회 등이 구성한 천안함 검증위는 정부 발표의 신빙성에 의문을 표시하며 흡착 물질 분석에 대한 문제제기에 나섰지만, 정부는 뚜렷한 반박 대신 ‘좌파’ 공세에만 열중하는 모양새다. 평화를 담보하는 것은 전쟁일까, 평화일까. 역사 속에 답이 있다.

#종편: 예고된 ‘승자의 저주’

반환점을 돈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이슈였던 종합편성채널의 사업자가 2010년 12월 30일께 선정된다. 내년 3월 임기가 끝나는 1기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입장에선 종편채널 사업자 선정이 기일 안에 아슬아슬하게 마친 숙제겠지만, 제대로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종편채널 도입의 근간인 언론법은 지난해 여당이 강행처리 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위법’ 논란을 여전히 해소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야당 추천 방통위원은 관련 정책 의결을 ‘보이콧’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1개 사업자의 존속도 불투명한 현실에서 방통위는 ‘절대평가’를 통한 다수 사업자 선정을 예고했지만, KBS 수신료 인상을 통한 광고시장 확보에는 실패했다.

아쉬운 대로 차선책이었던 전문의약품 광고 허용 등 규제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그 자체로 부작용의 위험이 클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을 달래기 위해 방통위가 내놓은 중간광고 허용과 다채널방송서비스(MMS) 도입 등의 방안은 종편채널을 ‘승자의 저주’로 몰아넣을 것이란 지적이다. 잘못 꿴 첫 단추를 바로 잡는 방법은 무엇일까.

#수신료: 곳간 두고 국민 호주머니 털기

KBS 수신료 인상은 2010년 새해 벽두부터 방송계를 달군 이슈다. 방통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종편채널의 광고시장 확보 방안으로 KBS 수신료 인상과 2TV 광고 폐지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국민 호주머니를 털어 종편채널의 ‘식량’을 확보하자는 것이냐는 언론·시민단체의 반발이 잇달았지만, KBS도 방통위원장과 같이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하지만 KBS이사회는 지난 11월 13일 2TV 광고 축소 없이 현행 수신료를 35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의결해 방통위로 넘겼다. 방통위는 수신료 인상안을 내년 1월 말 국회로 넘길 예정이지만, 예상과 다른 탓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일찌감치 “정권 나팔수로 전락한 KBS 수신료 인상은 불가”라고 밝힌 야당부터 2TV 광고 폐지 없는 수신료 인상안에 격분한 종편채널 희망 신문들의 눈치를 보는 여당까지 부정적인 탓에, KBS 수신료 인상안의 갈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더구나 KBS는 지난해 693억원의 흑자를 낸 데 이어, 올해도 500억원 가까운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확인됐다. 두둑한 곳간을 두고도 세금과 마찬가지인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는 KBS를 시청자 국민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김인규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수신료 인상 이후 KBS 경영계획을 설명하고 있다.ⓒKBS

#재송신: 시청자는 없었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사는 지난 9월을 기점으로 재송신 문제를 놓고 한바탕 전쟁에 나섰다. 지난 9월 법원이 케이블 방송사들의 디지털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동시 재전송에 대해 지상파 방송사의 동시중계방송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판결하자, 곧바로 케이블 방송사들이 지상파 재송신 중단을 결의하고 나선 것이다.

케이블 방송사들은 그간 지상파 방송 재송신을 앞세워 가입자를 확보해왔다. 재송신으로 지상파 난시청 해소에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들 입장에선 디지털 전환 이후까지 케이블 방송사에 무상으로 콘텐츠를 제공해주기도 어렵다.

문제는 이처럼 이해가 충돌하는 과정 속 양측 모두 ‘시청자’를 내세웠지만, 결국 아무도 ‘시청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케이블 방송사들은 가입자들을 볼모로 지상파 광고 송출 중단의 ‘협박’ 카드를 사용했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일련의 갈등을 시청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방통위는 내년 1월 말께 재송신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방통위의 제도 개선안에는 과연 시청자가 존재할까.

#단독중계: 상처만 남은 다툼

SBS는 지난 2월 밴쿠버 동계 올림픽을 독점 중계했다. 2016년까지 예정된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단독으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에 KBS와 MBC는 SBS의 ‘반칙’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2006년 지상파 방송 3사 사장단이 주요 스포츠 이벤트를 공동중계하기로 합의했는데, SBS가 이를 깨고 웃돈을 얹어가며 비밀리에 단독입찰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중계권 갈등은 민·형사상 소송으로 번졌다. ‘보편적 시청권’을 앞세워 방통위가 나서 원만한 협상에 대한 시정명령도 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SBS는 지난 6월 남아공 월드컵마저도 단독 중계에 나섰다.
하지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손익분기점은 넘겼지만 방통위 시정명령 위반으로 19억 70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채널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한 반면 중계 내용에 대한 시청자들의 질타와 반발 또한 터져 나왔다.

결국 지난 9월 지상파 방송 3사는 2012년 올림픽과 2014년 월드컵 등을 공동 중계키로 타협했다. 하지만 후유증은 남았다. 방통위는 지난 11월 지상파 3사에 대한 재허가 심사에서 중계권 분쟁의 책임을 물어 ‘감점’ 조치를 했다. 

▲ KBS는 지난 5월 27일 남아공 월드컵 단독중계를 강행한 SBS를 서울중앙지검에 형사고소했다. ⓒKBS

 #스마트: 방송 철학을 다시 한 번 묻다

2010년 방송가는 ‘스마트’라는 단어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스마트 TV 상용화 등은 플랫폼 중심으로 나뉘었던 방송시장의 새로운 획정을 예고하는 만큼, 이에 따른 방송 관련 정책의 변화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콘텐츠 산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관련 규제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에 대한 대응전략 중 하나다. 방통위도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상파 다채널방송서비스(MMS) 도입 및 협찬·간접광고(PPL) 규제완화 계획을 밝히는 것으로, 지상파의 요구에 응답했다.

무료 보편적 방송 서비스인 지상파의 특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규제완화는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고 재원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해 유효한 방안일 수 있다. 하지만 언론·시민단체들은 규제완화를 논하기에 앞서 MMS로 늘어날 채널의 방향과 함께 유료방송에 준하는 광고규제 완화 등이 방송 공공성의 ‘척도’인 지상파에 횡행하는 게 옳은지 우선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방송 철학’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스마트’ 시대가 다시 한 번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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