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위한 영화 읽기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0년대 반전운동을 이끈 한 가정의 도피기

|contsmark0|‘아메리카 합중국’의 최근역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가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대부분이 1960년대를 기억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반전운동,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미국의 60년대를 그린 영화들이 상당히 많다.
|contsmark1|많은 의식 있는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 저항하고, 또 정의를 부르짖었던 때가 그때였으니 영화의 소재로 많이 다뤄질 만도 하다. 그러나 지금 말하려는 이 영화 ‘허공에의 질주’는 반전과 히피로 대표되는 60년대를 다룬 영화들과는 사뭇 다르다.
|contsmark2|즉, 영화 ‘허공에의 질주’는 60년대의 기억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요절한 리버 피닉스의 우수 어린 눈빛과 인상적인 연기, 그리고 미국의 몇 안 남은 사회파 감독 시드니 루멧의 이름 또한 놓칠 수 없는 이 영화 ‘허공에의 질주’는 한마디로 60년대 세대의 후일담영화다.
|contsmark3|1971년 네이팜탄 생산공장을 폭파하고 경비원을 다치게 한 혐의로 fbi에게 17년간이나 쫓겨다니는 부부 아서와 애니. 그들은 수없이 자신과 아이들의 이름을 바꿔가며 도망 다닌다.
|contsmark4|이들 부부에게 가족은 여전히 하나의 투쟁조직이며, 외부로부터 단절된 자족적인 조직이다. 지금까지 그들은 60년대 반전운동을 이끌었던 정치이념과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힘든 도피생활을 유지해 왔다.
|contsmark5|그러나 이제 그들의 도피(혹은 투쟁)생활은 서서히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그들의 사랑하는 아들 대니의 진학과 장래를 위해 더 이상 온 가족이 도망다닐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만다. 그 상황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겪게 되는 갈등과 그것의 해소 과정을 시드니 루멧 감독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풀어내고 있다.
|contsmark6|영화 ‘허공에의 질주’가 뛰어난 점은 미국 사회의 정치 사회적 역사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정치적 이념을 표면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는 철저히 가족에 관한 얘기들만을 하며, 그 속에서 미국의 정치사회적 역사를 얘기하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닌 현재를 가능케 한 과거의 역사를….
|contsmark7|영화는 6,70년대 미국의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정치적 좌파가 어떻게 생활하고 변화해 가는지를 가족과 개인의 관계를 통해 냉정하게 보여준다. 즉, 아서 부부가 17년 간 받은 고통은 단순히 그들이 지녔던 정치적 이념 때문만이 아니라 그들의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느끼고 받았던 고민과 고통이었음을 담담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contsmark8|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아들 대니는 결국 자신의 장래와 사랑을 포기하고 가족들과 함께 또 다시 도피의 길을 택하지만, 결국 아버지는 아들에게 독립하라는 말을 남긴 채 머나먼 도피의 길을 떠난다.
|contsmark9|너무나도 미국적인 이 결말은 어쩌면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유지될 수 있는 정치사회적 배경으로서 이른바 ‘미국적 가족애’가 얼마나 견고한 것인가에 대해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contsmark10|이른바 386세대인 나는 가끔 우리에게도 이런 후일담영화가 몇 편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프랑스 68세대들이 1976년에 만든 ‘2000년에 스물 다섯 살이 되는 요나’를 보았을 때도 잠깐 그런 생각을 했었다. 몇 년 전 같은 시대를 살았던 김응수 감독의 후일담영화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를 봤을 때의 느낌이 너무 답답했던 기억 때문에 든 생각이기도 하다.
|contsmark11|그래서 난 가끔 생각한다. 우리 386세대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가치관의 상당 부분이 그 뜨거웠던 80년대의 기억에 의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어쩌면 그때 읽었던 몇 권의 책 속에 쓰여진 구절들을 지금껏 신앙처럼(?) 숭배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데 왜 제대로 된 후일담영화 하나 만들기가 힘든 걸까? 좀 더 세월이 필요한 건가? 라고 말이다.
|contsmark12|이승훈 ebs 편성운용팀 pd|contsmark13|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