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책읽기‘시간창고로 가는 길’, ‘프랑스 와인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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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과 와인을 찾아 떠나는 상쾌한 여행

|contsmark0|우리의 길고 긴 파업은 끝났다. 그리고 지금 나는 파업을 했었던 시간을 잊어버렸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 방송 아이템에 목말라하는 가여운(!) 프로듀서일 뿐인다. 그렇게 아이템을 찾다가 두 권의 멋진 책을 만났다. ‘시간창고로 가는 길’, ‘프랑스 와인기행’.
|contsmark1|‘시간창고로 가는 길’은 신현림이란 멋쟁이 시인이 쓴 박물관 기행이다. 그녀와 함께 떠나는 박물관 기행은 귀여운 수다쟁이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행길 같다. 종알종알 떠들다가 박물관에 이르면 ‘어! 박물관에 다 왔네! 우리가 수다 떤 내용하고 비슷하네! 우린 역시 대단해!’
|contsmark2|이렇게 통통거리며 의기양양하게 박물관을 걸어나오게 만드는 그런 여행길 말이다. 옹기 박물관에 가서는 전시된 옹기들을 보고 장진주사를 내지른다. “한 잔 먹세 그려. 한 잔 먹세 그려. 꽃 꺽어 계산하고 무진무진 먹세 그려.”(유리장안의 옹기를 먹고 술 생각을 하는 깜찍한 대담함이여!)
|contsmark3|대나무 박물관에 가서는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떠올린다.(박상륭의 문체가 남도의 흙냄새를 닮았대서) ‘나는 어찌하여 햇볕만 먹고도 토실거리는 과육이 못 되고 이슬만 먹고도 노래를 잘 부르는 귀뚜라미는 못되고 풀잎만 먹고도 근력이 좋은 당나귀는 못되고…
|contsmark4|어찌하여 나는 흙속의 습기 속으로만 파고드는 지렁이도 흘리지 않는 눈물을 흘려야 하는가’ 강릉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을 다녀와서는 정동진 앞바다가 레코드판 같아 보인다고 우긴다.
|contsmark5|어쨌든 나는 재기발랄한 수다쟁이의 입담을 즐기는 다소 의뭉한 누이의 기분으로 함께 여행을 한다. 그녀와 함께 떠나는 박물관 기행은 박물관에 생기를 불어넣는 여행이다. 그녀의 손끝에서 박물관은 박제가 아니고 감탄사가 꿈틀대는 현장이 된다. 이 여행의 끝에 박물관 앞 하늘을 우연히 날았던 새 한 마리까지도 우린 잊지 못한다.
|contsmark6|‘프랑스 와인기행’은 김혁이란 우리나라 최초의 와인 여행 전문가가 지은 정성 가득한 책이다. 김혁은 7년 전부터 와인성을 홀로 여행하며 성주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와인 창고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그에게 와인 만들기는 이 건조한 세기에 자연의 향기를 인간의 뿌리에 접목시키는 행동으로 이해된다.
|contsmark7|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포도밭을 자전거로 달리는 그를 상상한다. (‘첨밀밀’의 여명처럼 하얀 와이셔츠를 휘날리며) 이른 새벽 찬이슬 묻어있는 포도를 입안에 물고 있는 그를 상상한다. 그는 자기 인생의 테마는 와인이라고 했다. 인생의 테마는 와인이라고 말하는 그와 포도주 한병 나눠 마시고 싶다.
|contsmark8|박물관 기행책이나 와인기행 책을 보면서 나는 퇴근길에 와인 한 병 사갈까! 언제 박물관에 가긴 가야할텐데 궁시렁거린다. 나는 프로듀서의 이런 일상이 좋다. 일 때문에 내가 더 풍요로워지는 느낌. 신현림은 햇빛을 즐기며 이불에 돌돌 말려있는 날이 좋다고 했다. 보름달이 조금씩 깍여 초승달이 되는 것을 보고 따뜻한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contsmark9|김혁은 샴페인을 만들었던 이들이 포도주 보관용 지하 창고 속에서 느꼈을 절대 고독을 이해한다고 했다. 그가 찍은 포도 사진은 모조리 흙 냄새가 난다. 햇볕냄새가 좋게 난다. 그의 사진 속의 햇빛과 바람은 한알의 포도를 익히는데 열중하고 있다. 다시 프로듀서의 일상으로 돌아와서 처음 만난 이 두권의 책. 고맙다.
|contsmark10|정혜윤 cbs 편성제작국 pd|contsmark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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