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종편은 치고 나가는데 지상파 PD는 자괴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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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무엇을 느꼈나]방송사 PD 4인의 방담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드는 생각이지만, 올해도 참 다사다난했다. 낙하산, 파업, 해고, 불방, 종편…. 방송계만 놓고 봐도 최근 몇 년 중 가장 다사다난하다 못해 다이내믹한 한 해였다. 지난 20일 여의도 한 식당에 모여 2010년 한 해를 돌아본 PD들의 머릿속도 꽤나 복잡해 보였다. 입사 9년차에서 15년차 사이. 한창 현장에서 치열하게 일해야 할 때이지만, 온전히 프로그램에만 매달리기엔 이들이 짊어져야 할 과제와 고민이 제법 무거운 탓이다.

〈성균관 스캔들〉에 대한 찬사(!)로 시작된 이들의 대화는 박상혁 PD가 〈강심장〉에서 선보인 댄스의 뒷이야기로 이어지며 때로 크고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보다 더 자주 진지하고 심각해졌다. 거침없이 주고받는 대화와 토론 속에 ‘오프더레코드’용 발언도 쏟아졌다. 점심시간, 밥이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치열하게 나눴던 120분간의 토론을 전한다.

 

<사회>
김현수 〈PD저널〉 편집주간(현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 연출)
<토론>
김원석 PD: 2001년 KBS 드라마국 입사. 〈성균관 스캔들〉, 〈신데렐라 언니〉 등 연출.
김현기 PD: 2001년 MBC 시사교양국 입사. 〈MBC스페셜〉, 〈휴먼다큐 사랑〉 등 연출.
박상혁 PD: 1998년 SBS 예능국 입사. 〈SBS 인기가요〉, 〈강심장〉 등 연출.
정성욱 PD: 1995년 EBS 입사. 〈인간의 두 얼굴〉, 〈학교란 무엇인가〉 등 연출.

 

#1. 다이내믹했던 한해

김현수:
올 한해를 돌아보면 어땠나.

김원석: 올 초에 토정비결을 봤는데 뭘 해도 안 된다고 하더라. 원래 단막극을 준비하다가 〈신데렐라 언니〉 공동연출을 시작으로 〈성균관 스캔들〉까지, 거의 10개월 동안 집에 못 들어갔다. 뭘 해도 안 된 것 같지는 않고, 뭔가를 이룬 것도 아니지만, 자양분이 된 것 같다.

박상혁: 지난해 〈강심장〉을 런칭해서 오래 갈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해를 돌아보면 천안함 사태와 월드컵 등으로 예능 프로그램들이 결방되는 일이 많았다. 한창 중요한 타이밍인데, 일방적으로 예능만 결방되는 상황이 아쉬웠다.

▲ 지상파 방송사 PD 4인이 지난 20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 모여 2010년 한 해를 돌아봤다. 이날 방담은 김현수 'PD저널' 편집주간(왼쪽에서 세 번째)의 사회로 진행됐다. ⓒPD저널
정성욱:

정성욱: 다큐멘터리를 하며 1년 2개월 정도 보냈는데, 추수가 잘 끝나서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만들면 만들수록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95년 입사인데, 올해는 그런 걸 더 뼈저리게 느낀 한 해인 것 같다.

김현기: 상반기에는 휴먼다큐 〈사랑〉을 방송했고, 이후 〈W〉로 갔다가 폐지의 아픔을 겪고 지금은 〈불만제로〉로 옮긴 상태다. 〈사랑〉을 촬영하던 도중 파업을 맞았고, 또 파업이 황망하게 끝나면서 2주 만에 방송을 내야 했지만, 여하튼 방송은 잘 나가서 예년만큼은 성과를 거둔 것 같다.

#2. 설마가 사람 잡는다

김현수:
시끄러운 한해였다. 특보 출신 사장이 내려오면서 지난 1년간 어려움도 많았다. 조직적으로 저항했지만, 아직 뚜렷하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다.

김원석: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방송사의 대 선배로서 설마 KBS를 망가뜨릴까 하는 믿음이 아주 조금은 있지 않았나 싶다. 결과적으로 그런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 꼴이 돼서 암담하다.

김현기: 상당히 무기력함을 느꼈다. 〈W〉 폐지 얘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없앨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대중적 경쟁력을 높이려고 예산 늘리고 MC 바꾸고 의욕적으로 시작하자마자 임원회의에서 없애자고 했다. 아무리 아래에서 반대해도 뒤집을 수 없다는 걸 확인한 사건이었다. PD들은 자괴감을 느낀다. 제작부문에 대한 몰이해로 사기가 꺾인다고 해야 하나. 제작으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회사인데 제작부문이 가장 위축되고 있다.

박상혁: 제작파트의 위축은 시사교양뿐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인 것 같다. 방송사가 관료화되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올 한해 시작한 예능 프로그램들 중 성공했다고 말할만한 프로그램이 없다. 오히려 대박은 케이블에서 나왔다. PD들의 역량을 믿어줘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데 윗사람 구미에 맞춰진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니 히트작이 나오지 않는 거다.

김원석: 드라마 PD로서 느끼는 건 그런 위축이 정치권력이 아닌 산업화에 의한 것이란 점이다. 예전엔 프로듀서 앤 디렉터의 의미가 있었는데, 이제는 드라마국이 연출자들만 모아놓은 프로덕션의 느낌이다. 올해 드라마 두 편을 연달아 하면서 느낀 게 ― 제작사 대표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 제작사가 연출자를 리소스의 하나로 본다는 것이다. 제작사에서 캐스팅해야 하는 리소스 중 제일 중요한 게 드라마 작가고, 그 다음은 배우, 마지막이 연출PD라는 인식이 확실해진 것 같다. 인하우스 PD들의 잘못도 있겠지만, 시스템적으로 불균등한 측면이 있다.

정성욱: 동의한다. 시스템이 고착화되면서 예능 히트작이 별로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다큐멘터리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떤 다큐가 성공하면 계속 거기에 기대서 가려는 부분들이 시스템이나 심리적인 측면에서 있는 것 같다.

▲ 김원석 KBS PD(왼쪽)와 정성욱 EBS PD. ⓒPD저널
김원석: 그나마 희망도 있었다. KBS에서 올해 단막극이 부활했는데, 어느 정도 성과가 나니까 우리 방(드라마국)에서도 ‘쟤는 저렇게까지 만들 줄 몰랐는데’, ‘저 작가랑 4부작이나 8부작을 해볼까?’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KBS 드라마국에 있어서 올 한해 가장 긍정적인 희망의 불씨였다. 시스템은 PD들이 노력해서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새로운 경쟁자, 종편

김현수:
케이블TV는 성장하고 있고, 곧 종합편성채널도 출범할 텐데, 위기의식을 느끼나.

박상혁: 사실 올해 예능 PD들이 느낀 가장 큰 충격파는 〈슈퍼스타K〉였다. 케이블이든 종편이든 어느 쪽으로 가면 된다는 일말의 성과를 보여준 사례인 것 같다. 종편이 출범할 경우 예능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연기자에 대한 컨트롤이다. 종편이 몇 개 허가되든 다 살아남긴 힘들 테고 초반에 엄청나게 물량을 투입할 텐데, 치솟는 출연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김원석: 케이블은 엄청난 투자를 집중해서 히트작을 냈고, 종편은 아마 더 전사적으로 지원할 거다. 드라마 잘 쓴다는 작가는 이미 다 물밑 접촉이 완료된 것 같다. 내년 상반기는 힘들겠지만, 하반기에는 대작 드라마가 뻥 터져 나올 거다. 그게 터지느냐가 회사 존망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김현기: 종편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시사교양의 경우 결국 선명성 경쟁이 될 것 같다. 정치적 성향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느냐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또 인포테인먼트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의 경우 결국 기획력 싸움인데, 관료적 시스템이 기획력 신장을 가로막는 내부적 제약이지 경쟁자가 생기는 건 오히려 기획력을 강화시킨다고 생각한다.

박상혁: 올해 예능이 좋지 않았지만 그나마 희망도 있었다. 원래 예능은 스타 중심적인데, 올해 잘 된 프로그램들은 기획으로 승부한 경우다. ‘남자의 자격’이나 〈무한도전〉, 〈놀러와〉, 〈스타킹〉도 그런 경우다. 이제 PD의 기획력이 더 중요해졌다. 스타가 나온다고 해서 봐주지 않는 구조다. 종편이 됐든 뭐가 됐든, 이제 기획력 싸움이 되지 않을까.

#4. 드라마가 감동을 못 주는 이유

김현수:
지상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김원석: 우리 연기자들의 출연료가 일본의 톱스타 기무라 타쿠야보다 많다. 드라마는 인지도 위주로 캐스팅을 하고, 스타캐스팅도 훨씬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가능성 있는 친구들을 캐스팅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스〉를 찍으면서 이 친구들 모두 출연시키는 드라마를 앞으로는 생각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조금씩 부족한 친구들을 데려다가 모아놓은 건데, 우연히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런 식의 시도를 하고 싶다.

정성욱: PD 이데올로기란 말이 있다. PD는 똑같은 걸 하더라도 남들이 하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거다. 소재가 항상 신선하면 좋겠지만 비슷할 수밖에 없으니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실 가장 힘든 부분인데, 가만 보면 좋은 프로그램들은 그런 시각에서 접근했던 것 같다. 관료화 속에서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 김현기 MBC PD(왼쪽)와 박상혁 SBS PD. ⓒPD저널
박상혁: 올 한해 예능은 한 마디로 논픽션인 것 같다. 진정성이랄까. 예전엔 예능에서 게임을 뺄 수 없었는데, 이젠 연예인이 자격증을 따고, 자기 얘기를 막 한다. ‘진짜 웃음’을 보여주기 때문에 진짜가 아닌 것들을 하찮게 만드는 경향도 있다.

김원석: 그래서 드라마가 감동을 못 주는 것 아닌가.

박상혁: 그 점이 예능 PD로서 딜레마다. 예능은 게임하고 놀아야 하는데, 진짜가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순간 일등이 될 수 없는 현실이다. 원래 예능은 〈천생연분〉, 〈동고동락〉 이런 거였는데, 지금은 웃음이 아니라 진짜 참돔을 잡았는지가 중요하다.

김현기: 예능과 교양의 구분이 무엇인가 싶다. 요즘은 예능에서 교양을 한다. 연예인이 해도 논픽션이면 감동이 된다. 예전엔 연예인이 하면 당연히 가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예능과 교양의 구분이 없다. 장르 구분의 의미가 없어졌다.

박상혁: 이런 것들이 종편과 케이블 시대에 돌파구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무리 케이블이나 종편이 시간을 들여 투자를 한다고 해도 공중파는 한 발 앞서 있다. 종편에서 몇 천 만원을 주고 누구를 데려온다고 해도 진정성이나 리얼리티 면에선 아무래도 떨어지지 않을까. 시청자들이 점점 ‘진짜’를 찾고 있으니까, 그런 쪽에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것 같다.

#5. 그래도 해피 뉴 이어

김현수:
2011년 계힉이나 목표가 있다면?

김원석: 올해는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이 일을 함에 있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올 한해는 본의 아니게 기회를 많이 받았는데, 내년에는 내공을 쌓음과 동시에 드라마 방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

정성욱: 다른 사람을 감동시키려면 나 자신부터 감동시켜야겠다는 생각이다. 나 스스로가 열정적이고 감동을 해야 보는 사람도 감동되지 않겠나. 그런 부분에 신경 쓰는 2011년이 됐으면 한다.

김현기: 요즘 후배들이 불안해한다. 과연 교양 PD로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게 어떤 것인지, 본인이 생각했던 프로그램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답을 못 주겠더라. 내가 찾은 유일한 답은 후배들이 즐겁게 열심히 몰두해서 자부심을 갖고 프로그램을 만들게 해야 한다는 거다. 특히 레귤러 프로그램으로 선명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내년도 교양국이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나아지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박상혁: 1년 넘게 프로그램을 하면서 한주, 한주 무조건 1등을 해야 하고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선 한주만 보고 있다가는 떨어질 것 같아 뭔가 전환점을 만들어내야지 싶다.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방법을 찾아내서 오래 사랑받는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다. 또 예능이 이렇게까지 왔는데 다음엔 어떤 트렌드가 올지 궁금하다. 누가 먼저 화두를 꺼내느냐가 큰 시작점이 되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김현수: 내년도 올해처럼 개인적인 성취가 있기를 바란다. 어려움도 있겠지만 고민의 결과물이 쌓이면서 좀 더 좋은 방송의 결과물로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정리=김고은 기자 / 사진=김도영 기자

 

 

방담後

두 시간에 걸친 뜨거웠던 대화가 끝난 뒤, 이날 참석한 네 명의 PD들에게 2010년 한해를 다섯 글자로 요약해 달라고 부탁했다. 시원하게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지만, 미간을 찌푸린 채 장고를 거듭한 끝에 의미심장한 답변을 내놓은 이도 있었다. 이들이 답한 다섯 글자 안에 2010년을 보내는 지금, 우리의 고민과 깨달음이 담겨 있지 않을까.

사람이 다다-정성욱 PD
“〈학교란 무엇인가〉 10부작을 하면서 스태프가 많았는데, 프로그램도 그렇고 결국 사람이 모든 것이란 걸 깨달았어요. 어떤 사람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프로그램의 퀄리티가 달라지죠. 다큐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전부라는 걸 올해는 더 뼈저리게 느꼈어요.”

진짜만 뜬다-박상혁 PD
“시청자들이 점점 진짜만 찾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그 다음이 무엇일 지가 정말 궁금해요. ‘진짜’를 보여줬는데, 이 다음엔 뭘 해야 할 지. 그걸 알고 싶네요.”

벼랑 끝 각성-김현기 PD
“올해 진짜 벼랑 끝에 선 느낌이었는데, 거기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솔직히 예전엔 대충 만들고도 시청률이 잘 나오면 괜찮다 싶었는데, 이제는 그런 걸로 타개할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맨 처음처럼-김원석 PD
“40대를 앞둔 시점에서 젊은 친구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게 드라마 PD가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초심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 때, 앞으로 그런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처럼’은 공영방송이 나갈 길이기도 합니다. 사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죠. 사장님이 맨 처음 와서 했던 말을 생각하고,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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