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치킨과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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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치킨과 피자
  • 김종우 MBC〈PD수첩〉PD
  • 승인 2010.12.29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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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도시가 들어서면 제일 먼저 치킨과 피자 전문점이 생겨난다.
‘책자’라고 부르는, 동네 점포들의 전단지 묶음도 매주 발간된다. 이 책자를 보면 수없이 많은 야식과 족발과 냉면 치킨 피자 스파게티가 한번만 시켜달라고 주민들을 소리쳐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 정도에서 생존경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니 책자의 한 페이지를 점포 하나가 차지하고 있다고 ― 그러니까 집합명제에서 배운 일대일대응 ―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 점포에서 네다섯 개의 광고를 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야식으로 하나, 치킨으로 하나, 피자로 하나 도합 세 개. 그러니까 뭘 먹을까 고민하지만 결국 우리 집에서 먹을 수밖에 없도록 몇 개씩 주문번호를 갖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 점포에 들어가 보면 전화기가 네다섯 개씩 있는데 받는 전화에 따라 응대도 달라진다. ‘네네, **치킨입니다’ ‘네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입니다’ 때로 헷갈려서 ‘치킨.. 아니 피자.. 아니 냉면전문점 **이군요’ 이런 경우도 있다. 그는 아이엠에프 이전에 절삭공구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하며 마르샤를 타고 다녔다고 했다. 이런 IMF 이전의 전설, 방송으로 쓸 만하지는 않다.

그는 ‘치킨나라’와 ‘베니스 스파게티’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었다. 전화기를 두 대 놓고 피자도우를 펴는 기계와 오븐, 그리고 튀김기를 모두 갖추면 된다. 어차피 사장과 직원은 겸직이니까. 가게 안은 추웠다. 사는 집이 따로 없이 점포 한켠에 쉬는 방을 마련해놓았다. 그는 오래된 야상을 입고 취재진에게 고생한다며 굳이 까르보나라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어때요 호텔 식당에서 먹는 거랑 다르지 않죠, 까르보나라 까르보나라… 첫 미팅 때의 도대체 무슨 맛인가 싶었던 그 희뿌연 크림소스의 기억… 학교 앞 소렌토였던가 베네치아였던가.

그런데 왜 이름을 베니스 스파게티로 하셨어요? 무심코 던진 질문. 내가 이걸 해야겠다 하고 말이야 인터넷으로 스파게티를 검색해봤어요. 그러니까 맨 첫 번째로 뜨는 게 베니스더라고. 나야 뭐 베니스가 어딘지 아나… 순옥아 이분들 피자도 하나 해드려라!

베니스. 베니스 스파게티 앤 피자. 흑룡강성에서 온 직원 순옥 씨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지만 까르보나라와 토마토소스는 구분할 줄 안다. 흑룡강변산 셰프가 만든 베니스식 피자를 꾸역꾸역 삼키며 물의 도시 베니스를 잠시 떠올렸다. 그곳에서 만드는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의 질감과 토핑과 바라보는 풍경은 얼마나 근사할까. 베니스가 이 먼데까지 와서 고생한다.

▲ 김종우 MBC〈PD수첩〉PD

그리고 피자와 치킨을 둘러싼 모든 논쟁들을 떠올리며 문득 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생겼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고 있는 피자에 얽힌 정의의 문제와 30분 배달을 지키려다가 한방에 간 젊은이와 소비도 이념적으로 하냐고 묻는 멋쟁이를 떠올리며 ― 뉴욕제과와 베니스피자와, 케이에프씨와 잇 백(it bag)과 나는 래미안에 산다 등등으로 우리를 완전히 해체해 재구성하는 작업이었는데, 이것은 발터 벤야민 형이 아케이드 프로젝트라는 원대한 제목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를 카피하는 지루하고 모호한 작업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누구도 쳐다보지 않을 이따위 작업을 해보는 것이, ‘유기농 피자만 먹기 40일의 기적-내 몸이 원하는 유기농!’을 하는 훌륭한 PD가 될 수 없는 나의 대안이 아닐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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