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낯익은 것을 새롭게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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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낯익은 것을 새롭게 보라
제49회 이태리상 참가기
조원석
  • 승인 1997.07.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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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1. 최종 심사일. tv 픽션의 심사위원 11명이 예심을 거쳐 올라온 6편의 작품 중에서 최종심에 오를 작품으로 2편씩 투표를 하게 되었다. 이때 슬로바키아의 심사위원이 발언권을 얻어 자기들이 출품한 작품 좧sleeping pill좩의 우수성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이응진 pd가 좧길 위의 날들좩에 대한 발언을 하려고 하자 평소 가깝게 지내던 유고슬라비아의 심사위원이 이응진 pd에게 귓속말로 심사위원이 자기나라 작품을 옹호하는 얘기를 하면 오히려 손해니까 이런 때는 아무 소리도 않는 것이 유리하다며 발언을 자제시켰다. 개표 결과 이탈리아의 좧running against좩가 8표, 우리가 출품한 좧길 위의 날들좩이 6표, 슬로바키아의 작품이 5표가 나와 우리나라와 이탈리아가 결선에 진출하였다. (슬로바키아의 작품은 자국 심사위원의 장황한 설명 아닌 변명 때문에 오히려 점수를 잃었다는 것이 그후의 심사위원의 공통된 이야기였다) 결선에는 올랐으나 과연 kbs의 숙원이자 우리나라 전체 방송계의 숙원인 이태리상이 우리의 것이 될 것인가. 심사위원장은 신중한 선택을 위한 브레이크 타임을 갖자고 제의를 하였고 심사위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해당작품의 장단점에 대해 토론을 시작했다. 동정표라도 좋다. 한 표만이라도 더 와라.잠시 후 결선투표가 이어졌다. 이탈리아와 우리의 작품. 작품성에서나 심사위원의 선호도에서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수준이었다. 투표의 결과는 6 : 5. 이탈리아의 작품을 누르고 그랑쁘리로 선정된 것이다. 이응진 pd는 벌떡 일어나 심사위원으로서가 아니라 이번에는 kbs 대표자로서 심사위원들에게 하나하나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끝났다. 그런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미국인 심사위원장이 일어나 1표차라는 single majority는 prixtalia의 정신에 맞지 않으니 압도적 지지를 유도하기 위해 토론을 거친 후에 수상작을 다시 선정하자고 투표의 무효를 주장했다. 이에 영국 심사위원 등 서너명이 동조했다. 그러자 프랑스 심사위원이 반론을 제시했다. 다득표 두 작품을 갖고 투표를 했는데 1표차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결국 사무국에 ‘1표차’의 유효여부에 대한 유권해석을 요청하고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이응진 pd는 나에게 우리가 처음 이 상에 참가한 해와 또 언제 탈퇴하였다가 이번에 다시 참가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정답은 여기에 있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prixtalia에 참여했으며 또 한번도 예심조차 통과하지 못해 결국 몇 년 전 prixtalia의 참가를 포기하고 탈퇴를 하였다는 것. 그런데 이렇게 우리 작품을 지지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는 것 등을 이 pd가 떨리는 목소리로 진땀까지 닦으며 간곡하게 설명하자 심사위원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때마침 사무국에서는 ‘1표차’의 유효여부는 절대적으로 심사위원의 결정에 의한다면서 유권해석을 거부했고, 심사위원들은 single majority의 승리를 인정하였다. 아시아권에서는 nhk 다음으로 kbs도 이태리상 수상방송사의 대열에 든 것이다. (이번 대회에 nhk 역시 각 부문 모두 출품하였으나 모두 예선에서 탈락) 수상작 선정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아름다운 도시 해변의 휴양지 ravenna의 중심광장은 코리아에 대한 탄성으로 밤이 가는 줄 몰랐다. 연출자 김홍종 선배와 ravenna의 명연기자(?) 이응진 pd에게 박수를 보낸다.
|contsmark1|2. 방송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프로그램의 교환으로 국제적 이해를 높인다는 목표로 이탈리아의 공영방송 rai(radio televisione italiana)의 제창으로 1948년 제정된 이 상은 49년부터 매년 rai의 주최로 이탈리아의 휴양도시에서 개최된다. 방송 작품의 국제 콩쿠르로서는 가장 전통있는 상으로서, 유럽에서는 에미상보다 높은 수준의 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라디오의 경우 픽션·다큐멘타리·음악의 3개 부문, 텔레비젼의 경우 픽션·다큐멘타리·아트의 3개 부문으로 각 국에서 선정된 각 부문 10명 내외의 심사위원이 수상작을 결정하게 된다. 상의 종류로는 각 부문 grandprix와 special prize로 나뉘어지는데 스페셜 프라이즈라 하여 2등상의 개념은 아니고 같은 대상으로서 실험정신이 가미된 작품 위주로 선정된다. 상금은 6개 부문의 그랑쁘리와 스페셜 프라이즈에 각각 1천5백만리라(약 7백50만원)씩의 상금이 지급된다. 이 상은 아무 방송사이나 그냥 참가하는 것이 아니고 참가 방송사는 참가비를 매년 조직위원회 사무국에 납부해야 한다. 특히 이태리상은 심사과정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상으로서 심사위원은 심사실에서, 기타 업저버는 모니터실에서 동시에 모든 프로그램을 모니터하게 된다. 심사발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하게 되는데 심사위원 전원이 단상에 앉고 각국의 기자, 방송인들이 심사기준과 수상작의 선정 이유, 탈락 이유 등을 집요하게 묻기도 한다.
|contsmark2|3. 우리들이야 외국에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가급적이면 로마나 밀라노같은 대도시에서 열렸으면 좋겠지만 이태리상은 전통적으로 이탈리아의 휴양도시에서 열린다. 이번에 개최된 1997년 제49회 이태리상은 이탈리아 북부의 해변 휴양지 ravenna에서 열렸다. 그 옛날 동로마제국의 수도였고 모자이크의 발상지이자 계승도시로 이름난 라벤나는 약 20km의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변으로 유럽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세계 각국에서 약 5백여명의 방송인들이 심사위원이나 옵저버로 참가하는 이 상은 심사의 공정성으로 정평이 높다. 시상식 자체보다 선정 후의 press conference가 하이라이트이다. 기자들이나 방송인들이 선정과정, 선정이유 등을 집요하게 캐묻는다. 이번 tv fiction 부문 수상작 발표 기자회견에서는 영국인 기자가 왜 한국은 심사위원이 2명이냐고 물어 우리를 화나게 하기도 했다. 라디오 드라마에 나, tv 드라마에 이응진 pd, 이렇게 두 명이 선정된 것에 대한 항의였으나 같은 부문이 아니란 것을 모른 그 기자의 실수였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심사위원과 업저버에 대한 각종 자료와 기타 홍보물을 피젼홀에 매일 넣어두면 알아서 가져가는 것이었으며, 피젼홀의 효과적인 운용으로 공지사항 등에 대한 홍보 등이 거의 완벽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또한 참가자의 숙식 등은 모두 참가자의 자비로 해결해야 하며 오전 오후 계속해서 심사를 하는 경우만 주최측에서 심사위원에게 중식만을 제공, 우리의 손님 접대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심사위원들은 올 가을에 서울에서 개최될 abu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표명하면서 초청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리가 항공료나 숙식 제공의 부담없이 숙소의 예약정도의 편의 제공으로 이들을 대거 초청한다면 abu의 홍보측면에서도 뜻깊은 일이 아닐까. 이들이 바라는 것은 업저버로서의 초청장 한 장으로, 이는 우리나라의 소개와 아시아 태평양 지역 방송의 세계화라는 측면에서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 초청에 따른 경비 문제를 거론하였더니 그 경비는 자기들이 부담하는 것이지 왜 주최측이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느냐는 반응이었다.
|contsmark3|4. 필자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라디오 픽션의 경우를 통해 심사과정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주제의 표출방법의 선명성에 평가의 초점이 맞춰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이나 연극, 영화, 문학작품 심사의 경우 격조를 유지하고 있는 작품이면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작품도 종종 수상작으로 선정된다. 어떻게 보면 심사위원들이 스스로 자신이 없기 때문에 감히(?) 의견 개진을 못하고 그냥 분위기에 따라가다가 생기는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이태리상의 심사에서 확실하게 느낀 것은 애매한 전개나 막연한 이미지만의 제시로는 국제상의 관문은 절대로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애매하다고 느끼는 것에는 거침없이 잘 모르겠다, 이런 식의 전개는 문제가 있다는 말을 하면서 수상권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심사위원으로서의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까. 또 심사위원의 경우 작품에 대한 피상적인 평가는 오히려 웃음꺼리가 된다는 사실이다. 즉 좋으면 왜 좋은지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하고 좋지 않은 작품이면 왜 좋지 않으며, 그 대안은 이렇다 하는 식의 의견개진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심사위원은 해당분야에 대한 명쾌한 이론과 분석력의 소지자여야 한다. 국제상의 심사가 영어 웅변대회는 아니다. 둘째로 번역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고급영어라는 이름으로 아주 고급스런 단어와 숙어 위주의 번역을 하여 작품을 출품하기도 한다. 그러나 심사위원은 세계 각 국의 사람들로 구성되므로 너무 어려운 단어의 나열은 심사위원에게 도외시되기 쉽다. 오히려 쉬운 단어를 이용하면서도 내용을 격조있게 잘 표현해야 호감을 준다는 말이다. 세계적인 영문 문고판 penguin book의 3천단어 수준의 번역이 국제상 출품의 기본요건인 것 같았다. 쉬운 일상의 단어이면서도 적확한 의미의 전달과 문학적 향취가 배어나는 번역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노르웨이 출신의 한 심사위원은 어려운 단어만 계속 나오는 동구권 한 작품의 대본을 보면서 oldfashion이라면서 번역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길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정말 행운이다’라는 말을 ‘노상에서 단순호치의 경중미인을 천재일우의 기회로 상면하였다’라고 쓰는 꼴이다. 번역의 기준은 펭귄북 시리즈의 3천단어급이면 최상이라는 영국 심사위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겠다.셋째로 논리의 개발과 논쟁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 논쟁에 이기고 사람을 잃는다는 말과 같이 우리는 논쟁에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 대화를 통한 설득이라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심사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서구인들의 논쟁과 설득이었다. 라디오 픽션의 special prize 선정과정에서의 일이다. 노르웨이의 작품과 영국 bbc에서 출품한 좧voluptuous tango좩라는 작품이 결선에 올랐다. 나는 bbc의 작품을 밀었는데 1차 투표 결과 7 : 2로 bbc의 작품이 열세였다. 그런데 bbc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이유에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 결선 투표 직전에 긴급동의를 얻어 몇가지의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를 비논리적이라는 점을 들고 있는데 난 동의할 수 없다. 뮤지컬이라는 형식에서 어떻게 논리가 그렇게 중요한가. ‘캣츠’나 ‘43번가’, ‘사이공’ 등의 뮤지컬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면 되겠느냐. 둘째로 뮤지컬의 매력은 순간순간 기상천외의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obscure란 단어 하나를 일곱 번 동안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했듯이 음악이 너무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셋째로 63분의 제작시간이 지루하다고 하는데 이렇게 심사위원석에서 들으니 지루한 것이지 라디오의 주된 청취장소인 여행길에 자동차 안에서 듣는다면 스피디한 반전에 변화무쌍한 음악으로 오히려 짧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오히려 1백26분이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은 라디오 드라마에 더 큰 투자를 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는데 이렇게 엄청난 제작비로 공들여 만든 이 작품에 상을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누가 이런 투자를 하겠는가”라고 했더니 노르웨이 작품 지지파의 이론적인 지주였던 독일 심사위원 버거트가 어깨를 치면서 재미있는 견해라면서 태도를 바꾸고 결국은 5 : 4 역전 수상작으로 선정이 된 것이다. 그날밤 호텔로 찾아온 bbc의 프로듀서와 작가는 나를 얼싸안으며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는 것이었다. 과연 나는 누구의 단편적인 의견을 듣고 단칼에 내 주장을 바꿀 수 있겠는가. 내 주장을 받아들여주어서가 아니라 참으로 부러운 대화문화였다.
|contsmark4|5. 우수 작품의 대개가 역설적 표현으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었다. 심오한 형태로 오히려 희극적 주제를 표현하고, 희극 속에서 심오한 주제를 그린 것이었다. 작품의 덕목은 절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느끼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수작의 요체였다. 신화 등의 요소를 끌어들여 억지로 주제를 고급화하려는 시도는 많은 심사위원들에게 작가정신의 빈곤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자신의 것은 비하하고 억지로 서구화의 탈을 씌우는 변방의식적인 작품들이 혹평을 받곤 하였다. 소재면에서는 가치기준을 상실한 현대인의 정신모럴과 환경문제가 주를 이루었고, 그 표현방법은 사물을 보지 말고 느끼라는 말이 있듯이 평범하고 낯익은 것을 새롭게 보는 안목이었다는 사실을 특기하고 싶다. 이것이 바로 일상성이며 그 일상성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세계화의 길일 것이다. |contsmar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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