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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간접광고 허용 1년] 음지에서 1000억원 거래 추산…양지에선 47억원에 그쳐

지난해 12월 종영한 KBS 드라마 〈도망자 플랜비〉의 엔딩 장면. 주인공 비와 이나영이 달리는 차 안에서 키스를 한다. 핸들에서 손을 떼었는데도, 차는 차로를 유지한 채 시속 60km로 달린다. 현대자동차 신형 그랜저의 지능형 자동주행장치인 ‘스마트 크루즈 콘트롤’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열 마디 말이 필요 없다. 광고 효과 제대로다.

〈도망자 플랜비〉의 제작지원사인 현대자동차는 드라마 내내 ‘존재감’을 발휘했다. 아반떼, 베르나, 소나타 등 신차들이 총동원됐고, ‘H’자 로고는 물론 빌딩에 걸린 현대자동차 간판도 그대로 노출됐다. 이 모든 것은 지난해 1월 통과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때문에 가능했다. 간접광고(PPL)가 허용되기 전에 많은 드라마들은 협찬 차량의 엠블럼을 가리거나 모자이크 처리하느라 애써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방송 전체 시간의 5%, 화면 크기의 4분의 1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간접광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KBS 드라마 '도망자 플랜비'의 제작을 협찬한 현대자동차. ⓒKBS
이처럼 간접광고 허용 이후 방송가 풍경은 크게 바뀌었다. 최근 방영 중인 KBS 월화드라마 〈드림하이〉에는 제과업체 ‘뚜레쥬르’가 상호명 그대로 등장하고,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선 윤상현이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 로고가 선명한 매장에서 사인회를 하는 장면이 나왔다. MBC 〈무한도전〉도 ‘네이트’ 광고를 통해 시청자들이 직접 자막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고,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던 케이블TV 엠넷의 〈슈퍼스타 K 2〉는 코카콜라와 ‘뚜레쥬르’ ‘올리브영’ 등 CJ 계열사 PPL을 대대적으로 선보였다.

■간접광고 정상화도, 광고 시장 확대도 실패=이처럼 간접광고가 허용된 이후 ‘합법적’인 PPL이 등장했지만, 편법적인 형태의 PPL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협찬사의 상호를 교묘하게 바꿔 노출시키거나 드라마 대사를 통해 특정 제품을 소개하는 식이다. 모두 간접광고라는 점에선 차이가 없으나, 한국방송광고공사(이하 코바코)를 통해 집행되지 않은 지상파 TV의 간접광고는 모두 규제 대상이다.

이에 따라 지난 5월부터 올 1월 초까지 MBC 〈개인의 취향〉, SBS 〈인생은 아름다워〉 등 지상파 드라마 8편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시청자 사과’ 등의 징계를 받았다. 과도한 PPL 논란이 일고 있는 〈시크릿 가든〉에 대해서도 심의위 측은 “위반 사항이 심각하다는 민원과 언론보도가 있어 모니터링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편법적 형태의 PPL은 주로 외주제작 드라마에서 나타난다. 외주제작사의 경우 협찬고지가 가능하고, 협찬사로부터 받는 제작지원은 거의 100% 제작사의 몫이므로 방송사, 코바코와 일정 부분 수익을 나눠야 하는 ‘합법적’ PPL보다는 ‘음성적’ PPL에 매달린다는 분석이다. 코바코가 집계한 지난해 간접광고 시장 규모에서도 6대4의 비율로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매출이 더 적었다. SBS 드라마국의 한 부장급 PD는 “(합법적) 간접광고의 경우 잘 해야 20~30% 떨어질 텐데 외주사 입장에서 뭘 선호하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외주제작 드라마의 간접광고 물량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코바코는 당초 외주제작 드라마를 가장 큰 시장으로 보고 드라마와 예능을 합해 300억원의 간접광고 매출을 예상했다. 그러나 실제 매출은 47억원에 불과했다. 음성적 간접광고 시장 규모가 500~1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적은 액수다.

▲ SBS 인기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아웃도어 브랜드 '몽벨' PPL. ⓒSBS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의 주요 골자는 기존에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간접광고를 양성화 하고, 수익구조를 투명하게 해 방송광고 시장의 파이를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간접광고의 정상화도, 투명성 제고를 통한 시장 확대 효과도 얻지 못한 셈이다.

방송사 역시 “기대에 못 미쳤다”는 반응이다. SBS 드라마 PD는 “방송사 자체제작이 많아져야 간접광고 수익도 많아지는데, 이미 제작비가 치솟은 상태에서 자체제작이 쉽지 않으니 외주제작사에 의존하게 되고, 외주사는 편법적 PPL을 진행하는 악순환이 계속 되면서 간접광고가 전체적으로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PPL 난무, 시청자만 피해=따라서 수익배분 기준 등 간접광고 시행에 관한 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방통위는 “간접광고 형태나 외주 유형이 모두 달라 배분 기준을 만들기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외주제작 등에 관한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류재기 코바코 PPL파트장은 “한 시장에 두 가지 규제가 있다. 돈은 같은데 제작사가 하면 협찬이고, 방송사가 하면 PPL이 된다. 두 가지 규제가 상충되다 보니 시장 경계가 생겨나 활성화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광동 방통위 광고정책팀장은 “현재 방송사 자체제작에 대해 금지된 협찬고지를 상호 허용하고, 외주제작사도 간접광고를 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기아자동차는 SBS 월화 드라마 '아테나' 제작을 지원하고 있다. ⓒSBS
가이드라인이나 자체 규정 없이 편법적 PPL과 합법적 PPL이 공존하면서 시청자의 시청권이 저해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PPL이 무분별하게 난무하다보니 시청자 입장에선 ‘드라마인지 광고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드라마의 흐름과 아무 상관없이 광고를 끼워 넣다시피 해 작품의 질도 떨어지고 시청자들의 환영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청자는 시청자대로 피해를 보고, 광고 수익 구조도 투명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간접광고를 왜 허용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앞으로는 드라마나 프로그램이 광고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역전된 상황이 올 것 같아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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