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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통 책 제목 자체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얻는 편입니다. 차곡차곡 꽂힌 책의 제목만 훑어도 (제 딴에는)번뜩이는 생각이 스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편집실 밤샘모드’로 지냈던 시기가 폭풍처럼 지나가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찾아 온 지 며칠 째. 오랜만에 머리나 식힐 겸, 창의와의 조우를 기대할 겸 책방을 찾았습니다.

기막힌 아이디어를 만나기 전, 먼저 눈에 들어온 풍경은 셀리브러티의 책이 ‘너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은 연예인입니다. 조금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광경. 물론 그 중에는 많이 팔린 것도, 독자에게 일말의 양식이 된 것도 있을 테죠. 하지만 ‘다독(多讀)/학식/교양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교양PD’의 눈에도, 대부분은 양서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시집도 아닌 것이 글보다 여백이 많고, 여백이 지겨울 즈음엔 사진으로 채워집니다. 허나 제가 참 소심한지라, ‘개나 소나 다 작가야’라는 강경한 발언이나, ‘불량품’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은 하지 못합니다. “나도 책 낼래, 김피디의 포도알 다이어리!”정도의 농만 칩니다.

기사를 좀 찾아보니, 같은 생각을 하는 전문가가 있긴 있네요. 안심입니다. 출판사의 한 편집자는 “연예인 기획은 섭외 성사여부가 책 출간까지의 프로세스 중 가장 중요하다”며 “정보의 질에 대한 검증은 일단 덮어둔다”고 합니다. 가장 확실한 세일즈 포인트가 ‘저자’인 작금의 상황에서 그 이름 앞에 독자들이 끓길 기대하는 생산자와, 한없이 가벼운 입문서를 찾는 소비자가 있는 거죠. 한 문화평론가는 결국 “이러나저러나 ‘소설을 쓴 연기자’라는 타이틀로 이곳저곳에 기사가 나간다. 이만하면 남는 장사 아닌가”라고 합니다. ‘글빨’을 두 팔 걷어 검증하겠다는 독자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사고 팔리면 그만입니다.

솔직한 (소수의)연예인들은 대놓고 얘기하듯, 이런 책은 대부분 대필작가가 있습니다. 요즘 말로는 ‘스토리 디렉터’라고 한답니다. 잠깐 링크를 타니 그들의 비애를 다루는 기사도 나옵니다. 붐이다 보니 수요는 늘었는데 공급 역시 늘어 고료는 내려갑니다. “문장력은 중요치 않습니다. 무난하게 쓰는 수준이면 돼요. 500만 원쯤 주고 쓸 수 있는 작가를 선호합니다.” 애정이 없으니 수준도 내려간답니다. 출판사로부터 고료를 떼어먹히는 일도 허다합니다.

유독 여행에세이나 화보스러운 연예인 책이 많다 했더니, ‘책 속의 PPL’이 점점 노골적인 거래로 자리 잡았답니다. 촬영장소, 제품, 진행비용까지 제공해주며 홍보효과를 노린다는 군요. 가장 처음 찾아본 기사에서의 핵심 문장은 〈구글드〉라는 책에서 인용한, “미국도 출판사들이 대박에만 의존하다보니 편집자는 의미 있지만 돈은 벌기 어려운 책을 내기가 점점 힘들어진다”였습니다. 아하, 이런 책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산업적인 배경에 대한 개론이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 김규형 SBS 교양 PD

의미보다는 돈을 좇는 회사, 수준이 낮아지는 구조적인 문제, 소외되는 노동자, 노골적인 거래 등등…스타들이 낸 조잡한 책에 대해 소심하게 힐난하려 글을 쓰다 보니 어째, 이게, 뭔가, 조금씩 뒷골이 땡기기 시작합니다. 참,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말들 같은데, 이런 걸 보고 데자뷰 ‘돋는다’고들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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