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그들’이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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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새해에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1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책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더 나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제시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비단 이 질문이 장 교수가 책에서 다루는 경제학의 범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종합편성채널 정책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한나라당, 방송통신위원회와 보수언론 등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와 주장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조선일보>을 비롯한 사업자들은 종편의 조기 안착을 위해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KBS 2TV 광고 폐지, 황금 채널 보장, 채널 연번제 도입, 전문의약품 및 먹는 샘물 광고 허용 등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국민 부담 증가나 건강보험 재정 악화, 기존 사업자의 권리 침해는 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 스스로 내세웠던 자유 경쟁에 정면 위배된다는 사실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특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도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31일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종편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최시중 위원장이 특혜와 편파 시비는 없을 거라고 한 발언과 관련해선 일언반구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보수 언론학자들은 종편을 통해 지상파 독점 구조를 허물고 글로벌 미디어 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미국이 지난 1996년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을 통해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한 이후 소수 거대 미디어 그룹들이 방송시장의 약 90%를 차지하는 등 심각한 여론 왜곡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종편 도입으로 2만 여개의 일자리가 생길 거라고 공언하지만 과거 뉴미디어 정책이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다는 사례는 말하지 않는다. 한국디지털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은 6만 2천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했지만 2009년 말 현재 직접 종사자는 고작 284명에 불과할 뿐이다.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 역시 3만 6천명의 일자리가 생겨날 거라고 말했지만 2009년 말 현재 406명에 그치고 있다. 위성 DMB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장밋빛 청사진만 말할 뿐 역사적 경험과 사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종편 도입의 정치적 배경과 정-언 유착의 부당 거래 실체가 드러날까 두렵기 때문이다. 장하준 교수가 더 나은 자본주의를 위한 ‘경제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말했듯 우리는 ‘방송PD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적극 행사해야 한다. 그것이 종편이 가져올 미디어 재앙을 막고, 미디어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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