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대한민국에서 자연다큐멘터리스트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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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대한민국에서 자연다큐멘터리스트로 산다는 것
  • 박환성 독립PD
  • 승인 2011.01.19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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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KBS 〈환경스페셜〉 ‘솔개’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자연다큐’만 해온 나는 올해는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몇 작품 돼서 인력이 더 필요해 구인광고를 냈다. 광고 낸지 열흘이 다 돼 가는데 지원자가 없다.

자연다큐는 한국에서 시청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PD들에게도 정말 인기가 없나 싶다. 한 지인이 그 구인 문구를 보고는 “이러니 사람들이 지원을 안 하지!” 했다. 문구에 “올 한해 정말 빡세게 일해 볼 사람... 오지에서 제대로 씻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꺼이 일할 사람” 구한다고 썼다. 그렇게 고생하는 만큼 인건비라도 넉넉히 주겠단 문구를 자신 있게 넣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간을 좀 거슬러 1년 전, 나는 일본으로부터 한 제의를 받았다. 2007년 초 마다가스카르에 촬영 갔다 우연히 만난 일본인 PD가 있었는데, 얼마 전 일본 TBS에서 나와 독립제작사를 차렸다 했다. 일본에서는 자연다큐가 잘 먹히니 건너와서 같이 일하자 했다. 순간 흔들렸다. 일본이 어떤 나라인가? 전 세계에서 자연다큐 연출자로 살아가기 딱 좋은 나라다.  최소한 관객들의 취향 면에서 봤을 때.

일본은 몇 년 전 수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일본영화 기대작들을 제치고 자연 다큐멘터리 〈Earth〉(한국에선 배우 장동건이 내레이션하며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며칠 만에 극장에서 내린 영국·독일 합작 다큐)가 2위와 압도적인 차이로 흥행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다.  일본 내에선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화와 전설이 많고 현재의 일본인 정서에도 깊은 영향을 미쳐,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를 비롯해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와 다큐, 애니메이션이 아주 인기다.

그런데 바로 이웃 나라인 한국은? 자연다큐를 제작하는 사람으로 자신 있게 말하는데 가장 인기 없는 장르다. TV에서는 드라마와 오락프로의 득세 속에 1년에 겨우 몇 편 요식적으로 방송되고 있고, 영화 쪽 제작자들도 대놓고 말한다. “한국에선 최소 10~20년 내에는 동물이 주인공인 영화나 다큐는 흥행 안 된다”고. 작년 그 제의를 받았을 때, 나는 한국에서 ‘호랑이’ 자연다큐를 제작하고 있었다. 내 판단에 ‘호랑이’는 제대로 뜰 줄 알았다. 그래서 “이것까지만 해보고 안 되면 그때 건너가겠다” 했다. 그런데 결국 ‘호랑이’는 그냥 묻혀버렸다.

지금 일본으로 가면 분명 현재 한국에서 지내는 것 보다 따뜻하게는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다른 판으로 가는 것은 왠지 똥 닦다 말고 스시 집어먹으러 가는 찜찜한 도피 같은 느낌이다. 2011년 현재 한국의 방송제작 현실은 방송사 내부 PD들이 하기 꺼려하는 프로그램을 독립PD들이 맡아 하고 있다. 그런 독립PD들도 자연다큐는 꺼려한다. 창립 멤버로 몸담고 있는 ‘자연다큐제작자협회’는 40대이면서 아직 싱글인 내가 막내다.

▲ 박환성 독립PD

지금까지 만난 여자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더 집중해주지 않아서인지 모두 떠나갔다. 뭐가 좋다고 아직도 이 쓸쓸한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걸까? 아마도 제대로 한방 터트리지 못한 미련이고 아쉬움이며, 언젠가는 터트려 보고자하는 욕망일 것이다. 얼마 전 내 머리에 확 꽂히는 소재를 중국에서 하나 발견했다. 그것이 ‘호랑이’ 프로젝트처럼 또 다시 아쉬움으로 돌아올지, 뜻밖의 히트를 치게 될지는 모를 일이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아 그것 정말 재밌더라!”라는 작품 하나 제대로 만들어보고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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