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요즘도 9시 뉴스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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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연예인으로 도배…“뉴스냐 섹션TV냐”

“요즘 뉴스 볼 게 없다.”

지상파 방송 3사의 저녁 메인 뉴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백화점식 보도에, 방송사별로 이렇다 할 특색도 차이도 없는 아이템. 비단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방송 뉴스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겠다’고 각오라도 한 듯 보인다.

‘뉴스데스크’, 정말 이게 최선입니까?

어제(20일) MBC 〈뉴스데스크〉를 보다가 황당한 느낌을 받았다. ‘단독취재’라며 거창한 타이틀이 화면을 가득 채우기에, 예전 ‘카메라출동’처럼 정치권이나 기업체의 비리라도 파헤치는가 싶어 시선을 집중했다. 그런데 뒤따라 나온 ‘납치된 주부 극적 탈출’이란 리포트 제목과 앵커 멘트에 맥이 빠졌다.

▲ 지난 20일 MBC '뉴스데스크' ⓒMBC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괴한에 납치된 주부가 극적으로 탈출했습니다. 괴한도 잡혔습니다.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범인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었는지, 박재형 기자가 단독 취재했습니다.”

요지는 이렇다. 한 주부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차량에 올라타다 흉기를 든 강도에게 납치를 당했는데, 강도의 협박에 따라 주차장을 빠져나가다가 우체국 택배차량을 보고 기지를 발휘해 도움을 요청했고, 택배차 운전자가 몸싸움 끝에 범인을 잡았다는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고, “차분한 대응과 택배 운전사의 용기”로 비극을 막았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이미 범인은 경찰에 넘겨졌다. 사건 자체는 단순 형사사건이다. 그렇다면 지하주차장의 안전 사각지대 실태에 대한 추가적인 취재가 있었나? 없었다. 그런데 거창하게 ‘단독취재’라며 BGM까지 틀어 호들갑스럽게 보도한다. 스스로도 민망하지 않을까.

뉴스의 탈을 쓴 연예정보 프로그램

더욱 황당했던 것은 정치 뉴스의 실종이다. 어제 〈뉴스데스크〉에는 단 한 건의 정치 뉴스도 없었다. 미-중 정상회담 뉴스를 제외하면 사건·사고 소식과 신정환 상습 도박사건, ‘카라’의 전속계약 해지 소송 등 연예인 관련 뉴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독재 시절 ‘사법 살인’의 피해자인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한 간첩혐의 무죄 판결도 KBS와 SBS는 단독 리포트로 보도했으나, MBC는 단신 처리하는데 그쳤다.

▲ 사진 위 왼쪽은 '뉴스데스크' 12일자 '현빈 해병대' 보도. 오른쪽은 15일자 '아이유 열풍' 보도. 사진 아래는 지난 12일자 에어컨 보도. ⓒMBC
물론 KBS와 SBS라고 다를 게 없다. 기록적 한파, 스키장 리프트 사고, 고교생의 상습 개 학살, 자동차 보험료 비교 등 어느 채널을 틀어도 똑같은 뉴스들만 쏟아내고 있다. 반면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 등 진보정당이 20일 ‘진보진영 대표자 연석회의’를 열고 ‘야권통합’ 논의를 본격화 했는데도, 방송 3사는 이를 단신으로도 다루지 않았다. 관심 밖인 거다.

어디 이뿐인가. 방송 뉴스가 자사 프로그램 홍보에 팔 걷고 나서지를 않나, 심지어 기업 제품 홍보까지 한다. 〈뉴스데스크〉는 지난 12일 박태환 선수와 김연아 선수가 에어컨 광고 모델 경쟁을 벌인다는 소식을 보도하며 “앞으로 제가 금빛 레이스를 하는데 있어서 금빛 바람을 불어주는 휘센과 함께 한다면”(박태환) “스마트 에어컨 많이 사랑해주시고요”(김연아) 등의 제품 홍보 멘트를 그대로 내보내 “이게 광고지 뉴스냐”는 비판을 받았다.

SBS 〈8뉴스〉는 지난 19일 자사 월화 드라마인 〈아테나: 전쟁의 여신〉의 인천대교 총격전 촬영 장면 소식을 전하며 “아마 영화에서도 보지 못하셨던 아마 그런 그림들, 아주 근사한 장면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라는 낯 뜨거운 멘트를 전하기도 했다. MBC 역시 지난해 뉴스를 통해 자사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홍보한 전력이 있다. ‘정권 홍보방송’이라고 비난받는 KBS는 더 말할 필요 있을까.

정치부 기자들, 집단 휴가?

▲ 지난 19일 SBS '8뉴스' ⓒSBS
요즘 방송 뉴스를 보면 정치부 기자들은 휴가라도 갔나 싶다. 그만큼 사건·사고 뉴스 천지다. 국회에서 싸움이라도 나면 “우리 국회는 늘 싸우기만 한다”고 날을 세워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정작 대부분의 정치 뉴스는 여야 공방으로 다루고, 그나마 ‘갈등’이 없으면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 논란이 뜨거워도 직접 검증에 나설 생각은 안 하고, 야당 의원들이 제기하는 의혹과 이에 대한 여당의 반박을 그대로 옮기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정치 뉴스의 실종을 비판하면 “이슈가 없지 않느냐”고 툴툴 댄다. 여야가 정치 공방 없이 잠잠하거나, 유명 정치인이 뼈 있는 말을 하지 않는 한 방송사 보도국 간부들에게 정치란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모양이다. 눈에 띄는 ‘기획’ 보도도, ‘탐사’ 보도도 찾아보기 힘들다. 4대강 사업이나 무상급식 이슈 등을 다루라고 시민사회에서 요구하면 “새로울 게 없다”며 외면하거나, 다루더라도 역시 공방으로 처리하기 일쑤다.

탤런트 현빈의 해병대 입대 소식과 ‘아이유 열풍’보다 못한 게 정치·경제·사회 뉴스다. 이러니 “뉴스 볼 게 없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어디 일부만의 생각일까. 단적으로 MBC 뉴스 시청자게시판을 보더라도 걱정과 불만이 넘친다.

“요즘 MBC 뉴스데스크를 보고 있으면 답답합니다. 정치, 사회 기사에 대해서 정말 다루기는 하는지 싶을 정도입니다.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은 내용은 이제 나올까, 저제 나올까 기다려도 나오지가 않네요.” (아이디 kill1002)

“갈수록 이게 뉴스인지 연예프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자리에 앉은 아나운서, 앵커 분들도 창피한줄 아십시오. 주말 뉴스는 아예 언급할 가치를 못 느끼겠습니다.” (아이디 JWVOICE)

“‘MBC 뉴스데스크’를 ‘MB 연예·범죄·신변잡기 뉴스데스크’로 바꾸심이 어떠하신지…” (아이디 LCYONG0697)

‘순치’된 방송…‘공정방송 사수’ 헛헛한 외침만

예전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해 뉴스를 봤다. 그런데 요즘 TV 뉴스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정부가 뭘 하는지, 정치권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사회 시스템에 문제는 없는지 알 수 없다. 오직 알 수 있는 것은 추위가 계속 되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이것이 방송사 사장들이 그토록 강조해온 ‘경쟁력 강화’의 결과라면, 다가올 종편과 보도전문채널 시대에는 더 하면 더했지 덜 할리 없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언론노조와 시민사회가 그토록 목소리 높여 성토했던 ‘방송 장악’의 결과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다. 이게 어디 정권과 ‘낙하산’, ‘간부’들만 탓할 일인가. 말로만 ‘보도투쟁’ 하겠다며, ‘방송 순치’에 자신도 모르게 동참하거나 길들여진 기자들의 책임은 없을까. 시청자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입으로만 외치는 ‘공정방송 사수 투쟁’이란 구호는 헛헛하기만 하다. 부디 지금이라도 그 말의 무거움을, 그 책임을 깨우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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