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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뜨겁다. 야권의 “모두에게 복지를”(보편복지)에 맞서 한나라당은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선별복지)를 내세웠고 민주당 내에서는 “증세없는 복지”와 “증세를 통한 복지”가, 그리고 진보진영에서는 “부자들의 증세”(내라)와 “우리 모두의 증세”(내자)가 맞서고 있다. 복지의 백화제방,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문제를 들여다 보는 방법은 수없이 많겠지만 여기서는 지난 10년간 빛나는 성과를 거둔 행동/실험경제학, 그리고 진화심리학/생물학이라는 안경을 써 보자. 보편복지는 공공재나 공유자원(common pool reource)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딜레마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기적 인간이라면 최적의 답을 찾을 수 없다.

다행히 이들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관찰하듯, 아니 우리 스스로 그러하듯 우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 맹자의 ‘측은지심’은 하이예크나 프리드만이 주장하듯 원시적 감정이 아니라 인간 본성 중 하나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은 상호적(reciprocal)으로 행동한다. 칸트가 말한 것처럼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것처럼 남을 대접”한다. 나아가서 눈에 띠게 공정함을 벗어나는 사람은 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그것이 가까운 미래에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지라도 기꺼이 응징을 한다. 이런 속성이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협력이 이뤄져온 이유이며 그렇게 우리는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해 온 것이다.

▲ <경향신문> 2월 7일 1면

협력, 즉 우리의 복지를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세금을 내 봤자 국가가 복지가 아닌 곳에 쓴다면, 예컨대 4대강 사업에 써버린다면 증세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지금 정권은 믿는다 해도 만일 다음 정권이 복지 예산을 삭감한다면 어찌 할 것인가? 따라서 사회복지세와 같이 복지를 용처로 정해 놓은 목적세를 거두고, 정권이 바뀌어도 건드리지 못할 정도로 모두에게 확실한 이익과 만족을 주는 복지부터 시행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는 복지 수혜자(수급자)의 무임승차이다. 행동경제학/진화심리학이 밝힌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의도나 노력과 관계없이 가난에 빠진(빠졌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기꺼이 도우려 하며 특히 그가 자립의 의지를 보일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따라서 모든 복지에는 자활 프로그램이 따라 붙어야 한다. 예컨대 실업급여에는 실효성 있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필수적이다. 아동수당과 저축을 결합시킨 아동발달계좌도 그런 유의 정책이다.

셋째는 납세자의 무임승차이다. 장관들의 청문회를 보면 이런 의심은 불행하게도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다. 공공재게임에서 처음에 기꺼이 기여했던(납세) 사람들도 남들이 돈을 덜 낸다는 걸 확인하고 나선 자신도 기여를 줄이다가 결국 아무도 한푼도 내놓지 않는 비극적 결과를 맞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호적 응징자(reciprocal punisher)의 역할을 법으로 만들어야 한다. 즉 문제는 증세 자체가 아니다. 부담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그리고 규칙 위반자를 어떻게 응징할 것인지 합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넷째는 나도 결정적인 혜택을 볼 수 있는 복지이다. 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이 대상이 된다. 암의 세계적 권위자도 암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건강은 지극히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복지라면 국민 모두 기꺼이 납세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늙는다. 따라서 노인복지 역시 모두 혜택을 볼 수 있는 항목이다.

▲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다섯째, 모든 복지를 나라가 운영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근거리의 친밀 노동이 중요한 사회서비스는 국가가 자금을 지원하되 지자체가 운영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경제가 담당할 수도 있다. 앞에서 말한 무임승차자가 적은 집단이 더 나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행동경제학과 진화생물학이 밝혀 낸 네트워크 상호성, 또는 집단 선택의 응용이다. 현재 우리의 논쟁은 복지국가를 향한 몇가지 경로를 확인하는 중이다. 어느 한 경로만 선택할 이유는 없다. 이제는 체계적인 논리와 수치를 갖춘 구체적인 논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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