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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권에 의한 언론자유 침해

지난 3, 4년 전부터인가. 시사고발프로에 ‘방영금지가처분’이란 말이 따라 붙기 시작했는데, 이젠 어느새 일반화, 도식화돼서 시사고발프로 담당자들을 위축시키기에 이르렀다. 비리고발 대상자들은 사안이 발생하면 먼저 ‘방영금지가처분’ 신청, 다음으로 반론권 청구, 그리고는 명예훼손과 재산상의 불이익을 앞세워 민사손해배상을 청구해 온다. 웬만한 사람들은 거의 이 순서에 따라 방송사와 제작진 측에 대응한다. 문제는 이렇게 대응을 해오는 사람들이 실제로 방송에 의해 피해를 입거나,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라기보다는 대부분 권력이나 금력을 쥐고 코방귀 꽤나 뀔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데 있다.작년, 필자 역시 비리사학재단을 고발하는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하면서 ‘방영금지가처분’이라는 걸 겪어야 했다. 당시 취재 대상자는 3주 동안의 취재기간 내내 공식적인 접촉을 피하며, 심지어 취재진의 학교 진입까지 휘하 교사들의 물리력을 동원, 저지하면서 반론의 기회와 정식 취재를 거부하였다. 그러다 편집제작을 시작하자 음성적인 인맥을 동원하여 갖가지 회유와 압박을 가하였고 그것이 무산되자 법원에 ‘방영금지가처분’을 신청하였다. 다행히 당시 재판부는 ‘방영금지가처분’ 신청을 기각하여 방송은 됐지만, 제작기간 내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훼방을 놓다가 결정적인 후작업 편집기간에 ‘방영금지가처분’을 청구하여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제작시간을 쓸데없는 소송에 허비하여야 했기에 심적인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사법부가 지난 7월 28일 방송예정이었던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에 방송금지 결정을 내린 것은 지난 3, 4년 간 우리사회에 논란이 돼 온 언론에 대한 ‘가처분’ 소송제도가 얼마나 제도적인 맹점을 가지고 있는지를 결정적으로 확인시킨 사건이라 하겠다. 그간 논란이 됐던 사례를 보면, 98년의 MBC <시사매거진2580>의 금란교회 문제, 의 만민교회 문제, 그리고 SBS의 <그것이 알고싶다>가 JMS 문제 등 수 많은 고발아이템에서 ‘방영금지가처분’ 소송에 휘말려 담당자들이 곤혹을 치러야 했다. 이처럼 지난 사건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언론에 대해 가처분신청을 청구해온 사람들이란 대개 자신의 확고한 기득권을 유지할 필요와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이 사회에서 힘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혹은 그 힘을 유지하기 위하여 저지르는 사회적 비리는 당연히 언론의 끊임없는 감시 속에 폭로되고 고발돼야 한다. 그런데 ‘방영금지가처분’ 제도 등이 바로 이 비리집단의 자기방어적인 제도로 化하여 악용되고 있는 것이다.여기에 사법부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언론관(言論觀)이 더하여져 <그것이 알고싶다> ‘아가동산 그 후 5년’편에 대한 폭압적인 방영금지 결정이 내려지게까지 됐다. 재판부는 이미 5년 전에 언론을 통해 그리고 대법원까지 가는 사법부의 판결을 통해 시비가 가려졌기에 더 이상 언론에서 언급하여선 안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재판정에서 판결 난 사건이라도 후에 새로운 사실이 밝혀져 뒤집히는 일이 어디 한 두 건이었던가. 진실추구를 위해선 아무리 완벽한 재판을 했다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관심을 벗어나 감춰지고 덮여질 수 없는 것이다. 아가동산 관련 사건 역시 최근 새로운 증언이 나오고, 관련된 상황들이 계속 진행형이라면 사회정의를 위해 당연히 끊임없는 언론의 감시와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은 형사소송 절차를 위하여 필요한 것일 뿐이지 우리사회 현상의 모든 절차와 과정에 해당되는 원칙일 수는 없다.법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법을 위해 존재하여선 안 된다. ‘법은 보호될 가치가 있는 정조(貞操)만을 보호한다’고 했던 명판결(?)이 아니더라도 명예는 그것을 가질 만한 사람만이 누리고 보호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꾸만,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가 머리에 맴돈다. 송영재 SBS 교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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