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밤’ 성공하려면 실패에서 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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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3개월만에 다시 대수술…‘신입사원’‘나는 가수다’ 신설

지난 2009년 9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를 긴급 수혈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3개월 동안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결과는 실패. 다시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 하던 2011년 2월, 〈일밤〉은 다시 김영희 PD를 해답으로 제시했다. 과연, 이번 답은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조급함과 설익음, 폐지와 실패의 악순환

요즘 MBC 예능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것도 무려 1000회가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 프로그램 〈일밤〉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MBC 예능의 자존심을 지키고, 〈놀러와〉, 〈황금어장〉은 평일 밤을 꽉 잡고 있는데, 〈일밤〉은 가장 치열하다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에 ‘붙박이 꼴찌’를 하며 평균 시청률을 깎아 먹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잘 나가던 시절에야 ‘간판 예능’이었지, 끝없는 부진으로 계륵 같은 처지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 10일 기자간담회에서, 김영희 '일밤' 책임PD ⓒMBC
〈일밤〉의 부진은 새삼 거론하는 게 입이 아플 정도다. KBS 〈해피선데이〉와 SBS 〈일요일이 좋다〉가 시청률 1위 다툼을 하건 말건, 〈일밤〉은 고립된 채 묵묵히 한 자리 수 시청률을 지켰다. 그 사이 숱한 코너들이 등장했다가 소리도 없이 사라져 갔다. 방송 4회 만에 폐지된 ‘대망’이나 6회 만에 막을 내린 ‘퀴즈 프린스’, ‘소녀시대 공포영화제작소’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그 중엔 ‘밥상 로드쇼 맛장’, ‘에코하우스’ 같이 존재감이 미미하거나 ‘패러디극장’, ‘대한민국 스타랭킹’처럼 누가 봐도 급조된 듯한 코너들도 있다.

지난 2년여 동안 〈일밤〉은 줄잡아 10편이 훌쩍 넘는 코너들을 선보였다가 폐지했다. 한때 〈일밤〉의 한 코너로 방송됐던 ‘우리 결혼했어요’와 ‘세바퀴’ 이후로는 기억에 남거나 인상적인 시도를 찾기도 힘들다. 〈일밤〉은 마치 조급증에 걸린 듯이 부진한 코너를 없애고 새 코너를 찍어내기 바빴고, 그러면 그럴수록 부진의 늪은 깊어졌다. 그러다보니 기획의도를 알 수 없는, 구성 단계부터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은 프로그램들이 나왔고, 당연히 경쟁에서도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대세’를 제대로 좇거나, 트렌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특유의 형식을 정립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해서 예능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그저 똑같은 얼굴들과 떼를 지은 출연진들을 내세워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다. 그래서 “식상하다” “올드하다”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는 비판들이 나왔다.

지난 2009년 12월 김영희 책임PD를 구원투수 삼아 선보인 ‘공익적 예능’도 해결책은 되지 못했다. 멧돼지 사냥에 나선 ‘헌터스’는 동물보호단체 등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은 끝에 4주 만에 폐지됐고, 감동을 내세운 ‘단비’와 ‘우리 아버지’도 최대 8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이후 ‘뜨거운 형제들’이 괜찮은 반응을 얻으며 〈일밤〉 부활의 신호탄이 되는 듯 했으나 거기까지가 전부였고, ‘오늘을 즐겨라’ 역시 자리를 잡는데 실패했다. 결국 ‘뜨거운 형제들’은 11개월 만에, ‘오늘을 즐겨라’는 6개월여 만에 이달 말 폐지된다.

또 다시 개편…‘신입사원’ ‘나는 가수다’ 신설

〈일밤〉은 이르면 이달 27일, 또는 다음 달 6일 개편을 단행한다. 제목도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풀네임을 버리고, 간단하게 〈일밤〉으로 줄인다. 김영희 책임PD는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전통은 살리되 시대의 분위기와 맞추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개편에 맞춰 ‘신입사원’과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등 새 코너를 선보인다. ‘신입사원’은 이미 알려진 대로 MBC 아나운서를 대국민 오디션으로 선발하는 프로그램이며, 김영희 PD가 직접 연출을 맡은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이 서바이벌 대결을 펼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김건모, 나얼, 성시경, 인순이 등 쟁쟁한 가창력의 가수들이 2주마다 진행되는 공연에서 주어진 미션 곡을 소화하고, 500명의 청중평가단에 의해 가장 낮은 순위를 받은 가수가 탈락하는 방식이다. 탈락한 가수의 자리는 또 다른 가수 1인으로 교체돼 새로운 경쟁에 돌입한다.

김영희 PD는 “한 사람씩 탈락시켜 최후의 1인을 뽑는 일반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5~7인의 가수들 가운데 한 명씩 탈락하고 새로운 가수가 들어오며 5~7인의 가수들이 계속 해서 다양한 무대를 만들어 갈 것”이라며 “재미있고 감동적인 무대를 선사한다는 게 프로그램의 의도”라고 밝혔다.

▲ '일밤'이 새롭게 선보일 코너 '신입사원' ⓒMBC
〈일밤〉의 이번 개편은 최근 예능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의식한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제작진은 선을 긋고 있지만, 대국민 아나운서 오디션을 표방한 ‘신입사원’이나 오디션의 방식을 살짝 비튼 ‘나는 가수다’나 〈슈퍼스타 K〉 성공 이후 불어 닥친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이다.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장수 프로그램인 〈일밤〉도 대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번 개편은 〈일밤〉의 자존심이 걸린 것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성공 여부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다. 이번에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한다면, 〈일밤〉은 존폐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지도 모른다.

실패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그런데 이번 개편 역시 기대보다는 우려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신입사원’이나 ‘나는 가수다’ 모두 방송을 3주가량 남겨둔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청사진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가수다’는 당장 14일 첫 녹화에 들어가는데 전날에야 출연자가 확정된다고 한다. ‘신입사원’은 14일까지 아나운서 지원자를 공개 모집하고, 첫 방송에선 차인태·변웅전 전 아나운서가 출연한 가운데 ‘헌정 쇼’를 연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거의 전부다. 준비도 거의 안 된 상태에서 지난달 28일 성급하게 기자간담회를 열어 홍보에만 열을 올렸다.

이런 가운데 아나운서 응모 과정에서 지원자들에게 개인 정보 활용이나 초상권 등의 권리 이양에 대한 동의를 강요해 ‘신종 노예계약’이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대책도 달리 없다. ‘신입사원’이 성공한다고 해도 방송 내내 비판적 여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요즘 ‘1박2일’이 출연자 하차설이나 구설수로 간혹 흔들린다고 하나, 당분간은 1위 자리를 쉽게 뺏기지 않을 것이다. SBS 〈일요일이 좋다〉 ‘런닝맨’도 최근 기분 좋은 시청률 상승세를 타고 있다. 여전히 일요일 저녁 시간대는 치열한 전쟁터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일밤〉이 자리를 잡기 위해선 성공한 프로그램의 모범답안을 좇기보다는 그동안 〈일밤〉이 실패했던 이유를 곱씹어보고, 실패의 과정을 답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일밤〉도 살고, 김영희 PD가 말한 “시청자들의 선택의 다양성”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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