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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매미소리

선거철만큼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때가 없으므로 칼럼이라면 당연히 선거판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나, 오늘은 그냥 조그만 여름곤충 이야기나 하나 하자.날씨가 더워지는가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매미소리가 고막을 울린다. 굼벵이 적에는 하나도 안보이던 매미들이 여름이 되자 일제히 나타나 울어대는 것이 한편으로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도 하지만, 매미도 매미 나름이라 시끄러운 도심지의 매미, 특히 서울 여의도의 매미소리는 들을 때마다 신경이 거슬린다.매미가 몇가지나 있는지 잘은 모르지만, 옛날부터 흔히 보던 보통 매미는 혼자 맴맴맴맴 하고 리드미칼하게 우는데, 여의도 매미들은 수십 수백마리가 한꺼번에 매----- 하고 리듬없는 한가지 톤으로 마치 사이렌을 울리듯 울어댄다. 한놈이 울기 시작하면 곧 주변의 매미들이 따라 울기 시작해 여의도의 한 블록 전체가 엄청나게 시끄러운 매미소리로 가득찬다. 이렇게 한꺼번에 울기 위해서인지 여의도 매미들은 대체로 한곳에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여의도에 가로수로 많이 심어져 있는 벗나무를 올려다 보면 매미들은 가지 하나에 너댓마리씩, 많을 때는 예닐곱마리씩이나 몰려 있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보통 매미들은 홀로 자기만의 영역을 확보한 다음, 남과 다른 저만의 소리를 내기 위해 맴맴거리는 속도라든가 횟수, 소리의 높낮이, 쉬는 시간 따위를 각기 달리 하므로, 숲속에 수십마리의 매미가 울더라도 완전히 똑같은 울음소리는 없다. 모든 새나 곤충들이 우는(또는 노래하는) 이유가 수컷이 암컷을 불러 짝짓기를 하기 위한 것이라면, 보통 매미들이 다른 동물들처럼 ‘나만의 훌륭한 배우자’를 구하려 하는 반면 여의도 매미들은 ‘누구의 짝이 될지 모르는 배우자들’을 기다리며 우는 셈이다.작년에 TV뉴스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여의도 매미들은 주변 소음에 강한 종류의 매미라고 한다. 여의도 말고 서울 강남의 경부고속도로 기점 부근의 가로수에서도 그 시끄러운 합창매미가 우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곳 매미들의 울음소리 역시 달리는 차량의 소음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다. 요컨대 소음이 심한 도심지의 매미들은 멀리 있는 암컷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주변소음을 능가하는 소리를 내야만 하는데, 그러다 보니 혼자 우는 보통 매미들은 도심에 적응을 할 수가 없어 조용한 숲으로 가버리고, 소음에 집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별종 매미들만이 도심지 가로수에 대량 서식하게 되었다는 얘기가 된다.하지만, 설사 여의도의 매미소리가 생태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하더라도, 여의도 매미소리는 여전히 듣기 싫다. 이상한 버릇일지는 몰라도, 내가 여의도 매미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다시피 하는 것은, 우선 이것들이 비정상적인 곤충들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날개 달린 곤충이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조용한 숲으로 날아가 살 수 있을 터인데, 굳이 공해로 찌든 도심지에 날아와 악쓰듯 울어대는 것을 보면, 이것들이 공해에 대응해서 태어난 돌연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공해에 강한 별종이 발생한다는 것은 생태학적으로 우려해야 할 일이 아닌가! 여의도 매미가 싫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들의 행태가 인간들의 못난 집단주의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정작 나서야 할 때에는 잠잠하다가도 만만한 일이 생겼다 싶으면 한꺼번에 왕왕대는 언론의 행태라든가, 공익은 전혀 생각치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집단으로 소리치는 사람들, 그리고 유행 따라 소문 따라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줏대없는 사람들도 여의도 매미들을 생각나게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더욱 그런 모습들이 늘어날 터이고.다행히도 지옥같은 서울의 도심을 벗어나면 재주껏 제 목소리를 뽐내는 보통매미들의 맴맴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거기에는 또 쓰르람거리는 소리와 츠츠츠찌욧거리는 매미 사촌들의 소리들이 심심치 않게 섞이곤 하여, 여의도 매미들의 함성에 피곤해진 내 귓고막을 달래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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