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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5천만 개의 드라마

소시민 이야기 담은 휴먼 다큐 인기…생동감·영상미 ‘볼거리 한아름’ 방연주 수습기자l승인2011.02.15 1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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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간 불이 켜진 횡단보도 위 40대 남자가 서 있다. 야광복을 입은 그는 밤 11시가 되면 어김없이 지나는 자동차들 사이로 걸어간다. 제작진은 ‘왜’ 그가 날마다 그 곳에 서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서 ‘3일’간 ‘세 번의 만남’으로 그의 행동반경을 관찰해보기로 한다. 완성된 프로그램에서 스토리텔러는 자못 걱정되는 목소리로 시청자들을 향해 묻는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기에 위험천만한 횡단보도 위에 매일 서 있는 걸까요?”

대작 다큐멘터리들이 빠져나간 곳에 소소한 이야기가 자리를 메우고 있다. 일상을 깊게 들여다보는 휴먼 다큐멘터리는 제한된 ‘72시간과 공간’, 세 번의 ‘만남’, 사건과 상황의 ‘이면’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유지한다.

드라마의 힘이 연출이라면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힘은 인물이다. 소시민부터 연예인까지 다양하게 등장한다. 평범한 인물이라도 희로애락의 드라마가 녹아있다. 시청자들은 화면 속 인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교감한다. 강명석 미디어평론가는 “기존의 휴먼 다큐가 공익적 요소를 강조했다면 요즘은 리얼리티를 가미해 다른 사람의 일상과 생활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KBS2TV <다큐멘터리 3일> ⓒKBS
KBS<다큐멘터리 3일>(이하 <다큐 3일>)은 장수 프로그램이다. 2007년에 시작해 180여회가 넘었다. 지난 1월 첫 방송된 KBS<세 번의 만남>은 고감도와 특유의 따뜻한 색감을 지닌 DSLR 카메라로 촬영했다. 감각적인 영상은 젊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MBC<시츄에이션 휴먼다큐 그날>(이하 <그 날>)와 SBS<당신이 궁금한 이야기>는 특정 인물의 사연과 상황을 소개한다. 시의성 있는 사건을 다루되 시사 프로그램보다 저변에 깔린 문제를 무겁지 않게 드러낸다.

<다큐 3일>은 소시민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현장 중심 르포르타주로 출연자를 사전 섭외하지 않는다. 72시간 동안 제한된 공간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화면의 주인공이다. 따라서 총 5-6명의 VJ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촬영해 생동감을 이끌어낸다. 지난 30일 방영된 달동네 중계동 백사마을을 담은 ‘-18℃ 마음의 온도’편의 시청률이 교양 프로그램으로는 높은 11.7%(AGB닐슨)를 기록했다.

김영두PD는 “서울의 마지막 타임캡슐인 백사마을은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태도와 백안시한 미덕을 엿볼 수 있었기에 반응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초창기부터 일해 온 박지현VJ는 “혹한에 촬영하는 동안 골목 어귀마다 주민들이 스태프에게 차와 군고구마를 권해 매번 마다하기 어려웠다”며 훈훈한 촬영장 분위기를 전했다.

KBS <세 번의 만남>은 톡톡 튀는 감성을 자극한다. 인물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벗어나 낯선 인물을 ‘알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지난 22일에 방영된 ‘신데렐라, 넌 정말 행운아니?’편에서 제작진은 ‘슈퍼스타K 출신 장재인’이 아닌 ‘소탈한 싱어송라이터 재인’을 보여줬다. 이지희PD는 “제작진 입장이지만 시청자와 마찬가지로 취재원에게 궁금한 점이 많다”며 “일회성이지도, 반복적이지 않은 세 번의 만남은 시청자의 호기심을 풀어주면서 인물에 대한 친밀감을 높여준다”고 설명했다. 한 누리꾼(qhrdjrkwhr)은 “세월의 흔적으로 얼룩진 재인의 음악노트를 보며 그녀의 꿈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KBS2TV <세 번의 만남> MBC <시츄에이션 휴먼다큐 그 날>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의 방송분 ⓒKBS,MBC,SBS
MBC <그 날>은 특정한 사건과 상황의 놓치기 쉬운 이면을 포착한다. 한류 재열풍 속의 일본인 여성팬 실종 사건을, 수능시험을 앞둔 시점 섬마을의 수험생 모습을, 베트남 여성의 ‘보통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허태정PD는 “한 개인을 둘러싼 시츄에이션에 주목했다”며 “인물을 둘러싼 관계를 통해 역동성 있는 상황을 담아내고, 새로운 관점으로 일상의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는 ‘스토리(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12월 방영된 ‘맥도널드 할머니’편은 ‘왜’ 할머니는 새벽마다 맥도널드에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한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최삼호PD는 “늘 인터넷을 모니터하면서 시의성 있는 아이템을 선정하고, 육하원칙 중 한 요소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간다”면서 “시청자와 함께 호흡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넘어 스토리텔러가 직접 화면에 출연한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러 허수경씨는 “내레이터는 화면을 객관적으로 전달하지만, 스토리텔러는 이야기에 감정이입해 설명하고 주도적으로 화면을 이끌어간다”면서 “내레이션보단 스토리텔링이 감정소모가 커서 마치고 나면 허기질 정도다”라고 덧붙였다.

소형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제작진과 카메라 앞에 선 인물과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제작진은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어색한 첫 인사를 건네고 소시민의 하루를 따라다닌다. 화려함을 뒤로한 생활인 뮤지션을 마주하고, 무심코 지나친 누군가의 ‘그 날’을 되새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소소한 일상 구석구석을 파내고 소형 카메라로 스토리를 캐낸다. 경이로운 자연에 감탄할 만큼 일상에도 늘 특별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다.


방연주 수습기자  nalav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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