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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두 여배우의 수상소감이 화제가 됐다. 열악한 드라마 제작 환경의 개선을 촉구하고, 시청률만을 잣대 삼아 작품을 평가하지 말아달라는 이들의 호소는 해를 넘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드라마 제작발표회나 기자간담회에서 배우들은 하나 같이 ‘수면 부족’을 호소한다. 드라마를 촬영하는 몇 개월 동안 숙면 한번 취하지 못하는 것은 제작진도 마찬가지다. 무리한 일정 탓에 배우나 스태프가 병원에 실려 가는 일도 부지기수다. 거의 ‘생방송’으로 찍어대다 보니 주연 배우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결방을 피하기 어렵다. 드라마를 만드는 이들 스스로 “바보 같다”거나 “반인권적”이라고 하는 드라마 제작 현장의 실태다.

70~80분짜리 드라마를 주 2회 방송해야 하는 현실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개선 요구는 늘 있었지만, 실효성을 거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런 배경에서 지난 2008년 지상파 3사 드라마 PD들이 참여하는 한국TV드라마PD협회(회장 이은규)가 출범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사정도 크게 나아진 것은 없다. 그래서 이들이 다시 모였다. 드라마PD협회는 지난 15일 방송 3사 간사 모임을 갖고 드라마 편성 시간 준수, 단막극 편성, 물의를 빚은 연기자와 제작사에 대한 대책 마련 등을 결의했다. 이 논의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는 무엇일까.

▲ 지난 21일 종영한 SBS 월화 드라마 '아테나'. 촬영 도중 정우성이 부상을 당해 드라마가 결방된 일이 있었다. ⓒSBS
❶ 드라마 ‘72분 방송’ 준수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 2009년 협의를 갖고 회당 80분까지 늘어난 주중 드라마 방송 시간을 72분으로 줄이는데 합의했다. 방송사간 과도한 경쟁을 지양하고 제작비와 제작 여건을 개선하자는 취지였다. 또한 미니시리즈 방송 시작 시간도 오후 10시로 맞추기로 했다.

이 같은 방송사간 자율 합의는 1~2년간 잘 지켜져 왔으나, 최근 들어 위반 사례가 나오기 시작했다. KBS 드라마국 이강현 EP는 “최근 72분을 초과하는 사례가 몇 건 발생하면서 상대사에서 룰을 깨는데 우리만 손해 보는 게 아니냐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72분은 드라마 PD가 신경 쓰고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마지노선이다. 경각심을 갖고 72분 편성 시간 룰을 지켜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 72분도 지나치게 길다는 지적이 많다. 방송 시간이 길수록 제작비 상승은 물론, 제작 환경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또한 해외 드라마의 경우 주로 40~50분짜리이기 때문에, 70분 드라마는 수출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광고=수익으로 연결되는 현 상황에서 72분이 국내 시장에서 수용 가능한 마지노선이라는 게 방송사 측의 설명이다. SBS 김영섭 CP는 “드라마를 72분 방송해야 광고를 8분 팔 수 있다”며 “방송사 경영 쪽의 입장도 반영하고, 드라마 PD와 연기자, 제작 스태프의 환경도 감안해서 72분을 마지노선으로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❷ 단막극을 지켜내자

지난 2007년 MBC가 〈베스트극장〉을 폐지하고, 이듬해 KBS가 〈드라마시티〉를 폐지하면서 2년 여 동안 단막극의 명맥이 끊겼다. 이후 지난해 5월 KBS가 〈드라마 스페셜〉이란 이름으로 6개월간 단막극을 방영하고 연작 시리즈까지 방송했지만, MBC와 SBS에서 단막극이 부활할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MBC가 지난해 9~10월 〈일요 드라마극장〉을 편성, 5편의 단막극을 방송한 게 전부다.

여전히 단막극 부활에 대한 요구가 높은 가운데, 드라마PD협회는 방송 3사 PD들이 단막극 편성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의했다.

KBS는 올해 〈드라마 스페셜〉 ‘시즌2’를 방송할 예정이다. MBC와 SBS 드라마 PD들은 고정 편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막극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영섭 CP는 “회사와 최근 협약에서 신진 연출이나 작가, 연기자 수급을 위해 단막극의 고정 편성은 아니더라도 기회는 만들기로 했다”고 전했다.

▲ KBS '드라마스페셜' 연작시리즈 '락락락' ⓒKBS
낮은 제작비에 허덕이던 단막극의 숨통도 조금씩 트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올해 단막극 제작에 10억원을 지원할 예정이며,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도 20억원 제작 지원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3일에는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한국 드라마 발전을 위한 단막극 활성화 방안’을 토론하는 세미나가 개최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전파진흥원은 이날 세미나에서 논의된 결과를 바탕으로 문화부 및 콘텐츠진흥원과 공동으로 단막극 정규편성과 제작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과 예산 지원을 공동 추진할 방침이다.

❸ 부당한 대우는 안 된다

올해 초 KBS 1TV 대하사극 〈근초고왕〉에 출연 중인 감우성이 스태프를 향해 폭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감우성은 앞서 지난해 9월에도 조연출과 몸싸움 논란을 빚은 바 있어 드라마국 평PD들이 감우성의 사과와 하차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2007년에도 유동근이 부인인 전인화가 출연 중인 SBS 드라마 〈왕과 나〉 녹화 현장에서 책임PD와 조연출을 폭행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유동근의 공개 사과로 사건은 일단락 됐지만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PD들의 문제의식은 크다. 일부 스타급 연기자들의 안하무인이나 현장에서 PD들에 대해 부당한 대우가 이뤄지는데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드라마PD협회는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 연기자·제작사·작가 등에 대해 실질적인 제재 방안을 강구하기로 결의했다. 이은규 드라마PD협회장은 “개별 사안에 대해 누가 가해자고, 책임이 있는지를 따지기는 어렵겠지만, 어찌 됐든 제작현장이 어려움에 처한 것은 사실”이라며 “실효성 있는 제재 수단을 강구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설명했다.

이강현 EP는 “연기자들이 제작 현장에서 지나치게 연출권을 침해하거나 제작 질서를 흐리는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물의를 빚은 연기자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현상을 파악하자는 차원”이라며 “구체적으로 대책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최근 사례가 빈발하는 것에 대해 PD들끼리 실효성 있는 대처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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