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들은 대개 연출을 하면서 때론 직접 촬영하는 카메라맨의 역할도 한다. 촬영을 마치면 한 땀 한 땀 커팅하는 편집자가 되는데 재주 있는 사람들은 NLE(Non-linear editing system:비선형 편집) 종합편집까지도 척척해낸다. 기획에서부터 전체 제작과정의 표준제작비를 짜는 프로듀서의 역할도 PD의 몫이다. 또한 일선 PD들에게 ‘협찬’을 끌어 오고 제작 지원을 받아내는 ‘마케터’(marketer)의 일까지도 주문한다. 가히 ‘박지성’과도 같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대한민국 PD들이다.

최근 내가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동료 PD가 있다. 둘 다 연출 PD들이면서 제작 협찬을 유치해본 적이 있는 마케터들이다. 말 그대로 PD들이 하는 일은 다 해본 PD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3~4년 전부터 전통적인 PD론을 깨고 자기만의 ‘일’에 도전하고 있다.

‘K’는 PD가 되기 전 해외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공부한 유학파다. K는 인적 네트워크와 유창한 외국어를 무기로 대한민국의 누구도 실제 경험해보지 못한 유럽 다큐멘터리 시장에 뛰어들었다. 몇 년 후, 한국의 유능한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감독들의 작품들은 K의 손을 거쳐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두각을 보이며 수상하는 쾌거를 거둔다. 최근 다큐멘터리 시장 전반에 불고 있는 ‘국제 공동제작’의 붐도 K의 도전과 경험이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K는 ‘PD’라는 직함을 버리고 ‘국제 공동제작 다큐멘터리 전문 프로듀서’라는 보다 확실한 신분으로 활약하고 있다.

‘L’은 최근 제작PD 생활을 접고 카이스트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가 공부하는, 듣기에도 생소한 ‘미디어 매니저(Media Manager)’는 투자자와 제작자, 배급사를 연계하고 조율하는 전문직이다. 방송 시장의 분업화가 잘돼 있는 해외에서는 전문 미디어 매니저들이 기획과 제작 전반에서 프로젝트를 이끄는 핵심 역할을 한다. 카이스트는 매년 ‘L’과 같은 미디어 매니저들을 배출해낸다. ‘L’이 공부를 마칠 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미디어 매니저’라는 직업이 낯설지 않게 될 수도 있다. ‘K’와 ‘L’, 이 두 PD들의 도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이 잘하는 전문적인 분야를 개척해 역량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문화된 역량’은 방송 제작 시스템 전반에 ‘활력’과 ‘창작력’을 불어 넣게 될 것이다.

우리 방송 콘텐츠가 해외 우수 콘텐츠와 알몸으로 경쟁하고 있다. 방송 최일선에 있는 PD들도 발전적인 진화가 필요하다. 편집이 탁월한 PD에게 촬영이 좋지 않다고 훈육하는 도제 시스템, 기획과 마케팅이 뛰어나 새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PD에게 ‘네 나이 때는 연출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는 오늘의 현실과 맞지 않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연출자’와 ‘제작자’가 구분되고, 방송기획 전문 ‘마케터’, 창의적인 ‘편집자’ 등으로 PD라는 직종이 세분화, 전문화 되어갈 때 대한민국 방송 콘텐츠는 보다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결국 기존의 PD라는 직업은 사라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PD들이 프로듀서(Producer), 디렉터(Director), 에디터(Editor), 미디어 매니저(Media manager) 등으로 불리고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협력하여 제작하는 방송, 창의적인 열정이 끓어오르는 신개념 ‘PD’들을 많이 보게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