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이 없으니 막장드라마가 판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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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관계자, 정책 당국 “단막극 꾸준한 지원 필요” 한 목소리

“지난 아시안 컵 대회에서 맹활약한 구자철이나 손흥민 같은 선수들은 축구협회의 유소년 프로젝트에 따라 남미 등에 유학을 다녀온 신예들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수출 품목 중 하나인 한류의 주역인 드라마와 관련해서도 공영방송 KBS와 MBC 등이 단막극에 대한 투자를 통해 차세대 주자를 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강현 KBS 드라마국 EP

“드라마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한류 드라마를 만든 연출자, 작가, 연기자들 대부분이 단막극을 거쳤다. 그런데 단막극이 없는 상황에서 향후 5년, 10년 뒤에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겠나. 만일 드라마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새끼 거위를 보호해야 한다.” -최원석 MBC 드라마국 PD

TV 드라마 생태계에서 단막극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시장 논리, 자본 논리 앞에 단막극은 늘 ‘미운 오리’ 취급을 받았다. 2007년 MBC가 경제 논리를 앞세워 〈베스트극장〉을 폐지하고 이어 2008년 KBS 〈드라마시티〉마저 폐지되면서, 지상파 방송사에서 단막극은 멸종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연속극이 범람하고, 막장 드라마가 창궐했다. 단막극은 명절 특집극으로 가뭄에 콩 나듯 선보이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중 지난해 KBS가 〈드라마 스페셜〉을 신설하면서 단막극 부활의 불씨를 지폈다. KBS는 〈드라마 스페셜〉을 통해 24편의 단막극을 방송하고, 이후 연작 시리즈까지 방영하며 새로운 실험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고정 편성이 아니고, 여전히 MBC와 SBS에선 단막극의 정규 편성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는데 대한 아쉬움이 크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단막극이 지속적으로 방영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23일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한국 드라마 발전을 위한 단막극 활성화 방안’에 관한 토론회에서도 참석자들은 단막극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PD, 작가, 연기자, 제작사 대표 등 드라마 관계자들은 단막극 편성을 더 이상 방송사의 자율 의지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단막극의 실종으로 쪽대본·막장드라마 성행”

이날 발제를 맡은 오명환 송담대 교수(방송영상학부)는 “단막극에 대한 진흥기관의 지원정책과 방송사의 편성정책 두 바퀴가 하나의 축으로 서로 맞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방송사의 의지와 철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 ‘한국 드라마 발전을 위한 단막극 활성화 방안’에 관한 토론회가 한국PD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 콘텐츠진흥원과 전파진흥원 후원으로 지난 23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3층 회의장에서 열렸다. ⓒPD저널 방연주

오 교수는 우리 드라마의 ‘연속극 만능주의’가 제작환경의 질서를 교란하고 왜곡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일극 40분, 주간극 80분’ 체제의 연속극 편중 현상이 드라마 공급원의 다원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주간 연속극 한 회당 7분씩만 할애하면 단막극이 한 편 생기고, KBS 대하사극을 주 1회로만 줄여도 1년에 단막극 50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막극이 사라진 2008년 3월 이후 막장 드라마가 가장 성행했다”며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꼬집었다.

드라마 〈은실이〉 등을 집필한 이금림 한국방송작가협회 부이사장도 “요즘 ‘막장 드라마’ 논란이 많은데, 공교롭게도 단막극을 안 쓰고 데뷔한 작가들이 그렇게 되는 것 같다”며 “단막극은 드라마의 생태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묘판이다. 여기서 시작해 씨앗이 발아되어 나무로 성장해야만 미니시리즈도 쓸 수 있고, 연속극이나 제대로 된 일일극도 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지적했다.

KBS ‘드라마 스페셜’ 단막극 희망의 불씨

문제는 방송사의 의지다. 방송사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막극 편성에 난색을 표한다. 이에 대해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자기 합리화이자 논리의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투입되고 톱스타가 출연하는 블록버스터도 적자를 보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천문학적 제작비가 들어가는 드라마는 계속 만들면서 단막극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제작하지 않는 것은 시청자의 요구를 무시하는 방송사의 일방적 횡포”라고 비판했다.

다행히도 KBS가 지난해 〈드라마 스페셜〉을 신설하며 단막극 부활에 청신호가 켜졌다. 지난해 24편의 단막극을 방송한 KBS는 오는 4월 말까지 연작 시리즈를 방송한 뒤 6월 중 〈드라마 스페셜〉 ‘시즌2’를 편성할 방침이다.

KBS 드라마국의 이강현 EP는 “〈드라마 스페셜〉의 성과는 대외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2편의 작품이 한국PD연합회가 시상하는 ‘이달의 PD상’을 2개월 연속 수상했고, 좋은 작가와 연출자, 스타 연기자와 신인 배우들이 미니시리즈 제작에 투입되는 등 구체적 성과를 보여줬다고 자부한다”며 “‘시즌2’를 통해 업그레이드 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문화부, 단막극 지원…“환영하지만 아쉬워”

방송통신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도 단막극 제작 지원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방통위는 올해 단막극 제작에 2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며, 문화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도 1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상태다.

하지만 지원체계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됐다. 최원석 MBC 드라마국 PD는 “방통위와 문화부의 지원은 반갑기는 하지만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며 “실질적인 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PD는 편당 1억원 안팎으로 책정된 제작비가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며 “대본 심사 시 탄력적으로 제작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막극의 경우 광고 판매나 협찬 유치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공익적 목적의 단막극 정규 편성을 유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타이틀 스폰서’를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편성상의 문제도 주장도 제기됐다. 단막극은 실제 편성이 된다고 해도 프라임타임이 아닌 심야시간이나 주변 시간대로 밀려나기 일쑤다. 광고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 PD는 그 대안으로 편성상의 규제 완화를 제안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드라마는 오락으로 분류된다. 현행 방송법의 방송평가 기준에 따르면 프라임타임의 오락 편성 비율은 이미 초과 상태다. 따라서 단막극의 공익적 목적을 인정, 오락에서 예외로 분류해 준다면 단막극의 주 시청 시간대 정규 편성이 좀 더 용이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연기자 대표로 참석한 이효정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장은 편성의 틀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그는 “단막극을 편성했는데 상대사에서 킬러 콘텐츠를 붙이면 소용이 없다”며 “‘주 1회 50분 이내’로 드라마 편성 틀이 바뀌어 준다면 모두가 살 수 있겠지만, 당장 어렵다면 방송 3사가 적어도 단막극에 있어서만큼은 대타협을 봐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단막극 편성 위한 ‘그린 존’ 설치”

구체적인 편성정책에 대한 제안도 나왔다. 오명환 교수는 발제를 통해 “건강한 드라마 생태계 유지를 위해 주 1회 이상 단막극을 편성해야 한다”면서 “순수 단막극을 위한 ‘그린 존’(Green Zone)과 주간 단막극을 위한 ‘블루 존’(Blue Zone) 설치”를 제안했다. 그는 “‘그린 존’은 시청률과 제작비 회수율 부담에서 자유롭도록 하고, ‘블루 존’에선 새로운 실험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막극제작사 ‘브로드스톰’의 이교욱 대표는 ‘통 큰 단막극’을 제안했다. 그는 “(방송사별로) 분산해서 지원하기 보다는 특정 채널에 ‘단막극 존’을 만드는 것이 지원 자금을 보다 효율적으로 쓰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윤정주 소장은 “단막극의 수익 구조를 다각화 해 적극적으로 수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방통위와 문화부는 제작비 지원뿐 아니라 수출도 적극 지원해서 단막극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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