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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광팬을 자처하는 TV프로그램은 오직 애니메이션 〈심슨가족〉뿐이다. 데굴데굴 구르고 통쾌해 하고 코끝 찡하게 감동하고… 장르는 다르지만 저런 느낌의 프로그램을 언젠가 할 수 있다면! 대작 다큐를 하고 싶지도 상을 받고 싶지도 않지만 〈심슨가족〉의 발끝만큼은 PD 인생을 걸고 한번 따라가 보고 싶다.

〈심슨가족〉의 빛나는 에피소드들 중, 요즘 유독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다. 매번 등장하는 ‘이치 앤 스크래치 쇼’라는 TV속 TV만화가 있는데, 〈톰과 제리〉처럼 고양이와 쥐가 등장하는 만화로 매번 쥐가 고양이를 잔인하게 괴롭힌다. 이 인기 프로의 시청률이 언젠가부터 하락세를 보이면서 에피소드는 시작된다.
방송사에서는 긴급회의를 열고 시청률 견인 방안을 강구한다. ―미리 말하지만 이 에피소드는 모든 창작자들이 관리자에게 보내는 신랄한 메시지다― 시청률이 하락세니 PD들은 할 말이 없고, 대신 중역들은 모두 한마디씩 보탠다.

“세상의 만화는 두 가지로 나뉘지. 개가 나오는 만화와 안 나오는 만화!” 그럴싸하다. “차도남 같은 캐릭터면 좋겠네요. 쿨하게 힙합 어때요?” “스케이트보드도 타면 좋겠군”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쥐와 고양이의 대결이었던 만화에 일사천리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철지난 힙합 차림에 랩을 우물거리는 개 캐릭터가 구원투수로 투입된다. 바로 이 캐릭터의 목소리 더빙을 우연히 주인공 호머 심슨이 맡게 되는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한일전 축구 보듯 첫 방송을 지켜본다. 방송이 끝나고 어땠어? 라는 질문에 ‘음… 난 잘 모르겠어’ 라는, 모든 PD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이고는 하나둘 자리를 뜬다. 〈심슨가족〉의 작가진이 방송사 간부들에게 전하는 뼈있는 농담이자 그 자체로 훌륭한 스토리가 된 에피소드였다.

말 한마디로 비효율을 효율로 바꾸시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는 것은 모든 CEO들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CEO의 꿈’ 이다. 문제는 이런 철학이 방송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존경받는 방송인은 훌륭한 창작자였는데, 이제 그 자리를 즉흥적으로 말을 보태는 사람들이나 수치를 들이대며 ‘갈구는’데 능한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다. 제작비/광고수익 비율로 모든 프로그램을 똑같이 재단할 수 있을까? 아예 모든 PD를 다 자르고 모든 방송을 사서 틀면 수익률이 확 늘지 않을까? (이것은 내 아이디어고 실행되면 마지막 인센티브를 타먹겠다) 방송 날짜는 이틀인데 외주 팀을 셋 운용하며 매주 시청률을 기준으로 퇴출제를 시행하는 건 괜찮은 걸까? 일하는 사람보다 관리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이 묻혀버리는 걸까?

창작자보다 관리자가 많아진다.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는 입을 닫기로 하자. 누굴 관리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의 성향이란 너무 빤하다. 다만 지상파 방송사는 이제 관리하는 사람에게만 괜찮은 직장이 되어간다. 자기 자신만 빼고 다른 모두를 관리의 대상으로 하는 자만이 눈빛을 반짝이며 승승장구한다. 장사 좀 되겠다 싶으면 아예 이름만 다르게 몇 개 프로그램을 같은 아이템으로 채운다. 값싸고 고만고만한 프로그램을 주문 제작해 시간대를 채워도 관리자는 칭찬받는다. 언제부턴가 M사의 프로그램에서 동시대의 감성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매번 ‘이런 건 된다’는 경험에 의지해나가는 느낌이다. Who Cares? 모두가 각자의 생존만이 목표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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