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이야기로 풀어가는 자연다큐 하고 싶다”
상태바
“술술 이야기로 풀어가는 자연다큐 하고 싶다”
[인터뷰]‘호랑이 수난사’로 2관왕 거머쥔 박환성 독립PD
  • 방연주 수습기자
  • 승인 2011.03.07 11: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텔레비전 채널이 바쁘게 돌아가다 자연 다큐멘터리 채널에서 멈춘다. 호텔 객실에 머물던 직장인 박환성씨가 자연다큐PD(블루라이노 픽처스)로 길을 튼 순간이다. 학부 졸업 후 3년간 직장 생활은 ‘욱’사표를 여러 번 던질 만큼 영 맞질 않았다. 해외출장이 잦았던 그는 작은 호텔방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여기저기로 채널을 돌리다 눈에 들어온 게 자연다큐멘터리 <내셔널 지오그래픽>이었어요. 그 순간 문득(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먹고 살만하니까 저런 다큐를 제작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던데요”  

▲ 박환성 독립PD(블루라이노 픽처스) ⓒ블루라이노 픽처스

박PD는 다시 ‘욱’사표를 던지고, 한국을 떠났다. 카메라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미국에서 촬영 및 편집 기술을 바닥부터 배웠다. 두 번째 전환점은 학교 공고게시판에 붙은 ‘와이오밍 잭슨홀 자연다큐 페스티벌’ 자원활동가 모집공고다.  미국의  ‘와이오밍 잭슨홀 자연다큐 페스티벌’ 은 영국의 ‘와일드 스크린 페스티벌’과 자연 다큐멘터리의 양대 산맥 페스티벌로 매년 번갈아 열린다.

그는 그곳에서 자원 활동을 하면서 “대형으로 제작하는 영화 시스템보다 소규모 스태프로 제작하는 자연 다큐가 자신과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박PD는 타이트한 조직 대신 자유로움을, 대규모 영화판 대신 소규모 다큐멘터리 현장을 택했다.

▲ 박환성 독립PD

박PD의 다큐멘터리 속 주인공은 솔개, 호랑이, 구렁이, 살모사 등 야생 동물이다. 그의 작품은 익숙하지만 계몽적이지 않다. 박PD는 “등장인물이 야생동물일 뿐 결국 동물의 삶을 빌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제작 시 가장 고려하는 요소는 생물학적 지식 전달보다 사실을 왜곡 없이 조합해 치밀한 이야기로 구성한다”고 말했다. 한 번도 다루지 않은 획기적인 소재를 찾기보다 기존의 소재를 새로운 시각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면 시청자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한국PD대상 작품상과 한국독립PD상 최우수상을 거머쥔 EBS <다큐 프라임-‘호랑이 수난사’>도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 것과 다름없다.

“‘호랑이’가 참신한 소재는 아니죠. ‘호랑이’를 디스커버리 채널에선 과학적 접근으로, EBS 다큐멘터리에서 ‘시베리아 호랑이’라는 생물학적 종(種)으로 풀어낸 적이 있죠. 저는 ‘호랑이’가 ‘맹수’라는 상징성으로 사람들의 폭발적 관심을 받으면서도 수난을 겪고 있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은 맹수성이 강할수록 더욱 집착한다. <호랑이 수난사>는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호랑이의 관광 상품화, 밀수와 학대 현장을 보여준다. 박PD는 “작품 내에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는 건 과하다 싶었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면서 공감을 이끌어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서 야생 호랑이를 관광하려던 사람들 중 한 두 명이라도 덜 간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 다큐멘터리는 생생함을 전달하지만 그만큼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아무리 사전 작업을 많이 해도 예외적인 변수가 늘 발생해서다.

“<호랑이 수난사>는 약 6∼7개월 촬영기간 동안 짝짓기는 운 좋게 3∼4일 만에 찍었지만 사냥 장면은 무더운 날씨때문에 촬영 장비가 제때 작동하지 않아 스틸 사진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죠”

이처럼 자연 다큐멘터리는 확률 싸움이다. 보통 1년에 한 편 정도면 높은 완성도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을 테지만, 소규모 독립제작사가 유지되기 위해선 3∼4편을 제작해야 한다. 짧은 기간에 여러 작품을 만들어야 하다 보니 운에 기대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늘 작품을 끝낼 때면 좀 더 많은 시간과 인력, 더 나은 장비가 있었다면 좋은 그림이 나왔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죠”

▲ EBS <다큐프라임-'호랑이 수난사'>를 촬영하는 박환성PD ⓒ블루라이노 픽처스

독립제작 현실의 이면을 보여준다. 박PD는 “방송사는 독립제작사에 낮은 제작비를 요구하고, 독립제작사는 방송과 저작권을 모두 쥐고 있는 방송사에 종속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독립PD들은 권익 찾기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장기적으로 방송과 제작이 분리돼야 새로운 인력이 유입되리라 봅니다. 방송사와 독립제작사의 갑을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립제작사와 수많은 프리랜서PD들 간의 갑을관계에서도 부당한 사례들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기에 이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죠”

그는 독립PD상 시상식에서 조연출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며 “조연출 후배가 많아야 좋은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올해 박PD는 야생동물과 사람 간 이야기를 버무린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예정이다. 인도 순다르발 지역의 식인 호랑이의 위협에도 꿀을 따려고  목숨을 거는 지역민 ‘허니 헌터(Honey hunter)’와 소 대신 말로 농사 짓는 중국의 소수민족 묘족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번엔 현장을 누비는 박PD와 함께 든든한 조연출 후배가  어깨 너머로 촬영 기술을 배우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