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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MBC <PD수첩> 제작진에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 사건을 취재할 예정이었지만 시사교양국장이 취재 중단을 지시하고 나선 것이다. 결국 어젯밤 <PD수첩>은 일부 다른 아이템으로 긴급 대체된 채 방송됐다. 이와 관련 시사교양국 평PD들은 내일과 모레, 이틀 동안 연가 투쟁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당초 국장을 비롯한 시사교양국 간부들은 취재 중단을 지시한 이유에 대해 ‘일과성 해프닝’, ‘종교와 관련돼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반발이 커지자 “해당 아이템을 다루면 MB 깎아내리기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공영방송사 간부가 아이템을 선정할 때 대통령 편에 서서 정치적 유불리 여부를 판단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요, 언론인으로서 스스로 금도를 벗어난 행위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특정 종교 행사에 참석해 무릎을 꿇고 기도한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굳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명시한 헌법 제20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소망교회 장로 출신 인사가 대통령이 된 후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회적, 종교적 분쟁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이 같은 사태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다. 김재철 MBC 사장이 많은 구성원들이 반대하는 인물을 국장에 앉힌 것이나 시사교양국을 제작본부에서 떼어 내 편성제작본부로 이관할 때부터 경영진이 곧 <PD수첩>을 손볼 것으로 판단했고, 불행히도 그것은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시사교양국 간부들은 최승호 PD 등 <PD수첩> 주요 제작진에 대해 일방적인 인사발령을 내면서 “<PD수첩>의 과도한 정치색을 탈색할 필요가 있다”는 등의 억지 주장을 편 바도 있다.

앞으로 청와대와 방송통신위원회, 그리고 방송문화진흥회와 MBC 경영진은 MBC 시사 프로그램에 대한 옥죄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미 <W>와 <후플러스>가 폐지됐고, <PD수첩>은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란 지위를 빼앗길 운명에 처해있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과 같은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 역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정권에 밉보인 MBC의 PD 프로그램들은 하나 둘씩 태풍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란 분석이다. 현재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불과 1~2년 전 KBS에서 일어났던 것과 너무도 비슷하다. KBS 역시 현 정권 등장 이후 시사 프로그램의 폐지, 기자와 PD의 직군 통합, 아이템 불방, PD 징계 등을 겪은 바 있다.
지금은 ‘PD저널리즘’의 위기다. MBC가 KBS의 전철을 밟게 될 지 속단할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PD저널리즘을 살리는 1차적 책임은 누구도 아닌 바로 PD들의 몫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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