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KBS 광복절 특별기획 3부작 발굴다큐멘터리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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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제작기 KBS 광복절 특별기획 3부작 발굴다큐멘터리 <독립전쟁>
‘독립전쟁’은 피로 물들인 ‘정신의 승리’였다
  • 승인 2001.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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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왜 독립전쟁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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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요즘 무슨 프로 해?” pd가 직업인 사람들이 인사처럼 듣는 말이다. 최근 “<독립전쟁>하고 있다”고 대답하니까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 한다. “미국 갔다 왔겠네. 미국프로 아냐?” “독립전쟁? 독립전쟁이라고?” 그리곤 다시 묻는다. “우리한테도 독립전쟁이 있었냐”고.
|contsmark3|많은 사람들에게 독립운동은 그저 안중근, 윤봉길 의사가 저격하고, 도시락 폭탄 던지고, 또는 3.1운동 때 평화롭게 태극기 흔든 정도로만 기억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독립운동의 방법에는 글로써, 또는 외교로써 하는 방법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총칼을 들고 목숨걸고 싸우는 것은 가장 격렬하면서도 직접적인 방식이다. 그것은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다.
|contsmark4|그 동안 독립운동을 다룬 프로그램은 많았다. 그러나 대부분이 외교사에 치중했거나 임시정부 관련이거나 또는 김구, 안중근 등 몇몇 개인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기존의 프로그램과는 다른 관점에서 무장항일투쟁의 역사를 총정리해 보고자 했다.
|contsmark5|그래서 ‘독립전쟁’이었다. 그렇다고 그 말을 일부러 만든 건 아니다. 의병장 출신이던 안중근도 거사 후 체포되었을 때 ‘한국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적을 처단한 것이므로 포로로써 예우하라’고 주장한다.
|contsmark6|분명히 국제법상의 국가간의 전쟁이었다는 것을 의식하고 한 언행이었다. 1911년 일본은 한반도 국내외의 반일활동을 기술하면서 독립전쟁이라는 개념을 명시적으로 표현한다. 봉오동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독립군들은 사방에 격문을 붙였다. ‘이것이 독립전쟁의 제1회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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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8|기획이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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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0|이 프로그램은 장기간 기획된 것이다. 이미 작년부터 허진 차장이 준비를 하고 구성안이 수차례 수정되면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올 5월 중국 촬영을 앞둔 시점에 갑자기 동경특파원으로 발령이 나면서 뒤늦게 박석규 pd와 내게 구성안과 책 몇 권이 넘겨진 것이다.
|contsmark11|구성안은 큰틀을 바꾸지 않되 세부적인 사항은 수정을 많이 했다. 좀더 전쟁에 충실하기로.
|contsmark12|그래서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3.1운동이나 임시정부의 행적, 외교사는 자칫 프로그램의 특색을 반감시킬수 있어 다 빼기로 했다. 무기체계와 군사력 비교 등 좀 더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사실들을 다루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암만 시간이 없어도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을 꼭 취재하기로 했다.
|contsmark13|제작의 관점은 무장항일투쟁으로 하되, 이념을 넘어 민족역량의 총집결과 좌우대통합 노력에 주목하며, 주어진 해방이 아니라 피로써 얻고자 했던 준비된 해방이었다는 점을 키워드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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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5|무엇을 발굴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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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7|일본외무성외교사료관이나 러시아 극동문서보관소는 그동안 수많은 국내 학자들과 취재진이 찾았던 만큼 접근이 비교적 쉬운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숨겨진 보물들은 많았다. 수십만 건의 자료들 중에서 일본군 내부의 훈령과 보고전문, 작전과 배치실태 등은 국내 취재진이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한 것들이었다.
|contsmark18|다년간의 <일요스페셜> 제작경험이 있는 노련한 박석규 선배가 치밀하게 밑바닥부터 훑기 시작했다. 방대한 양의 책을 섭렵하고, 조선군 전공자인 닛교대 서민교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며, 여러 명의 일본 코디에게 사전조사를 시켜 외무성경찰사와 간도출병사 등을 샅샅이 뒤진 것이다.
|contsmark19|그리고 접근이 비교적 용이하지 않은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와 학습원대학의 섭외는 왕현철, 허진 두 동경 특파원에게 부탁을 하였다.
|contsmark20|방위연구소에는 그 당시 육군성의 기밀문서들을 따로 분류하여 모아놓은 밀대일기가 있었으며, 학습원대학에는 그 존재만이 알려졌던 총독부 관리들의 식민지통치에 관한 육성증언이 있었다.
|contsmark21|취재는 단 2박3일.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며 숨가쁘게 취재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contsmark22|일본군의 기밀문서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고 또 그들의 첩보문에서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독립군과 독립전쟁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contsmark23|러시아에서는 초기의병들의 활동상이 낱낱이 기록으로 남아 있었는데, 국경수비대가 러시아 총독에게 보낸 보고서로 제3국의 기록이어서 신빙성이 높았다.
|contsmark24|제2부에서는 현장위주의 발굴이 많았다. 해란강 대학살과 만인갱 등 잔혹한 일본의 만행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 복화희망소학교에서 제2의 교가로 불려지는 항일명장 양세봉 노래, 동명현성 전투가 이청천부대와 김일성 부대의 연합작전이었다는 것, 처음으로 찾은 쌍성의 격전지 등등. 그리고 아마도 이 프로그램이 발굴한 특종은 뭐니뭐니해도 제3부에 나오는 냅코 프로젝트의 전모를 공개한 것일 것이다.
|contsmark25|극비리에 미국 본토에서 추진됐던 한반도 탈환작전으로 다수의 한인들이 la 근교의 한 섬에서 잠수정까지 만들며 국내침투를 위해 특수훈련을 마치게 된다. 그 섬의 위치와 잠수정, 참가자 사진과 편지 등을 어렵게 수소문 끝에 만나게 된 재미사학자 안형주 씨의 도움으로 취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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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7|희망사항, 그리고 남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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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29|이제 이 방송이 끝나서 ‘독립전쟁’이란 말이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길 바란다. 또한 이 전쟁이 누란의 위기에 일본군 한 명을 죽이기 위해 100명 꼴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의병들의 고귀한 희생에서부터 긴 세월 피로써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그분들의 ‘정신의 승리’로 기억될 수 있으면 한다.
|contsmark30|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아직도 우리는 전쟁의 상대였던 일본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러시아 지역의 빨치산 활동과 미국에서의 독립운동이 방송쟁이로서 개척의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다른 명민한 pd의 몫일 것이다.
|contsmark31|권오대 kbs 기획제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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