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여자라 달라” … ‘뭐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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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PD 방담] 2011년, 그녀들이 사는 세상

 

▲  지난 9일 낮 여의도 모 식당에서 여성 PD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PD저널

여성 PD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여전히 조연출이거나 이제 막 조연출을 벗어난 그녀들. 3 ․ 8 세계 여성의 날을 ‘핑계’로 모인 자리는 내내 유쾌했다. 그녀들은 ‘여성PD’라는 공통분모에서 ‘공감’을 나누며 오랜만에 ‘편집’과 ‘아이템’을 잊고 수다에 매진했다. 주요 화제는 여성PD로 살아가며 겪었던 어려움, 남성PD와의 차이점, 여자 선배, 결혼, 육아, 남자선배의 외모 등이었다. 이날 방담은 지난 9일 낮 여의도의 모 식당에서 두 시간 넘게 진행됐다. 당시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존칭 대신 대화체로 재구성했다. (편집자 주)  

참석자
정지인 MBC PD. 2005년 12월 입사. ‘에덴의 동쪽’ ‘베스트극장’ ‘환상의 커플’ 등 조연출.
박유림 EBS PD. 2006년 1월 입사. ‘스페이스 공감’ 등을 거쳐 현재 ‘생방송 톡톡 보니하니’ 연출.
유정아 KBS PD. 2008년 1월 입사. ‘안전버라이어티 넘버원’ 등을 거쳐 현재 ‘해피선데이-1박 2일’ 조연출.
백시원 SBS PD. 2008년 10월 입사. ‘동물농장’, ‘SBS 스페셜’ 등을 거쳐 현재 ‘그것이 알고 싶다’ 조연출.

 #. 여성 PD

▲ 유정아 KBS 예능 PD. ⓒPD저널
유정아(이하 유) : KBS는 여성 PD들이 많아. 예능국 조연출은 여성이 절대적이지. ‘1박 2일’에선 나영석 PD 이하 조연출은 다 여성이야.

백시원(이하 백) : 우린 반대야. 교양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PD들이 대략 50명인데 입사했을 때, 여자 선배가딱 두 명밖에 없었어. 그나마 한 선배는 바로 위 기수였고, 또 다른 선배는 8년 정도 위였어.

정지인(이하 정) : 드라마국은 2009년 입사자 빼곤 나 이후로 매년 한 명씩 들어와. 우리 쪽은 계약직까지 합하면 4분의 1이 여성이야. 옛날보다 많아지긴 했어.

박유림(이하 박) : EBS는 유아·어린이 분야가 강해서 여성 선배들이 많아. 우리 때부터는 성비가 5대 5는 되는 것 같아.

#. 여자라서…

정 : 솔직히 안 힘들다고 얘기 못하겠어. 체력적으로 당연히 불리할 수밖에 없고. 촬영 현장에서 차량을 막거나, 선배들이 ‘뭐 가져오라’ 소리 지르는 건 일상다반사야. 산이나 바다 갔을 땐 제일 힘든 게 생리현상 해결하는 거야. ‘짝패’ 에 들어간 신입 여자 후배가 살짝 물어보더라고. 현장에서 어떻게 해결해야 되냐고. 해줄 말이 없어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했어. 어떤 선배는 우산과 월남치마로 해결했대.

박 : 인간이 어느 지점을 지나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부분이 있잖아. 딱히 남성 여성 구분보다는 누가 버틸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 같아.

정 : 면접 볼 때는 “무조건 튼튼해요”라고 말도 안 되는 뻥을 쳤는데 막상 들어왔더니 생각 이상의 것이 있더라고. 드라마에선 연출 데뷔한 여성PD가 두명 뿐이야. 그나마 이윤정 선배(MBC <커피프린스 1호점> 연출)가 좋은 성과 있어서 우리는 나름 수혜자인 셈이지.

유 : 예능국에선 남성PD도 힘 잘 안 써. 남자를 선호하거나 여자를 싫어하는 건 거의 없어. 편집을 아기자기하게 하는 면에서 여성 PD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어. ‘1박 2일’ 하면서 여성이니까 배려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아. 야외 취침 똑같이 하면서 동등하게 일해. 촬영 시작해선 끝날 때까지 거의 못 씻는다고 보면 돼. 그 상황에선 여성이라고 굳이 씼는 게 없어.

▲ 정지인 MBC 드라마 PD. ⓒPD저널
백 : 촬영 나가서 ENG를 들고 찍는데, 너무 팔이 아픈 거야. 남자들은 가볍게 들고 다니는데. 예전에 발가벗고 산에서 뛰는 사람을 막 달려가 찍은 적이 있어. 교양은 리얼한 상황을 카메라에 잡아야 하니까 뛰면서 ‘타이트’도 잡아야 하고 ‘풀 샷’도 잡아야 하거든. (그 경험 뒤로) 포기한 게 ‘남성 조연출처럼 술 먹고 담배 피면 안 되겠다’였어. 선배들은 웰빙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보약 먹고 운동 열심히 하는 게 생존 방법이야.

정 : 누가 싸우고 있을 때 가서 해결하는 건 여성 조연출이 확실히 유리하긴 해. 험악한 대치상황에서 내가 끼면 ‘깍두기’들이 몰려와도 섣불리 말 못하는 부분이 생겨. 커뮤니케이션 능력의 차이는 분명 있는 것 같아.

유 : 사실 남자는 여성이나 아이 출연자를 다룰 때 여성PD만큼 잘은 못해. 여성이기 때문에 잘 받아주는 측면이 있어. 그런데 ‘1박 2일’ 촬영가면 남성PD만 상대하겠다는 분들이 아주 간혹, 있어.

정 : “역시 넌 여자라서 달라” 이런 얘기 들으면 ‘뭐지, 이건?’ 하게 돼. 왜냐면 이건 내가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개인의 특성이거든.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나라는 개인이 말한 건데 이게 왜 여성 조연출이 말한 거라 생각하시지? “여성PD들은 원래…” 이런 얘기 들으면 답답해.

#. 여자 선배

유 : KBS 예능국은 여성 조연출이 많아서 멘토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 입사하며 의아했던 문화가 남성 같은 경우 들어오자마자 형이라고 부르라면서 “형, 형”하게 만들어. 그런데 여성들은 그런 기회가 없어서 약간 소외감 느꼈어. 지금은 여성 선배들한테 “언니, 언니” 불러. 중요한 회의할 때 정말 여성 선배들의 발언권이 세졌어. 이 안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 받거나 핍박 받는다거나 그런 느낌은 거의 없어.

백 : 나는 여성 선배들이 많이 없어선지 외롭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그동안 여성 선배를 많이 뽑기는 했는데 일이 힘들어서 그런지 아파서 많이 나갔어. 그래서 잘 안 뽑는 것 같아. 많이 나간 사례가 있으니까.

유 : 여성 선배들이 많으면 다른 부분이 있어. 작은 문화모임이 많아서 여성 선배들과 단순히 일적인 면을 떠나 헬스나 뷰티 등 취미생활도 공유할 수 있어.

백 : SBS는 거의 100% 남자들과 일하니까 묻어가는 것 같아. 술자리 같은 데에선 묘하게 다른 걸 느껴. 예를 들어 남자들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돌아가면서 말하는 거야. 여성들은 막 왔다 갔다 하는데. 그게 너무 익숙지 않은 거야. 남자 많은 학교 다녔는데도. 우린 아직 야한 얘기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도 있어.

박 : 이런 거 느낀 적 있어? 여성 선배들은 두루 잘 아는 반면에 남자들은 꽂히면 깊이 파들어 가는 것 같아. 똑같이 가정을 갖고 있어도 여성은 육아 책임지면 (취미를) 전문적으로 생각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남자는 해나가는 거지. 오디오나 음악, 공룡에 꽂히는 식으로. 남자 선배들 책상엔 되게 전문적인 서적이 꽂혀 있어. 여자 선배들은 다양하고 들어봄직한 책들이 많이 있고.

유 : 그들도 과거엔 꿈꾸는 소년들이었잖아. 커피나 술 한 잔 하다보면 어느 순간 전문적인 얘기를 시작하는데 듣다 보면 이건 일반인 수준이 아니야. 남자들은 확실히 자기만의 관심사가 있는 듯 해.

백 : 난 여자 선배가 많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할 말이 없어(웃음).

#. 남자 선배

▲ ▲ 한 자리에 모인 여성 PD들. 유정아(왼쪽 위), 박유림(오른쪽 위), 백시원(왼쪽 아래), 정지인(오른쪽 아래) PD. ⓒPD저널
박 : 남자 선배들 현빈처럼 잘 생겼으면(일동 웃음). 현빈이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정 : 내가 그 얘기했다가 “넌 송혜교가 아니잖아” 이 얘기 듣고 수긍했어(일동 웃음).

박 : 드라마 <온에어>가 방송될때 작가들이 다 거짓말한다고 했어. 박용하 같은 PD가 어딨냐며.

유 :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보면서 “현빈 같은 선배 있으면 정말 충성을 다 해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선배가 “난 송혜교 같은 조연출 있으면 일 안 시킬 거야”라고 하더라(일동 웃음).

정 : 그런데 그런 장면 있었잖아. 현빈이랑 송혜교가 버스에 나란히 앉아서, “선배 어깨 참 편하다” 이런 소리하는데, 왝 토하고….

유 : 내가 OJT 때 현빈 같은 선배를 만났으면 드라마국으로 갔을 텐데.

정 : 송혜교 항상 현장에서 되게 예쁘게 있잖아.

유 : 아니 어떻게 현장에 나가서 렉카차를 탔는데 단발머리가 그렇게 고울까. 렉카차 한번 타면 머리 산발인데. 환상이라고 생각하면 돼.

정 : 나는 정말 촬영 다닐 때 히말라야 가는 것처럼 입고 있는데.

박 : 시베리아 개장수처럼. 푸하하.

#. 결혼

백 : 걱정인 게 제작국 안에 유부녀 선배가 없어. EBS에서 오신 두 선배가 있긴한데 결혼하고 한참 있다 이직했어. 그러니까 이 안에서 성장하면서 살아남아 결혼하고 애 낳고 그런 선배가 아직 없는 거야. 다 나가다 보니까. 그래서 남아 있는 사람인 우리가 버텨서 뭔가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있어.

정 : 우리도 아직 없어. 과연 결혼하고 드라마 하는 게 어떤 느낌일까. 일부러 결혼 안 하겠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막상 조연출 하면서 힘드니까. 남성 선후배들도 결혼 생활이랑 이거 같이 하는 거 힘들어 하거든.

유 : 우리는 결혼해 아이 낳고 일하는 선배들 많이 있긴 해. 결혼 준비한다고 상사에게 말하면 편한 프로그램으로 넘겨 줘. 버라이어티 안 주고, 음악 프로그램이나 프로세스 간단한 거. 예능국에서의 배려가 좀 있어.

백 : 남자 선배들이 뭐라 하지 않아?

유 : 뭐라 안 해. 속으로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편의 봐주는데 불만 같은 건 없어.

▲ 박유림 EBS 교양 PD. ⓒPD저널
백 : 사람이 많으니까 가능한 거 같아. SBS 교양국의 경우 한 선배는 결혼했는데 아이는 없어. 교양 PD는 장기 출장이 진짜 많아. 출장 가면 보통 두세 달은 외국에서 보내야 하는데, 만약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다면 쉬운 일이 아냐. 우리는 20~30분짜리 만들려 해도 1주일 촬영하거든.

유 : 나는 최대한 오래 혼자 살고 혼자 할 수 있는 거 많이 하고, 초라해지기 직전에 결혼하자는 주의야.

박 : 우리 여자 선배들은 결혼 생활을 대체로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그게 힘들겠다 그런 건 없는데, 다만 우리끼리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있어. 한 여자 선배가 모 결혼정보회사에 가서 여성 직업 선호 순위를 봤는데 PD가 52위였대. 51위는 해녀였고. 그래서 “(PD) 순위가 맞나요” 했더니 “해녀는 밥이라도 해주죠”라고 했대(일동 웃음). 그래도 괜찮은 게, 53위는 여성 기자래(일동 웃음).

정 : 그리고 중요한 게 정작 우리가 하는 일을 잘 몰라.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연예인이랑 일하세요?”야. 그럼 말하지, “예 직장 동료입니다.”(일동 웃음)

박 : 주말에 나오면 선배들이 줄 그으며 콘티 짜고 있고 애들은 옆에서 오락하고 있어. 선배 맘이 어떨까 생각 들더라고. 남성 선배들도 마찬가지야. 주말에 놀아줘야 하니까.

유 : 나영석 선배도 쉬는 날이 딱 하루 일요일인데 그날도 가족과 함께 보내더라고. 남성PD도 사실 고민은 비슷하지 않을까.

정 : 신입사원 연수 때 들은 충격적 얘기 하나. 5년 전에 인사부에서 하는 얘기가 “드라마는 평균 수명이 짧아요, 이혼율이 40%고.” 네? 그런 얘길 어떻게 신입사원한테 하지? 그런데 와보니 정말 그렇더라(웃음).

백 : 잘 사는 분들은 잘 살아.

정 : 간부에 여성이 있고 없고 차이가 큰 것 같아. 정책 결정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소통되느냐의 문제야. 우리 드라마국도 나중에 여성 간부가 생기면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까. 몇 달 전에 들었던 얘기가 예능국에 모 조연출 선배가 결혼을 해야 하는데 결혼 전날 새벽 3시까지 종합편집(종편)을 하고 갔대. 실제로 신부가 식장에 제일 늦었다더라. 근데 이 선배가 ‘우리 결혼했어요’를 연출했어.

박 : 가끔은 방송사들이 사원에 대한 서비스가 부족하다고 느껴.

정 : 마치 장인처럼 뭐 하나 만들어야 되니까 우리 삶 하나를 포기해야 돼 그런 느낌 있잖아. 그런데 꼭 그래야 되나. 이 일도 나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백 : 육아 문제 관련해서 한 선배와 상의했었는데 그 얘기를 하더라고. 시청자들이 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 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잖아. 우리는 그걸 다루는 사람들이고. 제작자 자신들이 자기 삶을 포기하고 살면 도대체 너는 어디서 영광을 얻을 거냐. ‘내 행복을 위한 삶이 프로그램의 원천’이라는 얘기가 기억에 많이 남아.

#. 후배에게

▲ 백시원 SBS 교양 PD. ⓒPD저널
정 : 나를 포함한 여성 후배들이 혼나는 거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아. 여성들은 칭찬받는데 익숙하잖아. 특히 방송사에 들어올 정도 능력 가진 사람들 공부 좀 잘 하고 칭찬으로 무럭무럭 자라왔는데, 제작 환경 자체가 칭찬하는 건 거의 없어. 남자는 아마 군대 다녀와서 그런지 지적받는 게 익숙하다고나 할까. 여성은 쉽게 털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후배들이 혼나는 거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해. 다 똑같이 겪는 과정이니까. 지적 받은 건 고치면 되는 거야.

백 : 좋은 얘기 같아. 후배랑 많이 나가보진 못했지만, 출연자 대하는 방식이나 말하는 방식이나 설득하는 방식이나 그런 면에서 “선배랑 나갔을 때랑 다른 선배랑 나갔을 때랑 다른 것 같아요” 같은 얘기 들을 땐 기분이 좋아.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가는 느낌이야.

유 : 여성들이 현장에서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먼저 성급하게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여기는 잘 조직된 협업 체계이고, 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이걸 할 수 있을까 미리 재단하고 걱정할 필요는 없어.

정 : 책임감 같은 거 느껴질 때가 있어.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여성PD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생각해.

정리 = 김고은, 정철운 기자
사진 = 정철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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