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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후기] ‘KBS 스페셜 - 대지진, 위기의 일본’

지난 11일 오후 3시30분, <KBS 스페셜> 제작팀은 NHK를 통해서 방송된 최초의 쓰나미 생중계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쓰나미의 규모에도 놀랐지만 경보가 10분전에 내려졌음에도 신속하게 헬기를 띄워 현장중계를 한 NHK의 저력에도 놀랐다.

엄청난 재해의 현장을 담아내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전달한 취재자의 태도도 돋보였다. 국가 기간방송으로서 재난현장을 취재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렸다.

일본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더라면 KBS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울산이나 포항인근에서 대형 재해가 발생한다면 KBS도 NHK처럼 생중계를 할 수 있을까? KBS의 헬기는 김포공항에 있다. 항공촬영을 하기 위해서는 관계기관의 승인과 절차가 필요하다. 가장 빨리 이동한다 하더라도 여의도에서 김포공항까지 이동해 절차를 밟고 헬기가 이륙하기까지는 최소한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NHK처럼 위기시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서는 KBS헬기가 여의도 사옥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KBS가 1기의 헬기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NHK는 본사와 주요 지역국을 합쳐서 모두 14대의 헬기를 보유하고 있다. NHK의 쓰나미 생중계는 잘 준비된 재난방송 매뉴얼이 거둔 승리였던 것이다.

▲ ‘KBS 스페셜- 대지진, 위기의 일본’ ⓒKBS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현장을 취재하기로 하고 긴급하게 팀을 꾸렸다. 일단 두 명의 PD가 일본에 가고 두 명은 서울에서 취재하기로 했다. 그리고 주말에 피해상황을 체크하며 지난 14일에 취재 방향을 정하기로 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프로그램의 기획방향을 고민했다.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면 뉴스와 차별화된 심층 프로그램이 가능할까? 그동안 긴급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한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의 성패는 기획 방향에 달려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이 프로그램의 경우 피해현장은 NHK가 취재한 영상을 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차별화된 영상을 취재하지 못할 바에는 새로운 시각에서 현상을 들여다보고 분석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성패를 좌우한다. 우리는 사상 최대의 재난 앞에서 차분하게 대응하는 일본 사회의 매뉴얼과 저력에 주목했다. 따라서 피해 중심 지역을 갈 것이 아니라 다른 취재팀들이 주목하지 않는 피해 주변 지역과 도쿄를 취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야기현 등 피해 중심지역은 NHK가 촬영한 영상을 활용하기로 했다. 지난 15일 오전에 정현모, 이후락, 남진현 PD가 도쿄로 출발했다.

취재진이 도쿄에 도착한 당일 오후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의 격납용기가 손상돼 방사능이 일부 유출될 수 있다는 것과 이바라키현과 도쿄상공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

관심의 초점이 지진과 쓰나미에서 원전과 방사능으로 이동한 것이다. 취재팀들을 도쿄에 머무르게 하고 기획방향을 원전과 방사능으로 돌렸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해외취재 중 기획방향이 바뀐다는 것은 현장 박치기로 섭외를 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도쿄의 경우 지극히 평온한 일상이 반복되고 있고, 시민들도 감정표현을 자제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취재현장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어떤 현장을 취재할 것인지 서울과 도쿄 취재팀들의 고민이 커졌다. 평온한 일상 이면에 자리잡은 도쿄시민들의 공포심을 드러내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적절한 현장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원전 상황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바뀌어가는 상황을 추적하는 작업도 쉽지 않았다. 주말을 전후해서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방송 당일인 20일의 최신 상황까지 프로그램에 반영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마지막 더빙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방송 한 시간 전에 테이프를 넘기고서야 우리는 일본 원전과 방사능 관련 뉴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취재 지원시스템에서도 많은 한계를 노출했다. 대기중 방사능 농도가 높아져 가는 상황

▲ 공용철 KBS 다큐멘터리국 PD
에서도 취재팀을 보호할 아무런 장치가 없었다. 미국 주요 방송사들의 경우 우리보다 훨씬 더 사고원전에 근접해서 취재를 하고 있지만, 그들은 방사능 전문가들을 대동하고 수치를 측정해가면서 안전을 확보하 고 있다. 체첸이나 이라크 등에서 장갑차를 이용해 취재하듯이 취재 안전 매뉴얼이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방사성 물질이 노출된 환경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맨 땅에 헤딩하거나 아니면 전면 철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 이번 취재는 그 교훈을 온몸으로 체험한 사례였다. 방사능 공포를 무릅쓰고 현지 취재에 최선을 다한 이후락, 정현모, 남진현 PD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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