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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싱가포르에 나타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남 김정철이 화제가 됐다. 록(rock)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수행원들과 싱가포르 실내 스타디움에 나타났다는 것이다. 3대 세습의 성패여부에 나라 안팎의 관심이 집중된 시점에,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의 형이 외국에 모습을 드러내자 언론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잡았다. 여러 가지 분석과 추측성 기사가 쏟아지고, 만약 북한 주민들이 알면 위화감 때문에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북한 주민들에게 김정철의 외유소식이 전해질지 알 수 없지만, 북한의 내부 비판에 앞서 우리 언론들의 시선은 무척 차가왔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북한의 주민들은 밥 먹기도 힘든데 웬 엉뚱한 행동이냐는 반응이다. 공연장 인근의 고급 쇼핑몰에서 다이아몬드를 구입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보도도 김정철의 부정적 인상을 부각시켰다. 

반복되는 기아를 외국의 지원을 통해 해결하는 최빈국 지도자의 자제가 비싼 외화를 써 가며 외국가수의 공연을 찾아다니는 일은 참 속없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김정철의 행동을 비난하고 있을 수만 없다. 편견에 기초한 감정적 진단은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발전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김정철이 단순히 북한의 철없는 보통 청년이 아닌 이상, 그의 행보를 통해 북한을 이해하고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음악은 국경 없는 언어이다. 특히 록은 60 ~ 70년대 당시 젊은이들의 반항의식을 반영한 음악이다. 이전의 모든 대중음악을 통합하고 전자 기타와 드럼 등을 통해 발산된 강력한 사운드는 전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 비틀즈(Beatles),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밥 딜런(Bob Dylan),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으로 이어진 록음악은 각 시대상을 반영하며 다양한 형태로 그 생명을 이어갔다. 에릭 클랩튼의 연주는 한반도 북쪽에 살고 있는 한 청년의 가슴 속에 강력한 욕구를 불러 일으켰으며, 그를 싱가포르 실내 스타디움까지 불러들였다. 그 감흥을 혼자만 누리기 싫었던 그는 또래의 남녀 몇 명과 동행했다.

▲ 오기현 SBS PD

세계의 모든 젊은이가 공유하는 정서의 공감대에 그의 가슴도 닿아있다. 만약 그가 쿠바에서 열린 ‘사회주의 군가 경연대회(있는지 모르겠지만)’에 일행과 함께 참석했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록가수를 찾아 싱가포르에 나타난 김정철은 그 순간에는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보통 젊은이이다. 피어싱까지 한 모습은 그래서 기특하기까지 하다. 분단을 뛰어넘어 남북한 60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정서적 신뢰감이 중요하다. 정서적 신뢰감은 다양한 문화적 소통을 통해 형성된다. 평양의 록 마니아 김정철의 등장은 한반도 젊은이들 사이의 문화적 소통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며, 남북한의 대결구도 속에서 희망의 빛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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