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제작기] ‘민족을 넘어 인류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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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 ‘츠카 코헤이와 김봉웅’

지난 해 크리스마스 이브, 일본에서 우연히 츠카 코헤이에 대한 추모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 발단이었다. NHK에서 본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구찌다테’라는 독특한 연출방식, 격정적으로 대사를 토해내는 배우들, 그리고 그가 자이니치라는 사실, 이 모든 것이 나를 호기심에 빠져들게 했다. 코디네이터 양태훈으로부터 그가 일본 문화계의 거물 인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는 작년 7월에 사망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번역된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아타미 살인사건’, ‘비룡전’, ‘가마타 행진곡’ 등은 재일교포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일본 사람의 정서를 갖지 않고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도 많았다. 난감했다. 그래도 기왕 시작한 것, 일본 헌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무엇보다도 김봉웅은 뛰어난 연극 연출가였다. 연극을 봐야 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북구 극단이었다. 단원들이 보여준 리허설에서 비록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떤 울림이 나에게 깊게 전달되어왔다. 그 ‘울림’이 아니었다면 아마 다큐멘터리를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재일교포였고 동시에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속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재일교포’라는 범주를 뛰어넘어 ‘차별받는 마이너리티’라는 보편적 차원에 자신을 위치시켰던 사람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정체성’ 문제에 천착하는 재일교포 작가들과는 궤를 달리했고, 그 때문에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를 국가, 혹은 민족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깨달음은 나중에 편집실에서 얻은 것이다. 사실 제작 초기에 나는 그의 본 마음이 ‘늘 한국으로 향해 있을 것’이라는 선입관에 빠져 있었다. 이는 한국 방송이 늘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한일문제에 있어서 ‘민족’이나 ‘국가’, 혹은 ‘친일’이나 ‘반일’이라는 프레임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역사는 잊혀지는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증상’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나는 김봉웅이 ‘민족’이라는 프레임이 아닌 차별받는 ‘마이너리티’라는 관점에서 자신을 봐주기를 원한다고 상상했고 이를 프로그램에 반영했다.

20세기의 ‘민족주의’는 반식민, 반제국주의 투쟁의 유효한 수단이었고 가치있는 이념이었다. 하지만 전 지구적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가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현재, 민족주의는 사회 변화와 진보를 위한 사고의 틀이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지금은 좀 더 구체적인 인간, 구체적인 사회조건을 바라볼 수 있는 사고의 틀이 필요한 시대이다. 김봉웅은 한 인터뷰에서 ‘진정한 한일간의 친선은 저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한홍석 MBC 시사교양국 PD

말하자면 사회적 소수, 마이너리티간의 상호 이해와 결속이 한일간의 진정한 화해와 연대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번 일본 대지진 사태에서 나는 그의 생각이 실제로 구현되는 것을 보았다). 한일관계를 바라볼 때 우리는 여전히 ‘폐쇄적 민족주의’, ‘친일, 반일’, 혹은 ‘영토문제’라는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프레임들은 쉽사리 인종주의나 파시즘이라는 반지성적 광기로 치닫을 수 있는 위험 요소들이다. 김봉웅은 정치적 좌파나 진보진영에 몸담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소수자에 대한 배려의 정신은 진보적 휴머니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보편적 인류애에 맞닿아 있었다. 거기에는 어떠한 ‘편협한 애국주의’도 ‘인종주의’도 없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그의 연극에서 깊은 ‘울림’을 느꼈을 것이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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