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이스트와 관련해 할 말은 많지만 이미 많은 언론에서 수없이 많이 언급이 되었으니 그 부분은 제외하고 비교적 언급이 적었던 부분인 ‘영어수업’에 대해서 한 마디 해야겠다. 어떤 면에서 영어수업의 경우 카이스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많은 대학들이 그것을 올바른 것이라고 확신하고 시행 중에 있기에 어쩌면 더 중요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오래전 ‘영어 못하는 선진국’이라는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경험에 비춰 보면 ‘영어수업’은 한 마디로 자기가 목적하는 바를 스스로 부정하는 매우 멍청한 짓이다. 단순히 대학생들에게 영어회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모를까, 영어수업을 통해 대학생들이 선진 학문을 보다 효과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이를 방해한다는 말이다.

첫째, 뉴욕에 있는 거지에게 ‘상대성 이론’을 가르친다고 해서 거지가 그걸 이해할리는 만무하다. 영어를 잘하는 것과 학문을 잘하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만약 이를 동일시하게 되면 학문은 잘 하지만 어학적 재능이 부족한 천재를 영어 못한다고 바보를 만들어 낙제 시킬 수도 있다. 우수한 인재를 내쫓을 수 있는 제도를 대학이 운영한다는 건 멍청하다는 뜻이다.

둘째, 선진 학문을 이끄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신속하게 선진 학문을 접하고 좀 더 쫀쫀(?)하게 학문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분명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 도움이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대부분 자유자재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어와 학문을 같이 병행해야 하고 이렇게 되면 선진 학문을 습득할 시간이 줄어든다. 선진 학문을 습득하게 만든다면서 선진 학문을 습득할 시간을 빼앗는 것 역시 멍청하다는 뜻이다.

셋째, 바로 이웃나라 일본은 결코 영어를 잘하는 나라가 아니다. 물론 특수한 전문 분야에 있어서의 영어 실력은 매우 높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영어실력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더 낫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들의 대학 경쟁력은 우리보다 우수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질 높은 수준의 번역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국어로 최신의 학문을 신속하게 접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이라면 껌뻑 죽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처럼 우리도 번역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는 거의 없다. 몰라서 그런 거면 멍청하다는 의미고 알고도 그러면 더욱 멍청하다는 뜻이다.

 

▲ 김진혁 EBS PD

 

넷째, 그럼에도 굳이 영어수업을 해야겠으면 모국어가 아닌 말로 수업을 들었을 때 생기는 인지 언어학적 문제에 대해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충분히 연구할 시간을 주고, 그렇게 해서 나온 연구결과에 기반 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영어수업을 하면 된다. 뭐 대단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도 아니고 대단히 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그럼으로써 영어수업이 효과적이란 걸 증명할 확률도 훨씬 높아진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세계화 시대’ ‘글로벌 경쟁력’이란 두 구호만 가지고 밀어붙여만 댄다. 너무나 멍청해서 용감할 지경이다.
고로,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이보다 더 어울릴 때가 있을까? Stupid!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