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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LA=이국배 통신원

특정 국가의 방송 프로그램이 위성을 통해 세계에 송출되기 시작하면서, 소위 방송의 글로벌화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따라서 이 같은 방송 환경의 변화에 따라 방송 시장 역시 날로 커지고 있는 만큼, 그 정책에 대한 논란도 마치 무역전쟁을 둘러싼 논의들처럼 국제적인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동안 국제 방송 시장에서 자본이 아닌 방송 프로그램이란 차원에서 가장 적극적인 모습과 공격적인 시장 확대를 꾀했던 방송사는 다름 아닌 영국의 공영방송 BBC이다.

지난 1998년 BBC는 미국에 BBC아메리카를 설립한 이후, 위성과 케이블 미국 내 거의 모든 SO들에서 기본 채널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미국인 시청자들과 공통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BBC방송은 미국이라는 막대한 시장을 사실상 확보한 셈이며, 반대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세계 최대의 공영방송을 언어적인 불편함이 없이 시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BBC는 오는 29일 영국 윌리엄 왕자 결혼식 생중계에 550명의 인원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BBC아메리카 홈페이지

동일한 언어권이란 점에서 BBC월드 채널은 미국 내에서는 사실상 외국 방송사로 분류되기 힘든 측면이 있으며, 특히 미국에서는 BBC 방송이 광고 수주를 하기 때문에 수신료에 의해 운영되는BBC 방송의 본래적인 모습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영방송 BBC가 세계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결정적인 배경에는 가구당 146파운드(약 26만원)에 이르는 영국 국민들의 수신료에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BBC 방송 전체 수익의 약 80%에 이르는 연 36억 파운드(약 6조 4000억원)라는 막대한 수신료가 있기에 세계 시장에서도 타사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수신료는 미국 방송사들에게 부러움과 동시에 시기의 대상이다. 영국 내에서만 10개의 TV 채널과 16개의 라디오 방송을 갖고 있는 BBC 방송은 세계적으로 1억 8000만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22년부터 지속되어 온 이 같은 수신료 제도에도 최근 제동이 걸렸다. 이른바 우파 연합으로 알려진 카메론 총리 정부와 BBC 방송과의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BBC 방송은 수신료를 동결하는 동시에 오는 2017년까지 5년간에 걸쳐 13억 파운드(약 2조 3000억원)규모의 예산을 삭감하기로 결정했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뉴스 코퍼레이션 그룹의 루퍼트 머독은 자사 소유지인 <더 썬>(The Sun)과의 인터뷰에서 “수신료가 BBC 방송을 지나치대 비대하고 교만하며, 무책임하게 만든다”며, BBC 방송에 대한 본격적인 비난의 포화를 열었다는 것이 <뉴욕타임즈>의 보도다.(4월 24일자)

그러나 수신료를 문제 삼는 머독의 이 같은 발언은 뉴스 코퍼레이션의 시장 확대를 위한 일종의 선전일 뿐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BBC 방송의 보도국장 마크 톰슨은 “4대 일간지가 시장을 분할하고 있는 영국에서 머독의 뉴스 코퍼레이션은 이미 영국 신문 시장의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다”며, “머독의 BBC 방송 비난은 자사의 시장 확대를 위한 술수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BBC 방송은 현재 1억 620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아이플레이어(iPlayer) 인터넷 무료 서비스를 앞으로도 더욱 확대해 나갈 방침이며, 지상파 채널을 하나로 묶어 가정에 전달하는 동시에 무료 인터넷 서비스도 운영하는 이른바 ‘유뷰(YouView)’ 시스템을 구축해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 이국배 LA 통신원/ 자유기고가

BBC 방송의 예산 삭감은 오는 4월 29일 전 세계에 송출될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 생방송 중계에 과연 550명이나 되는 중계요원이 투입되어 해야만 하는 일인가에 대해 방송 구성원들 스스로에게 의문을 던지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활성화 되면서 일반인들의 생활과는 아무 필요도 없는 이야기들이 마치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것처럼 왜곡되거나, 너무 많은 이야기들로 인해 특정 사안에 대한 사실 여부를 판단하기가 더욱 더 어려워지고 있는 시대에, 그래도 보도의 공신력과 독립성을 아직은 유지하고 있다는 세계적인 방송 매체중의 하나가 대규모 예산 삭감으로 타격을 받게 된다면, 이는 전 세계인의 가장 고귀한 재산중의 하나가 큰 손실을 입게 되는 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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