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태지, BBK, 그리고 금산분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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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이지아 이혼소송으로 세상이 나리나리 개나리다. 이지아의 ‘나는 아내다’ 소송 덕분에 국민가수 서태지(전 남편), 국민탤런트 배용준(소속사 대표), 국민배우 정우성(연인) 모두 모양새가 이상해졌다. 꽃이 피기는 어려워도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했나, 네 명 모두 나락으로 떨어졌고 연예 전문 언론뿐만 아니라 주류미디어가 연일 이들의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흥미로운 현상이 일어났다.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 때문에 잊혀지고 있는 시사 현안을 들여다보자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이라고 쓰고 ‘김경준 BBK 메모 소송’이라고 읽었다. ‘이지아 농협보다 보안 철저하네, 농협은 이지아의 보안력을 배워라’라고 말하며 농협의 허술한 보안을 환기하기도 했다.

▲ 서울고법 민사19부는 지난 21일 2007년 ‘BBK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검찰이 김경준씨를 회유·협박했다는 김씨의 주장을 사실처럼 보도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시사IN>과 주진우 기자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사진은 <시사IN> 인터넷판 보도.

특히 트위터 이용자들은 서태지-이지아 이혼소송 보도가 인터넷에 올라오기 3분 전에 올라온 검찰-<시사IN>(주진우 기자) 소송에 주목했다. 지난 20007년 대선 직전 <시사IN>은 “내가 제출한 서류 가지고는 이명박을 소환 안 하려고 해요. 그런데 저에게 이명박 쪽이 풀리게 하면 3년으로 맞춰주겠대요. 그렇지 않으면 7~10년…"라고 검사들의 회유와 협박을 진술한 ‘김경준 메모’를 보도했다. 검사들은 이 보도에 대해 6억원의 민사소송을 냈는데, 서울고법이 ‘허위의 사실을 공표한 것이라 볼 수 없다’라고 이날 판결했다.

일부 트위터 이용자들은 BBK 김경준 메모 관련 판결 보도를 무마하기 위해 서태지-이혼소송 보도를 내보낸 것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날 ‘금산분리법’과 관련해 중요한 법이 통과했는데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 불신 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었다.

음모론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이슈의 패자부활전’이 일어났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행동하는 양심이 발현되었다. 이제 트위터 이용자들은 연예인 사생활 폭로 기사가 뜨면 그 기사 내용보다 그 기사로 어떤 기사가 묻히고 있는지를 먼저 찾았다. 그래서 이런 트위터 매뉴얼도 나왔다. “연예인 관련 대형 폭로 기사가 올라온다. -> 왜 그랬대? 하고 놀란다. -> 그러나 포털 연예면이 아니라 정치면을 클릭한다 - 뭔가를 발견하고, ‘음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서태지-이지아 이혼소송이라는 밥상에 BBK소송, 금산분리법 등 각종 시사 이슈 숟가락을 얹었다. 서태지와의 이혼 소송에서 이지아가 왜 법무법인 '바른'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현 정권과 밀착한 법무법인 ‘바른’의 성장사를 들여다 보기도 했다. 모든 길은 시사로 수렴되었다.

트위터계의 지단, 진보드림팀의 중원사령관 조국 교수와 트위터계의 루니, 진보드림팀의 거친 공격수 진중권 교수도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을 계기로 ‘연예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글을 올리고 이슈를 주도했다. 이들의 화법은 서태지-이지아의 문제를 사회전체의 문제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엇을 얻어갈 지를 논했다. 그래서 트위터의 밥상은 풍성했다.

그러나 비난도 있었다. 지식인이 왜 시급한 시사 현안을 놔두고 연예인 신변잡기나 논하냐며 뒤에서 비아냥거렸다. 본래 가장 저열하고 비열한 공격은 등 뒤에서 날라오는 법이다. 조국이나 진중권을 향한 말꼬리잡기식 비난을 보며 노무현 대통령 노제 사회를 본 김제동이 한 말이 떠올랐다. “가장 뼈아픈 비난은 등 뒤에서 날라왔다. 어떻게 개그맨이 노제 사회를 보느냐는 비판이 친노 내부에서 나왔다” 

그러나 소통은 일방향적인 것도, 쌍방향적인 것도 아닌 순환적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본 <디워>에 대해서 진중권이 얘기해야 그가 얘기하는 미학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모두가 얘기하는 서태지-이지아-정우성에 대해 조국이 얘기해야 그의 진지한 이야기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이것이 소통이다.

지식인의 역할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시덥잖은 사안에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주요 사안으로 관심을 옮기는 일, 이것도 지식인의 소중한 책무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사안에 대해 말하기와, 말하는 화자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모으는 일은 중요하다. 깔아준 멍석에서 풍월을 잘 읊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멍석을 까는 일이다.

서태지-이지아 이혼 소송과 관련해 소셜미디어에서 벌어진 것은 분명 미디어의 진화다. 단순한 ‘신상털기’와 ‘음모론’을 넘어서 이슈 뒤의 이슈를 살피고 이슈에 대한 접근 방식, 그리고 이슈를 대하는 자세까지 이야기하는 것은 진화의 단면이다. 이 ‘이슈의 패자부활전’을 도모하는 원형경기장의 이슈코디네이터가 되는 것, 그것이 지식인의 새로운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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