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한 조선의 저잣거리를 그려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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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다큐와 드라마를 접목시킨 EBS ‘다큐 프라임-한양의 뒷골목’ 이주희PD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다큐멘터리를 이야기 중심의 드라마로 풀어낸 작품이 있다. 다큐멘터리의 핵심인 내레이션은 ‘판소리’로 새롭게 시도해 마당극을 보듯 극의 흐름을 신명나게 이어가기도 했다. 지난 달 25일부터 사흘간 방영된 다큐드라마 3부작 EBS <다큐 프라임-한양의 뒷골목>(이하 <한양의 뒷골목>)이다. 지난 2일 서울 도곡동 EBS 근처 한 카페에서 이주희PD를 만났다.

▲ EBS <다큐 프라임-한양의 뒷골목> 이주희PD ⓒPD저널

<한양의 뒷골목>은 조선 후기 무뢰배들의 모임인 검계, 치안을 담당하는 포도청, 기방의 운영자인 왈자(曰字)와 기녀, 거지 등 뒷골목 민초들의 삶과 문화를 포착해 생생하게 재현했다.

시대 배경으로 ‘조선후기’를 택한 이유에 대해서 이 PD는 “당시 그들의 일상이 묻어나는 풍속들을 중인과 서리의 문집을 통해 비교적 많이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조선후기의 저잣거리 문화가 지역 특산물 대신 쌀을 공물로 거두는 대동법 실시되면서 더욱 다양하고 풍성해진 점도 한 몫했다. 이처럼 국가 중심적인 거시 담론에서 벗어나 ‘조선 풍속의 미시사’라는 틈새를 파고든 이유를 묻자 그는 퇴계 이황 선생의 유언을 빗대어 말했다.

“퇴계 이황 선생의 유언은 ‘매화에게 물을 주라’였어요. 이 한 마디가 퇴계 선생이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일면 알 수 있는 대목이죠. 무가치해 보이는 것에도 많은 걸 담고 있다고 느껴지니까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관심이 기울더라고요. 본래 저도 가벼운 사람이기도 하고…(웃음) 그 시대에 뭘 입었는지, 뭘 먹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등 구체적인 삶을 접하면 비로소 ‘조선’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제작진은 작년 7월부터 사전 조사에 돌입해 실제 촬영은 서산 해미읍성, 선비촌, 수원화성 등을 돌며 약 3주간 열 차례 만에 끝냈다. 이후 인터뷰와 사료 고증와 같은 후반 작업은 약 3개월에 걸쳐  진행했다. 이PD는 “사극 자체가 공짜로 얻어지는 컷이 없는 장르”라며 “제작비의 대부분은 소품, 의상과 같은 미술비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슘치마는 기녀들이 입는 치마를 더욱 풍성하게 보이도록 받쳐주는 의상인데 실물이 없어 직접 제작했다”고 덧붙였다.

▲ EBS <다큐 프라임-한양의 뒷골목> ⓒEBS

‘재현’을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촬영 기법에서도 드러난다. 모든 방송 분량을 캐논 5D Mark2(오두막) 카메라로 촬영해 18세기 기생들의 독특한 화장법과 복식을 선명한 색감으로 전달했다. 또한 실존인물인 표철주, 밀양 기생 운심, 치안을 담당하는 포도대장 장붕익 등 주인공들을 통해서도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이를테면 장붕익의 ‘대사’를 통해 포도청의 은어와 검계 소탕 장면에서는 수사기법을 접할 수 있고, 운심이 장검을 들고 추는 ‘검무’는 실제 밀양 김은희 선생의 도움으로 재현해낸 춤이다. 이처럼 다큐드라마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라 ‘조선 풍속사’임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주요 인물 관계는 ‘상상력’의 힘이 크죠. 시대상을 단순 나열하면 지루해지기 쉬워 보다 쉽게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도록 이야기 구조 위에 여러 풍속들을 배치했어요. 역사로 비춰볼 때 허무맹랑한 거짓이 아니라면 상상력의 발휘는 중요하다고 봐요.”

그는 인터뷰 내내 역사적으로 조선과 맞물려온 중국의 명나라를 훑고, 일본의 에도시대를 곁들였다. 이PD는 촘촘하게 파고든 조선 풍속사만큼이나 ‘역사’라는 큰 줄기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엉뚱하게 들리겠지만 ‘우리나라는 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까’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갖고 있어요. 식민지는 단순히 타국과의 개항 시기보다 조선 내의 문화, 정치, 사상에 따른 영향이 있었으리라 봐요. 언제가 되든 조선 시대를 모조리 이해하고 싶다고나 할까요.”(웃음) 

올 초에 방영된 <개항과 전쟁>, <한양의 뒷골목>에 이어 곧 제작에 돌입하는 작품 소재도 조선시대의 ‘법의학’을 통해 바라본  법과 정의다. 17년차 이주희PD의 조선에 대한 목마름은 시청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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