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기 / CBS 특별기획 3부작 <함께 사는 연습> (8월 13~15일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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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해외동포들의 어제와 오늘

|contsmark0|지난해 3월 <2000년 남북 평화 만들기>라는 연중기획을 시작하면서 중국, 러시아, 일본의 동포사회 취재 계획을 구상했다. 남북한의 평화공존과 분단극복을 얘기하는 마당에 해외동포를 빼놓을 수는 없다는 게 그 출발점이었다.
|contsmark1|취재의 화두는 ‘함께 사는 연습’. 반세기 가까운 단절 뒤에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중국동포와 ‘고려인’ 또는 ‘까레이스끼’라 불리는 러시아동포, 그리고 국경 없는 분단을 겪어온 일본동포. 우리는 이들을 쉽게 ‘동포’, ‘형제’라고 부른다.
|contsmark2|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일년에 한번 광복절에나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그런 이방인으로 머물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와 이들 사이에는 ‘동포’라는 감상적인 단어로는 도저히 그 간격을 좁힐 수 없을 것 같은 오해와 편견, 무지가 가로 놓여 있는 것 같았다.
|contsmark3|또다른 분단, 재일동포
|contsmark4|장기파업의 여파로 지난 4월에야 취재에 나설 수 있었다. 첫 방문지는 오사까. 요즘엔 ‘총련’이라는 이름이 예전처럼 공포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지만 아직도 우리는 ‘총련’과 ‘민단’이라는 이분법을 통해 재일동포 사회를 바라보는데 익숙하다.
|contsmark5|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오사까의 건국학교를 방문하면서 ‘남과 북’, ‘총련과 민단’이라는 이분법이 재일동포들의 삶과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contsmark6|백두학원에 속해 있는 건국학교는 우리에게 민단계 학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해방 직후 재일동포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이 학교는 남북한에 단독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부터 지난 1976년까지, 30년 가까이 태극기와 인공기 모두를 거부한 채 ‘통일 조국’을 지향하는 민족교육의 길을 걸어 왔다.
|contsmark7|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가슴에 간직한 채 오늘도 온갖 차별 속에서 일본 속의 ‘외국인’으로 살고 있는 동포들. 그들에게 남북의 조국은 자신들의 분단을 강요해왔던 것이다.
|contsmark8|여기에 남쪽 조국은 과거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를 요구하는 한국국적 동포들에게 ‘반국가단체’라는 올가미를 둘러씌워 동포사회에 또 다른 분단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재일 동포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수혜자인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지금도 이들은 아직 조국, 한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contsmark9|재일동포 학생들의 90% 이상이 현재 일본 학교에 다니고 그 대부분은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한국인인줄도 모르고 또는 한국인임을 숨기고 사는 이들에게 한국어는 외국어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그나마 총련계 학교와 민단에서 추방당한 이른바 ‘반국가단체’의 청년들이 우리말의 명맥을 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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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1|조선족, 그들을 동포라 부르지 마라
|contsmark12|중국동포 취재는 요녕성 심양에서부터 시작됐다. 첫 인터뷰에서부터 중국동포들과 우리들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각보다는 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혹시 한국정부에서 ‘우리는 중국정부를 상대로 돈 벌 수 있으니까 조선족은 관계없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큰 모험입니다. 갈등이 더 커지면 커졌지 없어지지 않아요.” 너무나 차가운 반응에 하마터면 목소리를 높일 뻔했다. 하지만 어쩌랴. 기분은 나빴지만 그들의 분노에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contsmark13|심양에서 길림성 연길로, 연길에서 흑룡강성 하얼빈으로 중국 동포들이 밀집해 있는 동북 3성을 도는 동안 어디에서나 한국이 동포사회에 드리운 그림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contsmark14|아직도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수많은 사기 피해자들과 빚을 갚기 위해 ‘도둑배’를 타고 한국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리고 사기 결혼 피해자들. 나이 40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이웃집 처녀가 한국으로 시집가는 것을 지켜보는 농촌 총각들. 이들에게 한국사람은 더 이상 따뜻한 동포의 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한국인이란 그저 자신들보다 조금 잘사는 사람들일 뿐. 동포라는 정서적인 유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배신감만 더 키운 것 같았다.
|contsmark15|중국동포들이 한국을 얘기할 때면 흔히 ‘지옥에서 천당을 오갔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제 10년 가까운 경험을 통해 그들은 모국, 한국에 대해 어느 정도 균형 잡힌 인식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국에 대한 환상을 깬 지금 중국동포들이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contsmark16|한국이 외국의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면 일관된 원칙 아래 노동력을 수입하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 자신들이 필요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쓰면서 ‘산업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을 강요하고 ‘불법체류자’를 양산하는 이중적인 정책을 고치라는 것이다. 우리 중에 누가 이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겠는가.
|contsmark17|이광조 cbs 편성제작국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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