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개콘-감수성’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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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개콘-감수성’의 교훈
  •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 승인 2011.05.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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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KBS <개그콘서트> '감수성'

요즘 KBS <개그콘서트>의 '감수성'이란 코너에 꽂혔다. 물론 알만 한 사람은 다 아는 코너다(<개콘> 시청률이 얼만데!). 그래도 부연하자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시대의 장군들이 등장해 10년이 넘도록 끝나지 않는 전쟁에서 이길 방법을 고민하는 코너다. 이들이 모인 성이 바로 감수성. 그런데 이 제목은 중의적이다. 용감무쌍한지는 몰라도 일단 목소리는 우렁찬 장군들의 감수성도 예민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감수성을 지키는 감수왕이 한 장군에게 “전쟁에 나이가 무어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당장 장군의 아들부터 전쟁터로 보내겠소!”라고 소리 지르면, 그 장군은 굉장히 상처받은 표정으로 “이제 4개월이에요”라고 속삭인다. 투구를 벗어 보이며 덧붙이기를 “겨우 요만해요” 그때 왕과 다른 장군들이 그를 위로한다. “미안해, 몰랐어” “아니, 왜 그랬어요” “전하가 심했네” 안 웃을래야 안 웃을 수 없다.

▲ KBS <개그콘서트> '감수성'

사실 이 코너는 기존에 숱하게 반복되던, 요컨대 <유머 1번지>에서 심형래를 국민 개그맨으로 만드는데 기여한 ‘변방의 북소리’의 전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보이는 것과 의미하는 것이 다른 데서 오는 괴리감이 유머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남성성의 상징인 ‘장군’의 목소리, 분장, 복장이 이어지는 소심한 태도와 부딪칠 때 관객은 뒤집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반전은 예상 가능하다. 하지만 예상하고 있는 반전의 타이밍은 언제나 어긋난다. 기대하지 못한 멘트(이제 4개월이에요, 같은)가 허를 찌른다.

이때 ‘감수성’이 환기하는 건 권력과 허세의 붕괴다. 목소리를 높여 적을 칠 것을 명령하고, 포로를 심문하고, 사형을 집행하는 이 모든 과정이 한바탕 헛소동이 되는 건 그 당사자들의 '빈정이 상할 때'다. 고문을 당하던 포로(혹은 죄수)는 옷을 함부로 벗겼다는 이유로 빈정이 상해 자리를 떠나고, 장군들은 그런 그를 다시 잡기 위해 다독인다. 이 소심한 영웅들은 일종의 '마초 코스프레'를 하는데 ‘두분토론’의 박영진이 밑도 끝도 없이 윽박지르는 것과는 정반대다. ‘감수성’의 장군들은 “소는 누가 키워!” “남자의 순정을 매도하지 마!”라는 외침으로 일관성을 드러내는 박영진과는 달리 사회적 지위와 개인적 성향의 사이에서 분열적인 상태를 내보인다.

나는 이 ‘분열 상태’가 흥미롭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책임을 져야할 자리에 앉은 자들은 이 분열을 꽁꽁 숨겨놓거나 치료하거나 극복해야할 것으로 여기는데, 솔직히 그런 게 가능할리 없다. 본성이기 때문이다. 혹여 가능하다고 해도 다른 쪽으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 망가지는 것이다. 그래서 비리를 저질러 놓고 뻔뻔해진다거나, 잘못을 저질러도 사과 대신 체면만 챙긴다거나 뭐 그런 행태를 반복한다.

▲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그래서 ‘감수성’을 보면서 문득 대부분의 사람들이 차라리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개인적 성향의 분열을 고스란히 인정하는 게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질까. 솔직히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솔직한 태도가 관계 맺는데 기본인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래야 이해를 하든 비난을 하든 화해를 하든 할 게 아닌가. <개콘>의 장군들이 보여주는 ‘마초놀이’는 그래서 의미심장하고 그래서 흥미롭고 그래서 웃긴다. 이 코너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우리 모두 소심하게 살자, 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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