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의 슬로건은 ‘내일을 봅니다’다. 그러나 SBS 사람들은 다들 “내일이 불안하다”고 한다. 이윤민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위원장은 조합원들의 ‘불안 없는 내일’을 위해 지난 1년 간 싸웠다.
이윤민 위원장은 지난해 5월 17일 임기를 시작했다. 회사는 임기 시작 3일전 부장급 이상 직원과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실시한다고 노조에 ‘통보’했다. 이 위원장은 취임 첫날부터 1층 로비에 책상을 펼쳐놓고 서명운동과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투쟁이 벌써 1년. 노조위원장 임기의 절반이 지났지만 달라진 건 없다.
조급해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12일 오후 서울 목동 SBS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이윤민 위원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임기 첫날의 마음 그대로, 그는 “원칙을 지키면서 한 걸음씩 나아겠다”고 했다. 그렇게 ‘흔들림 없는’ 노조위원장은 지난 17일 결의대회에서 파업 찬반투표 실시를 결의했다. <PD저널>은 SBS의 지난 1년을 평가하고 SBS의 미래를 묻고자 이윤민 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로비 투쟁 1년을 맞았다. 노조위원장 임기도 일 년이 지났다. 지난 1년을 평가한다면.
“된 게 아무것도 없다. (웃음) 답답하다. 아무 진전도 없다. 회사는 아무 반응이 없다. 불통의 1년이었다. 회사는 소통의 시대에서 불통이 극에 달한 언론사의 모습을 보여줬다.”
- 그동안 힘들었던 순간과 보람 있던 순간을 꼽자면.
“지난해 말 파업 찬반 투표를 하려고 대의원대회 일정을 잡았으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때가 개인적으로 제일 힘들었다. 가장 큰 보람은 현업에 있을 때 못 만나던 분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동안 몰랐던 고민을 나눌 수 있었던 점이었다.”
- 회사는 여전히 전 사원 연봉제를 바라고 있다. 노조는 연봉제를 왜 반대하나.
“연봉제가 들어오면 조합원 줄 세우기가 진행될 수 있다. 회사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 월급을 더 준다고 하지만 말 잘 듣는 사람에게 돈을 더 주는 식이 될 것이다. 공정방송을 위해 소신껏 일 하는 것도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것이다. 여태껏 지시에 불응하며 제대로 된 보도를 해 경영진과 충돌하더라도 승진이나 인사 이동의 불이익은 받았지만 월급이 깎이진 않았다. 그러나 연봉제는 기본급까지 건드리게 된다.”
- 회사는 연봉제가 도입되면 동기 부여가 될 거라 말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연봉제가 퍼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연봉제로 실질 임금이 향상됐다는 얘기는 없다. 오히려 소득이 감소했다는 의견이 많다. 또 대부분의 회사들은 연봉제를 시행하면서 임금을 깎았다. 전 사원 연봉제가 들어서면 새로 들어오는 신입사원의 월급을 대폭 깎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연봉제는 실제로 생산성 향상에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평가 없이 신화나 우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 동기 부여를 통해 콘텐츠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조의 방안은 있나.
“회사는 너무 금전적인 부분만 생각한다. 물질적 보상보다는 비물질적 보상이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된다. 사원들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으면 물질적 보상도 소용없다. 나는 PD월급이 얼마인지 모르고 입사했다. 단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서 들어왔다. PD에게는 자율성을 주고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
- 올해 초 조직 개편에서 교양과 예능의 구분이 없어졌다. 최근에는 교양 PD들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보도국 부서로 발령 받았다. 지난 1년 간 SBS PD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하나.
“(PD들은) 부품 취급을 받았다. 전에는 인사발령 내기 전에 설득의 과정이 있었으나 요즘은 절차들이 완전히 생략됐다. 인사발령 당일 날 보도본부로 가라는 식이다. 회사도 잘 생각해야 한다. 프로그램은 기계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존중받을 때 일할 맛이 난다. 본부장이나 CP가 머리가 되고, PD를 손발로 쓰겠다는 사고로는 프로그램이 절대 잘 될 수 없다. 지금 상황은 분명한 퇴행이다.”
- 지난 1년 간 경영효율화란 명목의 구조조정 움직임도 있는 것 같다.
“고용 안정을 저해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SBS뉴스텍의 경우 회사가 4억 원을 들여 경영효율화를 위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얼마 전에는 중계차 한 대를 매각해서 인원 조정이 일어나 조합원들의 불안이 증폭됐다. 올해 초에는 PD와 기자들을 심의팀이나 홍보팀 등 비제작부서로 발령 냈다. 이런 움직임들이 고용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 스포츠 제작부서도 대폭 축소되고 관련 업무는 SBS ESPN으로 넘어갔다. 이 같은 아웃소싱 시도는 계속 있을 것이다.”
- SBS는 지난해 흑자가 났지만 임금은 3년 째 동결되는 분위기다. 지주회사 SBS 미디어홀딩스 체제에서 노조가 현실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변화가 있다면.
“우선 콘텐츠 요율을 현실화해야 한다. 홀딩스 계열사들이 너무 싸게 콘텐츠를 가져간다. 해외 판권도 MBC처럼 SBS로 회수해야 한다. 또 홀딩스 체제의 운영 방식을 법제화해서 지상파를 소유하고 있는 홀딩스도 지분제한을 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노사합의로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임명해야 한다.”
- 1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된 것 같다. 로비농성 외에 다른 방식의 투쟁을 고민해야 할 것 같은데.
“노조가 우리나라에서 쓸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 파업 외에는 대화를 하는 수밖에 없다. 로비에 오래 앉아있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 외에는 당장 대안이 없다. 노동운동의 긴 역사를 생각하면, 일 년이 긴 기간은 아니다. 무력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지난해 지주회사 토론회와 강연회 등을 통해 조합원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등의 노력을 이어왔다.”
- 현재 노조는 합법적 파업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투쟁 동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이 노조에게 힘든 시기는 맞다. KBS와 MBC는 사장이 바뀌지만 SBS의 경우 대주주가 바뀌기 어렵다. SBS의 대주주인 SBS미디어홀딩스는 실질적인 사용자이지만 공식적인 대화 상대가 아니다. 노조는 권한이 떨어진 경영진과 대화해야 한다. 어느 순간 실질적인 대화상대가 없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의 불안과 불만이 높다고 생각한다. 자회사의 경우 구조조정 불안감이 크고, 본사의 경우 인사전횡 등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가 동력을 측정할 순 없다. 노조는 조합원의 의지를 모을 뿐이다. ”
- 노조위원장으로서 절반의 임기를 보냈다. 남은 임기는 어떻게 보낼 생각인가.
“원칙을 지키면서 한 걸음 씩 나아가겠다. 이럴 때일수록 단결과 연대다. 힘들어하는 외부 언론노동자와도 계속해서 연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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