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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경직성을 통탄한다
  • 승인 2001.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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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오랫동안 위헌 논란의 대상이 돼 온 ‘방영금지 가처분’제도에 대해 ‘합헌’결정이 내려졌다. 예견했던 대로 이 땅의 판관들은 이 시대착오적 괴물에 다시금 법적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부여했다.
|contsmark1|“법원이 명백한 요건하에서 가처분 결정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합헌”이라는 것이 결정요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도무지 수긍할 수 없다. 결정의 근거가 극히 궁색한데다가 그 바탕을 이루는 법해석이 너무도 경직돼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contsmark2|도대체 ‘명백한 요건’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contsmark3|본보가 그간 누차에 걸쳐 지적해왔다시피 거의 모든 가처분 신청에 대한 사법부의 심판은 해당프로그램을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려지고 있다. 양측 당사자들의 변론조차 없이 지극히 간단한 소명이나 보증서 제출에 근거해 내려지고 있다. 그러니 그 ‘명백함’에 어느 정도나 적실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contsmark4|쟁점이 되는 부분에 대한 최소한의 실체적 접근도 없이 어떤 ‘솔로몬’이 ‘명백한지’여부를 제대로 확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상태에서 명백해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주관적 혐의 이상이 되기 어려운 바, 그 정도의 알량한 명백함을 근거로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사형언도가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contsmark5|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시사프로그램이 방영시간에 임박해서야 완성되는 우리 방송의 열악한 제작여건 상, 담당 pd를 비롯해 제작진 중 누구도 ‘준비된 가처분 신청’에 대해 최소한의 ‘준비된 대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contsmark6|그리고 이러한 방송쟁이들의 약점을 노려 방송시점 직전에 제출되는 악의적 가처분 신청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분쟁당사자간에 자신의 법익을 지키는 데 있어 실질적 형평성을 담보해주지 못하는, 그리하여 사회전반의 건강성 유지라는 공익을 위해 존재하는 언론의 자유를 구조적으로 위축시키고 그럼으로써 기득권층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리가 노출되는 것을 막는데 주로 활용되고 있는 이 제도를 대체 무엇을 위해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contsmark7|사실상 대부분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사후적 구제제도로 대체돼 사멸해버린 이 제도를 과연 언제까지 존속시켜야 하는가?
|contsmark8|설사 백보를 양보해서 이 제도가 가지는 긍정적 의미를 애써 평가한다손 치더라도 우리는 이번 합헌 결정에 대해서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contsmark9|이 제도가 완전합헌이라면 왜 언론계뿐만 아니라 학계, 심지어 법조계 내부에서까지 광범하게 위헌의 소지를 지적해 왔겠는가? 사법부는 왜 그 목소리들에 대해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contsmark10|우리는 이번 완전합헌 판결이 “일단 법원이 판결한 사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재론할 수 없다”는 식의 경직된 법철학의 소산이라는 혐의를, 이 나라 사법부 특유의 보수성의 발로라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contsmark11|정녕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소수 기득권측의 탈법적 사익보호를 국민 전반의 알권리보다 앞세우면서 “우리들이 잘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합헌”이라는 식의 낯뜨거운 궤변을 늘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contsmark12|무릇 모든 법과 제도는 현실을 규정하고 또 현실을 반영한다. 아니 현실을 합리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그것이 곧 ‘법치’의 근본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강조돼야 할 것이 바로 사법적 판단의 합리성과 유연성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2001년 9월, 우리 방송인들은 이번 합헌 결정을 내린 사법부의 경직성을 실로 통탄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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