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디어 ‘이전’ ‘이상’ ‘이후’의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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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를 20개월 정도 했다. 그간 1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모았다. 흔히 말하는 ‘파워 트위터러’로 꼽히기도 한다. 이쯤 되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트위터는 아직도 새롭다. 이곳은 생태계다. 생태계이기 때문에 끝없이 진화한다. 그 진화하는 모습이 다채롭다.

미디어를 전공하고 미디어에 종사하면서 미디어를 취재하는 기자로서, 트위터의 미디어적 성격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인터넷이 이메일과 댓글/덧글을 통해 매스미디어의 일방향 소통을 쌍방향 소통으로 진화시켰다면 트위터는 쌍방향 소통을 다시 ‘삼방향 소통’으로 진화시켰다. 트위터에서 뉴스 소비자는 단순한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과 유통에도 관여한다.

‘삼방향 소통’을 조금 풀어서 말하면 이렇다. 트위터에서는 유명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얼마든지 뉴스 생산자가 될 수 있다. 그가 누구인가보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그 말이 정보 가치가 있거나 정말 재밌거나 매우 감동적이거나 하면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가에 관계없이 이를 전하곤 한다.

그리고 함께 이 ‘힘없는 자의 말’을 함께 전달한다. 유명인이 전달해서 이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이 전달한 글이 이슈가 된다. 마치 <슈퍼스타K2>의 허각이 낙하산으로 우승자가 된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들의 문자 투표와 ARS 투표를 얻어 챔피언이 되었듯이 다중의 의지가 이슈를 만든다. ‘이슈의 패자부활전’이 일어나는 셈이다.

이렇게 뉴스의 생산과 유통과 소비를 함께 하면서 미디어로서 진화하며 트위터는 ‘미디어 이전의 미디어’ ‘미디어 이상의 미디어’ ‘미디어 이후의 미디어’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성장’만 하던 미디어가 트위터라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숙’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미디어의 진화다.

‘미디어 이전의 미디어’라는 것은 트위터의 속보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식이다. 5월23일 기자들이 속보로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로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동 화재 소식은 트위터러들이 전했다. 화재가 난 빌딩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나 진압 소식은 오직 트위터로만 전달되었다.

트위터로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명제가 ‘모든 시민은 지금 이 순간 기자가 될 수 있다’로 구체화 되었다. 현장 소식을 전하는 트위터러들에게 일종의 ‘취재지시’를 내렸다. 구조를 기다리던 여인의 구조 여부와 다시 연기가 나는 이유 등을 파악해달라고 부탁했다. ‘전국민 비상연락망’이 구축된 셈이다.

트위터는 이미 ‘미디어 이전의 미디어’이기 때문에 반응 역시 즉자적으로 나타난다. 신라호텔 한복 출입제한 사태에 대한 이부진 대표의 사과는 기성 언론에 보도되기 전, 아직 신문 방송 포털에 나오기 전, 오직 트위터에서만 이슈가 된 상황에서 결정되었다. 이는 트위터가 미디어로서 독립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트위터가 ‘미디어 이상의 미디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뉴스가 대중의 호기심 혹은 관음증을 충족하기 위해 금도를 넘을 때 이를 제어하는 역할을 할 때다. 송지선 아나운서의 자살 소식에 누리꾼들이 섣부른 정의감에 상대 야구선수에게 악플을 다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주류 미디어가 유성기업 파업에 대해 경제 손실만을 얘기할 때 미디어의 일방적 보도 태도를 성토한다.

‘미디어 이상의 미디어’로서, 여론의 올바름을 고민하는 미디어가 된 데에는 조국 고은태 등 파워 트위터러들의 공이 크다. 그들은 선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동에 이용당하는 것을 경고하면서 여론의 ‘성숙’을 이끌어 냈다. 초기에 트위터의 여론은 격렬하게 쏠리는 양상이었는데, 이제는 정반합의 모형으로 진화하고 있다.

‘미디어 이후의 미디어’로서의 기능은, 뉴스 이후를 고민한다는 점이다. 트위터를 통해 구미시의 단수 사태가 이슈화 되면서 미디어들도 따라서 이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트위터는 그 이후를 고민했다. ‘구미시 물공급 모임’을 만들어 급히 물을 공수했다. 미디어가 해결하지 못하는 ‘소 왓’(so what)에 대한 답을 준 것이다.

 

▲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트위터가 ‘미디어 이전의 미디어’ ‘미디어 이상의 미디어’ ‘미디어 이후의 미디어’로서 기능하는 것을 기존 미디어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전적인 일방향 소통과 근대적인 쌍방향 소통을 넘어 함께 이슈를 만드는 ‘삼방향 소통’의 시대로 바뀌었다. 이제 함께 만들고 함께 전달하고 함께 소비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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