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한국 PD들의 상상력을 옥죄는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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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통제, 심의 , 그리고 시청율 지상주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을 방송할 수 있나요?” INPUT(세계공영TV총회) 서울대회에서 열린 여러 세션에서 진행자들이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질문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답변들이 이어졌다. “아마 그런 프로그램을 방송하면 관계자가 문책을 당할 겁니다.” “한국에는 심의라는 게 있어서 어림도 없습니다.” 

세계공영TV총회(INPUT) 서울대회가 끝났다. 해외에서 수백 명의 방송 제작자들이 왔고 80여 편의 공영방송 프로그램들이 시사됐다. 방송의 기술적 수준을 보자면 한국이 그 어느 해외 공영방송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 방송에서는 제작할 엄두도 못 내는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우리 방송이 고질적으로 갖고 있는 ‘표현의 한계’를 절감했다.

예를 들면 벨기에 방송의 ‘Be Belgian and Shut Up’같은 프로그램은 고도의 정치 풍자를 보여줬다. 벨기에의 여당, 야당 대표들, 심지어 남의 나라 대통령인 사르코지도 단골 풍자대상이다. 제작자는 오랜 경력을 가진 기자다. 그는 밤에는 사르코지를 풍자하고 낮에는 사르코지를 인터뷰한다. 그래도 그의 기자 생활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풍자나 비판을 당연시하는 문화다. 한국에선? 만약 용감한 예능PD가 풍자를 시도하면 곧 바로 대통령이 한 마디 하실 수도 있다. 그러면 그 프로그램은 바로 막 내리기 쉽다. 운이 안 좋으면 공안검사 출신이 수장인 방송통신심의위가 철퇴를 내린다.

네덜란드 공영방송이 방송한 ‘Ev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Sex’도 그렇다. 남성의 섹스테크닉을 향상시켜 세상을 평화롭게 하자는 시각을 가진 진행자는 카메라를 향해 손짓, 몸짓, 표정을 동원해 여성을 행복하게 만드는 섹스법을 가르친다. 심사과정에서 나는 한국 여성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오히려 아시아 여성 관객들이 큰 관심을 표명했다. 섹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전달이 오히려 위선 속에서 과장과 환상을 키우는 것보다 낫지 않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방송할 수 있냐는 거다. 물론 안 되지. 시청율 욕심에 방송사 간부들은 잠깐 상상 해볼지 모르지만 곧 ‘심의’라는 괴물이 그들의 생각을 두더지 잡듯 때려잡을 것이다.

나는 INPUT의 숍 스튜어드(shop steward: 심사 및 진행위원)로 활동하면서 한국 방송프로그램들의 형식과 내용이 해외 방송들에 비해 지나치게 협애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에서도 한국TV의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에 비해 해외다큐에서는 놀랄 만큼 다양한 형식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선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1차적으로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적 통제나 심의가 제작자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나친 시청율 지상주의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명색이 공영방송임에도 시청율에서 2등, 3등을 허용하지 않는 풍토는 다큐 같은 분야에조차 일정 이상의 시청률을 강요해 형식 실험을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거에는 비록 시청률이 나빠도 동료들이 인정해주면 좋은 PD로 인정받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평가 속에는 시청율이 필수 요소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리 감동이 있고, 동료PD들의 호평이 있어도 시청율이 낮으면 뭔가 잘못된 프로그램이다.  

▲ 최승호 MBC 시사교양 PD

예를 들면 MBC는 많은 INPUT 심사위원들로부터 최고라는 칭찬을 들은 ‘7일간의 기적’을 시청율이 낮다는 이유로 하필 INPUT 개최 직전 폐지해버렸다. 시청율이 프로그램에 대한 유일한 평가척도가 되면 한국 방송 프로그램은 지금보다 더 획일화될 것이며, PD들의 상상력은 고갈되고, 시청자는 불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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