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청강의 ‘코리안 드림’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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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운의 무한맵] 한국에 김태원 같은 ‘사장님’은 없다

▲ MBC <위대한 탄생> 최종 우승자 백청강. ⓒMBC
많은 기자들은 MBC <위대한 탄생>(이하 <위탄>)의 우승자로 백청강을 바랐을 거다. “중국 연변 출신의 조선족 동포 백청강이 가난과 역경을 딛고 <위탄>의 첫 우승자로 선정돼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는 식의 ‘훈훈한’ 리드를 뽑기 쉽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Mnet <슈퍼스타K2>의 우승자 허각과 연결해 “사회의 주류에서 배제되고 불우한 성장스토리가 있는 이들에게 시청자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는 등의 기사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백청강의 우승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다. 백청강은 <위탄>에 등장했던 도전자 중 가장 많은 변화와 성장을 보여줬다. 그는 부활의 곡 ‘생각이나’ ‘희야’를 ‘생각보다 쉽게’ 불러재끼며 시청자를 감동시켰고, 매 회마다 절대 고치지 못할 것 같았던 비음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높은 음정의 발라드에서 강점을 보였음에도 H.O.T의 <위 아 더 퓨처>(We are the future)나 G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처럼 빠른 비트의 음악도 선보이며 끼를 펼쳤다.

36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해 펼친 중국 예선전,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쉰 목을 움켜쥐던 그의 도전은 과거의 ‘헝그리 정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학벌과 외모, 집안배경 등으로 평가받는 냉정한 시대에 백청강 하나쯤은 성공시키고 싶은 시청자들의 마음이 문자 투표에 반영돼 ‘위대한’ 탄생을 일궈냈다. 그런데, 백청강이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고 떠들기에는 켕기는 게 많다.

▲ 백청강의 '코리안 드림'을 앞다투어 보도하는 언론들.
한국에서 ‘코리안 드림’이란 용어는 ‘코리아에서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의미가 섞인 표현이다. 영화 <방가? 방가!>(2010)에서 등장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에 왔지만 ‘기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사장의 성추행과 욕설 등 갖은 폭력에 노출된다. 영화 <파이란>(2001)의 주인공인 중국여성 파이란(장백지)은 한국서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술집에 팔릴 위기에 처하며 스스로 혀를 깨물었다. 현실에서도 ‘코리안 드림’을 이룬 경우는 거의 없다.

중국 연변 동포에게 ‘코리안 드림’이란 표현은 한국사회에 대한 ‘증오’가 담겨있을 수도 있다. 영화 <황해>(2010)의 주인공인 조선족 김구남(하정우)은 떼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밀입국, 청부살인을 저지른다. 김구남의 눈에 비친 한국은 이기와 탐욕으로 가득해 누가 악인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영화 속 조선족은 철저히 이용만 당하거나 겁탈의 대상이었으며,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경계인에 불과했다. 김구남이 지명수배자로 쫒기기 시작하자 언론은 그가 ‘조선족’임을 강조하며 죄 없는 조선족 동포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백청강은 9살 때부터 부모와 떨어져 살았다고 한다. 중국에선 소수민족이 겪어야 하는 차별에 아팠을 것이고, 한국에선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로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은 그대로 아들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백청강의 아버지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어느 이주노동자의 삶을 비슷하게 살아왔을 것이고, 야간업소를 전전하면서도 “한국에서 성공하겠다”던 그의 다짐은 아버지의 힘든 삶을 응원하고자했던 아들의 악다구니였을 것이다.

▲ 영화 <황해>의 김구남(하정우)은 조선족 출신으로 '코리안 드림'을 꿈꿨지만 결국 실패하는 역으로, 한국사회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위탄>의 멘토들 역시 백청강에 대한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매번 탈락 위기를 맞았고, 멘티를 선정하는 멘토들의 선택에서도 외면 받았다. ‘상품가치’가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멘토 김태원은 백청강을 선택했다. “제가 선택하겠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그의 모습 이후 백청강은 ‘희야’를 부를 수 있었고, 한국에서 아버지를 만나 고기를 먹고 우승 후보가 될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 김태원 같은 ‘사장님’이 몇이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선 연민이나 가능성만으로 상품을 평가하지 않는다. 더욱이 ‘출신성분’이 한국산이 아닌 경우에는 처음부터 ‘불량품’으로 취급받기 쉽다. 때문에 백청강의 우승을 두고 언론들이 앞 다투어 ‘코리안 드림’을 떠드는 것은 불편하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아파도 치료 못 받고 맞아도 아프다고 말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던 언론이 ‘코리안 드림’을 운운하면 정말 불편하다.

지배 권력은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피지배계급에게 예외적 경우를 허용하곤 한다. 예컨대 로마시대 검투사 들 중 극히 소수에게 자유인의 신분을 주는 식이다. 한국사회는 백청강의 예외적 사례를 통해 최면에 빠져선 안 된다. ‘코리안 드림’에 절망했던 연변 동포들의 절규를 잊어선 안 된다. 이제는 그의 목소리에 담겨있던 슬픔을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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