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MBC에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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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이 정치적 반대세력을 배제한 일은 비일비재했다. 대중문화계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발생했는데 1950년대 미국 할리우드에 불어 닥쳤던 매카시즘 광풍이 대표적으로 거론되곤 한다. 당시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과 영화감독 존 휴스턴 등 수많은 연기자와 작가들이 ‘빨갱이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서 활동이 중단되거나 추방당했다. ‘블랙리스트’라는 단어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요즘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보고 있자니 블랙리스트 파문이 그저 오래전 남의 나라에서 발생했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김미화씨가 강제로 물러나더니 최근에는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 11년째 뉴스브리핑을 담당하던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석연찮은 이유로 경질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라디오본부 평PD협의회에 따르면 이우용 본부장은 지난 1998년 김종배씨가 <조선일보>의 이승복 관련 기사에 의혹을 제기해 소송을 당한 것과 함께 <프레시안> 기고를 문제 삼았다고 한다.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김씨는 이미 2006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인터넷 매체에 언론기고를 한 것이 방송을 못 할 정도의 중대 사유란 말인가.

더욱이 프로그램 담당 PD와 진행자, 작가 등이 한목소리로 거듭 반대했음에도 경질을 밀어붙였다고 하니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사교양국은 또 어떤가. 윤길용 국장 취임 이후 불과 몇 달 되지도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최승호 PD가 <PD수첩>에서 축출된 것도 모자라 이우환, 한학수 PD를 비제작부서로 전보 조치하는 등의 탄압이 이어져왔다. 평소 윤 국장은 시사프로그램의 시청률 제고를 유일무이한 척도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PD저널>이 지난 17개월간 <PD수첩>의 시청률을 조사한 결과 최승호 PD의 연출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았다고 하니 ‘시청률 보증 PD'를 내쫓은 윤 국장은 어떻게 답할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지금 MBC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사실은 이미 작년에 KBS에서 겪었던 일들이란 점이다. KBS가 이름도 생소한 저널리스트 직군을 만들어 시사 PD들을 보도본부로 발령한 것이나 MBC가 시사교양국만 따로 떼어내 편성제작본부로 보낸 것도 비슷하다.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추적60분>과 <PD수첩> 등은 불방을 밥 먹듯 하고 있으며 이에 반발한 PD들은 징계와 보복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비판적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한 연예인들이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인 것 또한 그렇다. 대한민국의 양대 공영방송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논란을 일으키는 데자뷰 현상을 보면서 공영방송의 앞날에 심한 현기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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