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특집3 소설가 이원규가 권하는 읽을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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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문제, 탐미주의, 대륙적 스케일 … 섭렵하는 여름 되길
엄청난 독서량·통찰력·추진력 가진 PD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contsmark0|필자 이원규 씨는 월간문학 신인상 및 현대문학 창간 30주년 기념 장편공모 당선으로 등단했으며 그의 소설들은 kbs 좧포구의 황혼좩, 좧바다소리좩 mbc 좧겨울비좩 등으로 드라마화되었다. 그는 88년 mbc 6·25특집 다큐멘터리 좧살아있는 훈장좩, 95년 kbs 좧독립군 그 현장좩의 제작과 구성에 참여했으며, 95년부터 1년간 kbs 사회교육방송 좧역사의 증언좩에 출연하는 등 방송과 인연이 깊다. 소설집으로 ‘훈장과 굴레’ ‘황해’ ‘침묵의 섬’ ‘깊고 긴 골짜기’ ‘천사의 날개’, 대하소설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 중국 러시아 답사기 ‘독립전쟁이 사라진다’가 있다. 현재 동국대 국어국문학부에 출강중이다.<편집자>이원규<소설가>방송 프로듀서만큼 박식을 요구받는 직업은 없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습득을 요구하고 있고 방송은 가장 강력한 전달 매체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송의 향수자들 가운데는 전문가 또는 전문가 뺨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방송 프로듀서가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직업이 된 것은 일반적 한계를 뛰어넘는 폭넓은 식견과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나는 방송 프로듀서들과 같이 일하는 기회가 많은 편이다. 그들은 정말 이상한 족속들이다. 평소에는 헐렁헐렁해 보이기도 하지만 일단 일에 매달렸다 하면 악바리처럼 물고 늘어지는 프로정신을 보여 나는 놀란다. 엄청난 독서량과 통찰력, 그리고 거의 안하무인격인 추진력에 나는 또 놀란다. 이 시대의 문화를 이끌어 가는 박식가들에게 나와 같이 우울한 언어나 조종하는 글쟁이가 권할 만한 책이 무엇일까. 자칫하면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꼴이 될 것이다.나는 첫째로 지난해 말 러시아시학연구회(실체는 고려대 노문학과 대학원생이 중심이 된 동아리인 듯하다)가 편역해 낸 <시간과 공간의 기호학>을 들고 싶다. 예술에서 다뤄지는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기호학적 시각에서 분석한 러시아 학자들의 논문들이 실렸는데 소설을 구상하며 늘 고심했던 시간의 재구에 대한 해석이 돋보여 나는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시간과 공간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것은 인간이 유한성을 벗어나 신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본능이요, 그것은 예술가의 권능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방송도 그렇다. 드라마이건 다큐멘터리이건 ‘자연적 시간’을 ‘예술적 시간’을 재구하는 것에 성패가 좌우되지 않는가.나는 문인이니까 두 번째 책으로는 소설을 꼽아야겠다.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의 <금각사(金閣寺)>를 안 읽은 분이 있다면 권하고 싶다. 작자의 지독한 국수주의는 때로 거부감을 갖게 하지만 작품에 물씬 녹아 있는 탐미주의와 분방한 감성은 예술적 매력을 한껏 풍긴다. <금각사>는 주인공이 비이성적 환상 속에 일본의 국보 금각사를 불태우는 행위를 예술적 모티브로 풀어낸 탁월한 작품이다. 발표 당시(1956년) 일본 비평가들은 ‘온전히 문학을 만나기 어려운 오늘날 이것이야말로 문학이다’ ‘소설을 쓰려는 사람은 이것을 교재로 쓰면 좋을 것이다. 이것에 어떤 약점과 장점이 있는가를 해석해서 문학의 알파와 오메가를 배우는데 좋은 교재인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오늘처럼 예술성이 부족한 시대에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새겨 읽을 만하다.다음 들고 싶은 문학 작품은 러시아 작가 솔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이다.‘가축에게 짓밟힌 보리는 언젠가는 일어선다. 이슬을 맞고 햇볕에 쪼이고 대지에 짓밟힌 줄기는 언젠가는 일어선다. 처음에는 힘에 겨운 무거운 짐을 지고 쩔쩔매는 사람처럼 웅크리고 있으나 곧 몸을 펴고 고개를 쳐든다’그 소설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이 소설은 우리식 명칭으로 따지면 대하소설이라 한여름에 더위를 잊을 겸 단단히 마음먹고 매달려야 독파가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소설이 갖지 않은 거대한 서사구조와 선이 굵은 인간의 삶의 족적이 잘 그려져 있다. 문학의 열병을 앓던 청년시절에 나는 <금각사>를 읽고 예술적 완성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경이로운 충격은 받았으나 절망하지는 않았다. <고요한 돈강>은 그 거대한 대륙적 스케일 때문에,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소설은 못쓰겠구나 하는 절망을 안았었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 때문에 나는 기어이 러시아의 춥고 광활한 대륙을 맛보기 위해 두차례나 여행을 했다.e.h. 카아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도 권해 드리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역사가의 기술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역사 이론에 쉽고 빠르게 접근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준다. 저자가 1961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한 원고를 묶은 이 책은 역사를 전공한 사람은 물론 비전공자들에게 역사 파악의 시각을 갖게 해주는 구체적 기술로 되어 있어 나는 역사소설을 쓰면서 이 책을 늘 곁에 두었었다. 저자는 독자를 먼 과거로 가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늘과 어제, 오늘과 내일이 이어지는 현재에 서서 우리 자신과 오늘의 모습을 보게 한다. 역사에 대한 이론을 넘어서 현대를 보는 안목,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등불처럼 밝혀 준다. 역사 드라마,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필름을 만드는 분들에게 필요한 자양을 주는 책이다.소설가 정찬주의 기행문 <암자로 가는 길>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충분히 전달해 주는 책이다. 불교소설에 매달려 많은 답사를 하면서 우리 정신의 본향인 사찰과 암자에 대해 도통하게 된 필자가 명산 속에 숨듯이 앉아 있는 암자들을 탐방한 책으로 그가 중앙일보에 연재했던 원고를 첨삭해 출간한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암자는 수행자들이 머물다 가는 거처이자 구도정신의 본향이라고. 명산대찰이 관광지로 탈바꿈해 세속화되어 가는 지금 암자는 그래도 청정공간으로 남아 있다고. 애 책은 고승 대덕의 숨결이 남아 있는 암자, 문화재로써 감동을 주는 암자, 큰스님이 은거하는 암자, 풍광이 빼어난 암자 순서로 기술하고 있다. 방송 프로듀서들이 찾아가 냅다 tv 화면에 비쳐지면 저자가 말하는 숨듯이 앉아 있는 암자의 청정한 순결이 사라질까 걱정되는 것은 좋은 책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는 필자의 이율 배반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남우세스럽기는 하지만 내 책도 하나 말하고 싶다. 중국과 러시아의 독립전쟁 현장을 답사한 여행기 <독립전쟁이 사라진다 1.2>이다. 내가 뻔뻔한 자가 아닌가 자문을 하면서도 기어이 내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 독립전쟁이 분단모순과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사실보다 왜곡 축소돼 있다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중요한 일부인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민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제는 돌아보아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4년간 일곱 번에 걸쳐 중국 만주와 화중 화남지역, 러시아 연해주와 시베리아,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답사하며 느낀 점을 이 책에 담았다. 특히 이념의 편견과 정파투쟁으로 인해 남북의 역사에서 사라진 조선의용대의 투쟁현장을 프로듀서들이 세상에 드러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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