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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KBS ‘승승장구’

스타는 두 부류가 있다. 날 때부터 타고난 모태 스타, 꾸준한 노력으로 스타가 되는 대기만성형 스타가 있다. 굳이 <승승장구>를 스타에 비유하자면 대기만성형 스타가 아닐까? 혹시 100% 공감할 수 없다면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로 정정해도 상관없다.

사실 <승승장구>의 시작은 여느 스타 못지않게 화려했다. 하지만 그 이면으로 들어가면 조금 갑갑한 진실들이 숨어 있다. 배우 생활 20년 동안 토크쇼에 출연 만해 봤지 진행은 난생처음인 생 초짜 MC 김승우와 잘 나가는 다른 토크 프로그램들보다 한참이나 뒤처진 후발 주자라는 게 그 당시 <승승장구>가 갖고 있는 스펙의 전부였다. 스펙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즘 시대에 정말 말도 안 되는 스펙을 들이밀며 무모하게 도전했다. 솔직히 이제 와서 말인데 알고선 두 번은 못할 일이다. (하하) 

그런 탓일까? 스포트라이트는 개미 똥만큼이나 잠깐이었고 점점 관심에서 멀어져 가더니 여기저기서 가슴 후벼 파는 비평도 쏟아져 나왔다. 무언가 결단이 필요했고, <승승장구>만의 색깔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토크쇼의 기본! 그건 바로 ‘이야기'였다. 누구나 할 이야기가 있고 누구에게나 들을 이야기가 있다! 거기서부터 <승승장구>만의 색깔 찾기를 시작했다. 그 전까지 스타, 그것도 대한민국 톱스타를 게스트로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면 이젠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한마디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갖고 있는 인생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이다.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다 보니 섭외의 기준도 ‘이야기가 있는 사람'으로 바뀌었고 좀 더 내실을 다질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또 있었다. 그건 바로 ‘밋밋함’이었다. 일정 부분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다른 토크쇼와 달리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날카로운 촌철살인의 질문!, MC와 게스트 간의 치열하고 긴장감 넘치는 토크 공방! 고백하건대, 이런 것엔 약하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는 시청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심심한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혹자는 MC들을 두고 리액션만 잘하는 방청객이란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다른 프로그램들과 차별되는 <승승장구>만의 또 다른 색깔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바로 김승우를 필두로 <승승장구> MC들은 귀 기울여 들을 준비와 공감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점이다. MC와 게스트 간의 머리싸움 대신 경청하는 MC들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게 되는 자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이점, MC들의 ‘열린 귀’가 승승장구를 가장 달리 보이게 하는 점이다. 솔직히 <승승장구>의 메인 MC, 김승우는 MC로서 세련됨이 부족하고 투박하다.

그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어느 톱 MC못지않은 진정성, 다시 말해 진심으로 사람을 대할 줄 아는 법을 알고 있고 그 진심이 시청자들에게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공감을 불러온다. 물론 보강해야 하고 보강하고 싶은 부분도 있다. 그건 바로, 굳이 왜? 라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 <승승장구>의 첫 시작을 열어주는 시청자! 그들과 지금보다 좀 더 가까이, 그리고 함께 호흡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그 또한 승승장구만의 색깔로 찾아내 보여 줄 것이다.

1년 반 동안 <승승장구>를 제작해오면서 작은 바람이 생겼다. 그건 바로 질리지도 지치지도 않는 <승승장구>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여타 프로그램들처럼 <승승장구>는 강하지도 속 시원하게 고민을 해결해주지도 못한다. 때문에 화려한 반짝임은 덜할 수 있다. 하지만 콕 집어 <승승장구>를 찾아와 주신 손님들의 ‘이야기'를 공감하고 그들의 승승장구를 바라며 지치지 않고, 질리지 않게 시청자와 함께 오래가는 ‘대기만성형 토크쇼’가 됐으면  한다.

 

▲ 윤현준 KBS PD

 

모 건전지 광고처럼 승승장구가 반백의 MC 세 명과 중년 아이돌 MC 한명이 백만 스물 두 번 째, “시청자와 함께한 토크 콘서트 승승장구!!"를 외치며 방송하는 날을 꿈꾼다면 망상일까? 망상이면 또 어떤가? 그런 기분 좋은 꿈을 함께할 수 있는 그날까지 승승장구한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한 <승승장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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