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말썽많은 대통령 라디오연설 폐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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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노사관계가 공정방송위원회 개최 문제 등으로 파행을 겪고 있다. 지난달 3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가 최근 논란이 된 ‘백선엽 다큐멘터리 제작’과 ‘대통령 라디오 주례 연설’ 등을 공방위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한데 대해 사측이 공방위 안건이 안 된다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KBS노조가 대통령 라디오 연설과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문제 삼은 건 지난달 30일 방송분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날 연설에서 최근 발생한 유성기업 파업을 언급하며 “연봉 7000만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면서 “평균 2000만원도 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아직도 많은데 그 세 배 이상 받는 근로자들이 파업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발언은 금세 거짓으로 드러났다. 유성기업이 지난 3월 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5711만원이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대통령이 있는 사실을 허위로 날조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KBS 사측은 “대통령 연설의 경우 내용에 이의가 있다면 야당대표가 방송을 통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면 된다”는 식으로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참으로 구차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의 거짓말 방송으로 KBS의 공정성과 신뢰도에 금이 갔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면 된다는 꼴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이 말썽을 일으킨 건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당이 미디어법을 일방적으로 강행처리하자 “합의했으면 좋았겠지만 더 늦출 수 없어 강행처리했다”고 말해 야당과 시민사회가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고, “우리가 세계 금융위기를 가장 빨리 극복했다”는 등 자화자찬을 늘어놓기 일쑤여서 국민들로부터 빈축을 사는 일도 많았다.

대통령 라디오 연설은 2008년 가을, 시작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MBC는 공영방송이 대통령의 나팔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노조와 PD들의 반대에 부딪혀 방송하지 않기로 했으며, SBS 또한 이슈가 되는 연설 내용만 뉴스로 다루겠다며 편성하지 않았다. 유독 방송 3사 가운데 KBS만 편성권 침해라는 내부 반발에도 불구하고 편성을 고집했는데 김인규 사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언론특보 출신이란 점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해 국민들이 실의에 빠지자 ‘노변담화’로 이름 붙여진 라디오 주례 연설을 통해 국민화합을 이끌어내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청와대 역시 루즈벨트를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 분열을 일으키고, 사실을 왜곡하는 등 방송을 정치선전의 도구로 일삼는다면 당장 폐지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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