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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주가다. 술을 좋아한다. 특히 방송이 끝나는 날 마시는 술은 더 좋다. 물론 모든 날이 좋았노라고 말할 순 없지만, 술 마시는 날은 여러 가지로 추억이 많은 날들의 연속이었던 건 분명하다. 방송 때문에 놀지 못했던 한을 한꺼번에 풀기라도 하듯 정신없이 술을 마시다 보면 정신 나간 사람들처럼 쓸데없는 일에 실실 웃기도 하고, 선배들에게 주정을 하기도 하고…….가끔 실수하는 날에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구나 하고 후회 할 때도 있다.

특히 사고 없이 방송이 나간 날은 다행이지만, 사고(?)가 생긴 날은 눈치 보는 날! 이날은 정말 회식 자리가 한마디로 ‘좌불안석’ ‘가시 방석’이다. 선배들에게 혼날까봐 조용히 구석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술이 얼큰하게 들어갔을 때 쯤 어김없이 선배의 날카로운 지적이 들어온다. 그날 방송에 대한 평가다. 어찌나 매서운지  취중진담이라고 했던가. 한잔 얼큰하게 들어간 선배들의 말은 한 마디가 한 마디가 뼈아프다. 그리고 한바탕 야단을 맞으며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쯤 선배들은 술로 달래준다. “오늘은 잊고 다음주에…”라는 명언을 남긴다.

그렇게 술로 화끈하게 날을 지새우다 보면 몸은 힘들지언정 또 다시 일주일을 정신없이 보낼 ‘무언가’의 힘을 얻는다. 이렇게 선배들, 동기들과 함께 화끈하게 술을 마셨던 날들은 나의 소중한 추억 중에 하나이자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초석이다. 그런데 요새 참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술! 이 술이라는 것이 죄악시(?) 되기 시작한 것도 하나의 이유 일려나? 주변의 선배들 역시 이제 술을 끊어야 겠다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 선배들도 많아졌다. 한마디로 서운하다. 후배들 역시 마찬가지다. 한잔 하자고 했더니 술 못 마신단다. 진짜 서운하다.

나는 왜 서운할까? 선배와 후배 간에 꼭 술이 있어야 진실한 얘기가 가능한 건 아니건만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속에 담아둔 얘기를 풀어낼 만큼의 용기가 없는 건지…. 그러다보니 선배님들, 후배들과의 관계도 왠지 옛날과 다르게 소원해지는 것 같다.

나에게 늘 술이란 누군가와 가장 단시간에 ‘절친’이 되게 해주는 ‘무언가’였다. 누군가는(선배 혹은 후배)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난 방송을 하면서 사람들과 섞이고 서로 맞춰가는 과정을 ‘술’로 배웠다. 술이 멀어지면서 선후배 간의 그 ‘무언가’도 사라져 가는 건 아닌지……. 그래서 나는 ‘술’을 냉대하는 요즘이 서럽다. 아마도 술에 대한 미련보다는 술을 통한 선후배 간의 끈끈한 분위기가 그리운 것 같다.

 

▲ 최복희 독립PD

 

오늘도 몇몇 남지 않은 술 동료들과 함께 옛날 추억을 곱씹으며 술 한 잔을 들이킨다. 옛날처럼 진탕 취할 정도로 이제는 나도 마시지 않는다.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체력 역시 이제 나의 정신력을 따라와 주지 않는다. 선배들을 보면 ‘술 한 잔 어떠세요’라는 말에 부담을 가지는 것 같다. 여러 이유 중의 하나는 나와 같으리라. (체력?) 그렇다면 술이 아니라도 좋다. 잠깐이라도 좋고, 밥 한 끼도 좋다. 생각나며 부담 없이 오며가며 짧게라도 만나자! 선배님들께 오랜만에 안부 전화라도 드리자! 후배들과 차 한 잔이라도 하자!
 ‘술’은 멀어졌지만 그래도 끈끈한 정은 잊지 맙시다. 
“선배님들 식사 한 끼 어떠세요?~ 술은 반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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