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검열기구’ 방통심의위 해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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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2기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공안검사 출신의 박만 변호사가 내정됐을 때 언론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방송에 대한 검열과 통제 움직임을 걱정하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은 “공안사건을 과거에 많이 했고 또 원칙적으로 사건을 처리한 것을 두고 (나를) 극우파 혹은 강경파라고 비난하는 분들이 계신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우에 불과한 것인 양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우려는 곧 현실로 나타났다. 최근 유성기업 사태를 다룬 라디오 경제프로그램에 대해 심의위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공정성)를 들어 징계절차를 밟고 있는 탓이다. 심의위는 지난 16일 KBS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MBC <손에 잡히는 경제 홍기빈입니다>의 PD들을 불러 의견을 청취한데 이어 조만간 전체회의를 열어 징계수위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일부 심의위원들은 “노조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얘기한 거 아니냐?”, “‘노조원 5명이 과로 등으로 숨졌다’ 등의 표현은 오해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KBS와 MBC가 동일한 이슈와 포맷으로 진행됐는데 서로 통한 건 아닌가?”라며 상식 밖의 질문을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심의위원들의 이와 같은 행태는 방송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됐거나 고의적인 방송통제 의도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유성기업 문제의 본질은 ‘주간 2교대제’와 ‘월급제’였다. 열악한 작업환경 탓에 노동자들이 잇달아 사망하자 노동조합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고, 사측이 불성실 교섭 끝에 직장폐쇄를 하면서 사태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그런데도 심의위원들은 원인에는 애써 눈을 감은 채 “양측 입장을 똑같이 다뤘냐?”고 기계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그런 논리라면 “연봉 7,000만원을 받는 노동자가 불법파업을 했다”고 거짓말을 한 이명박 대통령이나 유성기업 사태의 피해 전망을 부풀려 여론을 왜곡시킨 현대·기아자동차의 주장을 담은 방송 역시 징계감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논란에 앞서 걱정되는 건 해당 프로그램들이 앞으로 노동문제를 다룰 때 부담을 갖게 될 거란 점이다. 당장 PD들은 “제작에 압박이 올 수밖에 없다. 아이템 결정이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모 본부장은 “경제프로그램에서 왜 노동문제를 다루냐”고 했다가 제작진이 반발하자 “사회적 쟁점은 다루지 말라”고 지시했다고도 한다.

현행 인적 구성과 제도 하에서 심의는 검열의 다른 이름이 됐다. 심의위는 ‘공정성’ 조항을 ‘조자룡 헌 칼 쓰듯’ 휘두르며 정부나 재벌 등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심의위가 방송의 공공성을 위한 PD들의 제작자율성과 사회적 비판 기능을 지금처럼 옥죈다면 차라리 해체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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