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다시 외쳐본다, “나는 P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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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다시 외쳐본다, “나는 PD다!”
2011년 PD 전국대회 참관기
  • 김태훈 PD (ubc 울산방송)
  • 승인 2011.06.28 2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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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 PD. ⓒPD저널
뚱딴지처럼 PD들이 “나는 PD다!”라고 외쳤다. 지난 주말 충남 부여에서 전국의 PD들이 모인 자리였다. 나도 PD지만, PD들은 누가 몰라줘도 그만이고 누가 뭐래도 자기가 하는 프로그램을 위해 돈키호테가 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잘 모이지도 않고 잘 모아지지도 않는 그런 PD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는 “나는 PD다”라고 말하니 그 배경이 자뭇 궁금해진다.  

얼마 전 논란에 휩쓸린 한 검사가 “검사는 수사로 말한다”고 하는 걸 보고 피식 웃었다.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러지 않았던가.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한다.” 2011년 지금, 이 말대로 PD들은 살고 있을까? 온 세상이 자기부정과 정체성혼란을 겪고 있듯이 PD들도 프로그램으로만 말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 제작의 자율성은 이미 박제가 돼 버렸다.

방송도 이윤을 창출하는 산업이 돼야 한다고 밀어붙이고 있으니 허울 좋은 ‘효율성’만 강조된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PD는 무엇인지 자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2011 PD 전국대회는 이런 PD들에게 용기를 주는 자리였다. PD의 정체성을 같이 확인하고 힘찬 목소리를 내보는 시간이었다. 이번 대회에서 PD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를 꼽아보면, 첫째가 ‘엄혹한’, 둘째가 ‘MB’, 셋째가 ‘연대’였다. 이 세 단어로 문장을 조합해 보시라.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은 PD 전국대회는 서울 수유리, 충북 제천, 충남 부여에서 해마다 내용을 달리 채우며 진화하고 있다. 올해의 핵심 행사는 ‘나는 PD다’라는 주제로 열린 토크였다. 여러 PD들이 자기의 이야기를 했다. 남의 말 듣는 데 익숙하고 남의 말 전하는 게 편한 PD들이 자기 얘기를 한 것이다.

제작하는 프로그램이 다르고 활동하는 공간이 달라도 PD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현실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힘은 우리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답은 PD로서 연대하는 것!

PD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역시 혼자서 짊어지고 가기에는 버거운 짐이 있고,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 수 있었다. 이날 행사에서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이강택 위원장과의 전화연결이 있었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며 웃으면서 말하는 그도 “나는 PD다”라는 자신있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이강택 PD님, 배고프면 지는 겁니다.” 아직은 그런 농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가슴을 아련하게 했다. 지금 PD는 할 일도 참 많다.

“나는 PD다!”라고 폼 나게 외치고 돌아오는 길. 때 이른 장마로 전국이 난리다. 그동안 내가 살던 공간에서 외면하고 미뤄왔던 ‘연대’가 환생해서 빗줄기로 달려든다.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 무엇으로 연대할 것인가? 갑자기 숙제가 많아졌다.

내가 머무는 자리의 구조적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 PD의 프로그램일 것이라고 애써 위안해보지만 아직 뜬구름 같다. 그 사이 세찬 빗줄기가 얼룩지운 차창 너머로 세상의 비명이 들려온다. 온 국토는 이리저리 파헤쳐져서 빗물 속에서 울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만만치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다시 외쳐 본다. 그래서 크게 외쳐 본다.

“나는 P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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