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엔의 지적과 권고도 무시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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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한국을 공식 방문한 프랭크 라 뤼(Frank La Rue)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한국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 상황을 조사했다. 그리고 그 조사결과를 지난 6월 3일 제네바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공식 발표했다. 프랭크 라 뤼 특별보고관은 모두발언에서 한국이 의사 표현 행위에 대해 징역형이 선고될 수 있는 법률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4년 노벨 평화상 후보였고 25년 동안 인권운동을 한 라 뤼 보고관의 관점에서 보면 놀랄만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가 입만 열면 자랑하는 OECD 회원국,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그리고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 나라인 대한민국이 아직도 자유로운 의사 표현 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법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선진국들의 시각에서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라 뤼 보고관은 특히 한국에서 공무원이 언론과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소송이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선진국에서는 정부나 공무원들이 자신의 직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언론이나 시민들의 비판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들이 국민들과 언론의 감시와 비판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지난 2010년 5월 방한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소속 위원들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자료사진) ⓒPD저널

그런데 현 정부는 그 권리를 명예훼손이라는 법적 근거를 내세워 억압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장관이 방송국 제작진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고, 국정원이 시민단체 대표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방송을 제작했던 제작진은 대통령 측근 사장에 의해 좌천되고, 시민단체는 기업들의 후원이 아예 끊어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 정권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생각이고 정책이다.

자신들의 정책에 반대하고 비판하면 사용 가능한 온갖 방법과 때로는 무리한 방법까지 동원해 가며 당사자를 겁박하고 억압하는 현 정부의 태도는 결국 국민들과 언론기관에 위협효과를 불러 일으켜 글을 쓰거나 기사를 쓸 때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도록 만들고 있다.

라 뤼 보고관은 보고를 마치면서 한국 정부가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독립성과 다양성을 보장해 줄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그러나 라 뤼 보고관의 발표가 끝난 뒤 한국정부 대표로 참석한 주 제네바 대표부 박상기 대사는 “한국 정부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에 대한 표현을 보장해 왔으며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참여를 독려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라 뤼 보고관의 보고서는 균형 있는 평가가 결여된 특별한 사례만을 강조하여 한국의 표현의 자유 상황을 편향되게 평가 했다”며 공개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이는 정부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대사가 정부에 불리한 내용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국제기구인 유엔의 공식 조사 보고서를 비난하고 나선 셈이다. 그 동안 국내 언론인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학자들의 비판을 무시하던 이명박 정부가 이제는 유엔의 권고와 지적마저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 최진봉 교수.
현 정부가 국민과 언론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던 사례는 미네르바 구속, 〈PD수첩〉 제작진 고소, 광고 불매운동 참가자 고소, ‘쥐 그림’ 강사 고소 등 수없이 많다. 그런데도 이런 뻔뻔한 태도를 보인 것은 후안무치 그 자체다. 언제쯤 하고 싶은 말,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말하고 쓸 수 있는 시대가 올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제기되는 지적과 비판에도 눈과 귀를 닫고 무시하는 현 정부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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