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버스는 당연히 정치적이다

첫 번째 질문. 한진중공업에서 크레인 농성 중인 김진숙씨를 만나러 몰려간 ‘희망버스’ 행렬의 참가자들은 정치적인가? 두 번째, 검․경수사권을 둘러싼 갈등 구조 속에서 사표를 던진 검찰총장의 행위는 정치적인가? 세 번째, KBS 기자의 도청이 사실이라면 그 기자의 취재 행위는 정치적인가?

바로 지금 우리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인 행위들이라고 비판 받는 현재 진행형의 몇 가지 풍경들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던져본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첫 번째 행위, 즉 희망버스에 탄 사람들만이 정치적인 행위를 실천한 사람들이다. 김진규 총장의 사퇴는 특정 권력 집단의 기득권과 개인의 명예만을 지키기 위해서 저지른 철저히 이기적 행위일 뿐이었고, KBS 기자의 도청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단지 범죄 행위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왜 언론과 권력층은 이 모든 행위들을 ‘정치적인’ 이라는 공통적인 수사를 붙여서 하나로 규정하는 것일까?

바로 이 지점이 ‘정치적인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함정이 시작되는 곳이다. 각 개인들의 정치적인 각성 혹은 실천이 가지는 혁명적 폭발력을 끝없이 누그러뜨리고 왜곡하기 위해서 ‘정치’ 그 자체에 대한 환멸을 국민들의 머릿속에 각인 시키는 작업은 역사적으로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제를 비판하는 지식인들과 체제에 분노하는 민중들을 불온 세력이나 역적으로 몰아간 예는 왕조시대부터 프랑스 혁명을 거쳐 근대 민주화 과정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나타나는 흐름이다.  

▲ 지난 10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기 위해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모여든 집회 참가자들이 부산역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 사회에서 시민들의 정치적인 각성을 말살시키려는 세력들이 동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이른바 ‘물타기’와 양비론이 그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민들의 상식적인 요구와, 권력자 혹은 기득권자들의 이전투구를 뭉뚱그려 ‘정치’라는 하나의 담론으로 포장하는 것이 ‘물타기’ 수법이다. 생존을 추구하는 정당한 행위와 이권을 쫓는 더러운 패악이 졸지에 같은 단어 속에서 하나로 이미지화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양비론은 언론의 주특기이다. 특히 사주를 위해서 기사를 쓰거나 권력자들을 대변하는 입장에 있는 기자들이 휘두르는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 같은 무기이다. 선과 악이 구별되지 않고 허위와 진실이 의미가 없어지는 기사 아닌 기사로 죄인에게는 면죄부를 안기고 선인에게는 십자가를 종용하는 그런 풍경이 익숙하지 않은가.

정치란 무엇인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가장 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하는 투쟁을 ‘정치’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올바른 정치에 반대하는 거짓 정치 세력들이 ‘정치’에 덧씌운 오물도 말끔히 걸러내야 한다.  

▲ 김욱한 포항MBC PD
우리가 정치를 멀리할수록 정치는 더러워지고 체제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될 뿐이다. 정치를 사랑해야 정치는 성장한다. 특히 시민의 이름으로, 국민의 이름으로, 민중의 이름으로 ‘정치적인 것’들을 복원해야 정치가 성장한다. 권력자들은 지금도 정치와 통치를 같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대한민국 방송계 정치부 기자들의 태업 혹은 휴가가 너무 길다. 그 많던 정치 기사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권력이 언론을 탄압하는 시대라는 이유로 자기검열의 내면화가 과해진 것일까, 아니면 자기 복종의 합리화가 넘친 것일까. 궁금하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