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만큼 참았다” 위기감 ·불신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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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도청 의혹’ 관련 내부 여론 악화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누군가 책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지켜봤다. 그런데 경영진은 회사가 망가지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 같다. 참을 만큼 참았다.”

KBS 한 PD는 김인규 사장의 ‘도청 의혹’ 해명을 촉구하는 성명에 참여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KBS 내부 여론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KBS 일선 PD와 기자 300여명이 집단적으로 김인규 사장과 경영진에게 날선 비판을 쏟아내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 21일 2000년 이후 입사한 기자들이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해 지금까지 KBS가 내놓은 해명은 참으로 옹색함을 넘어 어처구니 없을 정도”라며 “취재원의 말 한마디, 한마디의 의미를 읽어내는 훈련을 받은 우리가 봤을 때 이건 정말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경영진의 대응을 비판했다.

나흘 뒤인 지난 25일엔 입사한 지 10년이 안된 PD들이 “제작현장 역시 도청의 멍에를 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더 이상 수사기관 운운하며 숨지 말고 직을 걸고 떳떳하게 답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본부)가 실시한 이번 설문조사 결과도 이런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했지만 설문 결과를 통해 KBS 전체 10%에 해당하는 구성원이 경영진에 강한 불신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엄경철 KBS본부 위원장은 “설문에 반대하는 노조원들이 참여를 안해 그런지 모르겠지만 애초 노조에서 예상한 것보다 사측 ‘입장’에 불신을 나타내는 비율이 높았다”며 “차분하게 경찰 수사를 지켜보자는 사측과 달리 KBS 구성원의 위기의식이 크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애초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일부 KBS 이사들도 경영진이 적극적으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이사회가 27일 열리는 회의에서 도청 의혹과 관련한 감사를 요청 할 것인지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방송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감사에게 공사에 대한 감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앞서 KBS 본부는 이번 도청 의혹 사건과 관련해 ‘감사를 요청해 달라’고 이사회에 촉구한 바 있다. 

야당이 추천한 고영신 이사는 “물의를 빚고 있는 사건이고 KBS 장래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직무감사 필요성은 인정 된다”고 말했다. 이창현 이사도 “KBS의 공신력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는 현안에 대해 사내 취재시스템이나 사내 서버를 점검해 확인해야 한다”며 “만약 감사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감사제도가 무력화 된 문제점까지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감사의 한계를 들어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감사 청구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여당이 추천한 황근 이사는 “수사권이 없는 내부 감사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진술에 의존하는 감사가 절차상 문제를 확인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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