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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잘 나가는 의과대학의 학생들 세 명이 성추행을 저질렀다 한다. 피해자는 동료 여학생. 술에 취해 잠든 여학우의 속옷을 들췄네, 내려줬네 하며 포워드와 리와인드 사이에서 싸우고 있단다. 그런데 진흙탕 싸움을 더 질퍽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었으니. ‘가카’의 모교에 다니는 이들을 변호해 주려던 변호사들 앞에 자꾸 ‘초호화’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이다.

#2. 나는 마늘밭에 있었다. 4월 초의 일요일이었다, 땅에 110억 원의 현금이 묻혀 있던, 그 마늘밭 말이다. 그로부터 이틀 전, 금요일 자정에 부랴부랴 차를 끌고 김제로 내려왔던 터였다.

‘3억 원이 든 김치통이 밭에서 발견되었다’는 단신기사를 보고 바로 떠난 출장길. 토요일 이른 아침, 굴삭기 기사였던 제보자와의 짧은 인터뷰가 끝나자 그는 다시 그 마늘밭으로 간다고 했다. 현장 발굴은 그에게 맡겨졌다. 그날 오전, 그는 굴삭기로 10억 원을 더 퍼냈다.

그는 우리를 특히 좋아했었다. 우린 가장 먼저 찾아와 자신의 억울함을 들어준 언론사였던 게다. 전형적으로 순박한 시골아저씨였던 그는, 일요일 오후에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다시 수색이 시작됐다, 현장에 다른 기자들은 없다.” 급하게 차를 돌렸다.

#3. 그런 연유로, 현장에 조금 일찍 가 있었던 탓에, 나는 밭주인의 변호사를 만날 수 있었다. 입을 굳게 닫은 주인. 나는 그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의 ‘씽크’가 필요했다. ‘왜, 어떻게, 얼마나 더…’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변호사에게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나중에 서울에서라도 하자는 청도 거절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라도 하시죠, 저는 SBS의…” 라고 얘기해도 그는 이름도 알려주지 않았다. 쑥스러웠거나 귀찮았거나. 둘 중 하나로 보였다.

수차례 도끼질을 한 끝에 정보를 조금씩 얻을 수 있었다. 좀 미안했지만, 나는 기다렸다는 듯 REC버튼을 눌렀다. 추가적으로 80억 원이 튀어나오고 있던 그 밭에서, 그는 “사임 하겠다”고 얘기했다. 의뢰인이 묻었다던 돈은 분명 27억 원이라 했는데, 이렇게 된 이상 신뢰는 이미 깨졌다고 판단했다는 얘기. 3일간 한숨도 못자고 씻지도 못했다는 그가, 오히려 손을 떼겠다며 말하는 모습이 내겐 아주 홀가분한 느낌으로 보였다. 피로를 던져버릴 수 있다는 것보다는 마음의 짐을 덜어버린 게 더 커보였다. 아주 ‘인간적으로’ 느껴졌던 그 변호사는 밤이 깊어갈수록 얼굴이 밝아졌었다.

▲ 김규형 SBS 교양 PD

#4. 각종 언론사의 사설, 혹은 시론 등에 1997년 영화 〈데블스 애드버킷〉이 자주 거론된다. 의뢰인의 악독한 범죄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돈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승소를 이끌어내는 변호사의 이야기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저축은행의 회장을 변호하겠다며 착수금으로 3억을 받았다는 대검차장 출신 변호사. 그리고 성추문으로 얼룩졌던 사이비 교주를 변호한 전력이 있고, 이번 의대생들의 변론도 맡을 뻔했던 3선 의원 출신 변호사. 악랄한 피의자에게도 법의 보호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정서상 예쁘게 보려야 볼 수가 없는 것도 분명하다. 헷갈리는 와중에, 밤이 어두워질수록 표정이 밝아지던 그 변호사가, 그냥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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